신달자 시인의 고통이여 나의 친구여 !
■ 잘가라, 2024년이여! ■
'현재'를 귀중하게 사용하는 일이야말로 우리의 의무다. 새해를 바로 앞에 둔 우리는 조율이 필요하다. 각자 다른 의미겠지만 자신들의 목표를 향한 조율이 절실한 때다.
■ 잘가라, 2024년이여! ■
'현재'를 귀중하게 사용하는 일이야말로 우리의 의무다. 새해를 바로 앞에 둔 우리는 조율이 필요하다. 각자 다른 의미겠지만 자신들의 목표를 향한 조율이 절실한 때다.
그리스 사람들은 의미 없이 흘려보내는 시간을 크로노스(chronos)라고 하고, 특별히 의미를 만들어내는 시간을 카이로스(kairos)라고 한다. 깨어 있으므로 현재 충실한 삶을 카이로스라고 하는 것이다. 이 카이로스는 창조적 삶을 진행하는 데 가장 필요한 의지이다.
음악에서는 '조율'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생각해 보면 조율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이 조율이 없으면 우리들의 목소리는 탁해진다. 조율은 감정을 더 살펴야 현존의 내면을 잘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새해를 바로 앞에 둔 우리들은 이 조율이 필요하다. 각자 다른 의미의 조율이겠지만 각자 자신들의 목표를 향한 조율이 절실하지 않겠는가.
10년도 더 지난 어느 날 여성 다섯 명이 한 회사 직원 100명씩을 두고 강의를 했다. 강의가 끝나고 회사에서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중에 화가 김점선 선생이 있었다. 우리 강사 다섯 명은 마음이 통했는지 그룹으로 발전했고,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가졌다. 첫 모임이 12월이었다. 김점선 화가가 말했다. "새해를 위해 우리 모임의 이름을 만듭시다."
본인이 발의하고 본인이 이름 하나를 우겼다. 모임의 이름은 바로 '가위'였다. 우리 다섯 명이 이 사회의 불의와 부정을 가위로 싹둑싹둑 자릅시다. 우리는 모두 웃었고 그럴듯하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그 모임은 두 번을 끝으로 사라졌다. 바로 그 화가가 이 땅에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12월이면 생각나는 사람이다. 가위를 한번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그는 떠나버렸다. 그 다섯 명의 여성적 깃발이 사라진 것은 한국적 손실이다. 가위가 짝짝 소리 한번 내지 못한 것도 한국적 손실이다. 여성의 힘은 바람 불지 않아도 폭풍이 되기도 하는 것이어서 그 어떤 힘을 발휘하는 것은 중요하다. 김점선의 그림은 밝고 다정하지만 그의 내면은 축축한 우울과 저항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들의 우울과 저항을 합해 일어섰다면 대한민국의 소나무 열 그루 값은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가지게 한다. 여성의 힘은 강력하므로…. 우리는 '가위'의 힘을 믿었고, 가위의 숨은 힘으로 이 세상에 변화를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아직도 있다. 여성은 가장 부러지지 않는 힘이므로….
고대소설의 주인공들을 보면 여성의 강인한 힘을 엿볼 수 있다. 고대소설을 보면 지금 현재 여성의 힘을 주시하지만 사실 점점 여성의 힘이 약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춘향전'은 연애소설이 아니다. 여성이 얼마나 실존에 강하며, 인간적 약속을 생명보다 중시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도령과 사랑의 약속을 했다. 변사또의 사형선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나는 약속한 사람이 있다"며 목숨을 내놓았다. 이야기는 발전하여 이도령이 변사또를 처단한다. 사또를 처단하고 이도령은 바로 감옥으로 가 춘향을 만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이도령은 춘향의 마음을 다시 떠본다.
"나는 새로 부임한 사또다. 변사또의 수청은 거절했다는데 내 수청은 받아들이겠느냐."
"오는 이마다 장관이로세. 빨리 날 죽여주소."
춘향의 이 말에 "오! 내 사랑" 하는 것이 춘향전의 마지막 장면이다. 그때부터 여자를 의심하는 의처증이 남자들에겐 존재했던 모양이다. 목숨을 내놓은 여자에게 의심이라니. 목숨으로 약속을 지키는 여자로 심청이가 또 있다. 덜컥 약속을 해놓은 아버지의 공양미 삼백석이 누구 애 이름인가. 그 부질없는 약속을 딸 심청이가 목숨을 던지며 지킨 것이다. '장화홍련전' '박씨전' 모두가 강인한 정신력으로 똘똘 뭉쳐 있는 여성 주인공들이다.
여성의 힘을 세상에 알린 것 중에 국극단이 있다. 요즘 '정년이'로 화제가 된 여성 국극단은 내게도 인연이 있다. 국극단은 판소리를 근간으로 하는 무대예술이다. 그 시절엔 그것이 유일하게 여성만이 하는 무대였다. 1948년 명창 박록주(1905~1979)가 만든 여성 국극단이다.
거창극장은 장터 바로 앞에 있었다. 임춘앵과 김진진이 주인공인 국극단이 오면 극장 앞에서 종일 징소리와 북소리가 들려왔다. 극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우리집까지 그 소리는 내 심장을 울렸던 것이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다만 그 소리 속으로 끌려들어 갔다. 열세 살이었다. 중학교 1학년 가을 나는 언니 옷을 훔쳐 입고 사각보자기에 몇 가지 옷을 싸서 가출을 단행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그들의 무대만이 가슴 안으로 들어왔다. 보자기로 머리를 싸고 딱 한번 본 그 연극이 나를 이탈시킨 것이다. 미쳤다 해야 맞다. 언니가 달자가 이상하다고 엄마에게 말했고, 배우들이 묵는 여관으로 한걸음에 달려왔고, 밤 10시 나는 엄마에게 잡혔다. 그날 밤 안 죽을 만큼 맞았다.
맞아서 며칠 앓고 무대는 끝이 났다. 그러나 집에 사람이 없는 날은 장독대가 무대였다. 이 항아리 저 항아리를 툭툭 치며 혼자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있다. 그것이 끝이었지만 이번 '정년이'를 보고 또 하나의 나를 보는 것 같아 그냥 웃었다. 평생 강의를 하며 살았는데 연극인 손숙씨는 내 강의를 공연이라 불렀던 적이 있다. 말로 가슴을 치며 노래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잘가라! 2024년이여! 무척 어지러운 현실이지만 우리는 그래도 꿈꾼다. 다시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오고 내 인생은 다시 담담히 흘러갈 것이다.
신달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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