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시선] 국가신용등급 지키기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1.08 18:21

수정 2025.01.08 19:02

윤경현 금융부장·마켓부문장
윤경현 금융부장·마켓부문장
국가신인도와 국가신용등급, 사실상 같은 뜻으로 읽히는 이들은 지난해 12월 이후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정국을 지나면서 2025년 한국경제의 핵심 키워드로 떠올랐다.

국가신용등급은 한마디로 '돈을 빌린 나라가 갚을 능력이 있느냐'를 따지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해당 국가의 신뢰도를 평가하는 주요 지표다. 현재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은 무디스(Moody's)가 Aa2(안정적),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AA(안정적), 피치(Fitch)가 AA-(안정적)로 각각 평가하고 있다. 영국, 벨기에 등과 같은 수준이고 이웃나라 일본이나 중국보다는 1~2단계 높다.


하지만 이들 국제신용평가기관이 한국을 바라보는 눈은 곱지 않다. 피치는 지난달 한국 신용 관련 보고서에서 "정치적 위기가 장기화되거나 정치적 분열이 지속돼 정책 입안의 효율성, 경제적 성과 및 재정 관리가 악화될 경우 하방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일각에서 국가신인도 하락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정부는 '국가신인도 지키기'를 가장 중요한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하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수출에 목숨을 거는 한국으로서는 무역과 금융시장에 미치는 충격파가 더 크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 전망은 우울하기만 하다. 글로벌 투자은행(IB) 8곳이 제시한 올해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는 갈수록 낮아져 1.7%까지 내려왔다. 한국은행(1.9%)이나 정부(1.8%)의 전망치보다 낮은 수치다. JP모건은 한 달 새 0.4%p를 낮추면서 "비상계엄 사태 여파로 내수 불황이 한층 짙어졌다"는 이유를 들었다. 경기가 안 좋으면 세수가 줄어들고, 정부의 재정건전성이 악화되며, 자연스레 한국에 대한 투자 매력도가 감소한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 정부는 올해 민생·경기 예산의 70%를 상반기에 투입하기로 했다. 전례가 없는 신속한 집행이다. 야당은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주장하고 있다. 다만 추경을 위해서는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데 자칫 국채금리 상승→국가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의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 당나라 태종의 태평성세를 담은 '정관정요'에 보면 '창업이(創業易), 수성난(守成難)'이라는 말이 나온다. 한마디로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뜻이다. 신뢰나 신용도 마찬가지다. 국가신용등급은 한 번 떨어지면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은 이미 18년 전에 이를 경험한 바 있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한국의 국가신용등급(S&P 기준)은 AA-에서 투자부적격 등급인 B+로 추락했다. 불과 2개월 만에 국가신용등급이 10단계나 떨어진 것이다(무디스와 피치에서도 같은 시기 투기등급으로 떨어졌다). 2001년 초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졸업했지만 국가신용등급은 그해 11월에 가서야 투자등급인 BBB+로 올라섰다. 제자리(AA-)를 되찾은 것은 그후로도 무려 14년이 지난 2015년이었다.

선진국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은 2011년 부채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신용등급이 한 단계 강등됐고, 아직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도 예산안 등을 둘러싼 정치적 혼란 속에 총리가 불신임으로 물러나면서 지난달 신용등급이 한 단계 떨어졌다.

이쯤에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헌법재판관 2인 임명에 대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코멘트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이 결정이) 해외 신용평가사에 어떤 함의가 있는지 고려해야 한다.
(신용등급은) 해외 기관들이 우리 정부가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지, 우리가 하는 게 아니다"며 "신용등급은 한 번 내려가면 다시 올라오기가 굉장히 힘들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모두가 힘을 합쳐 조속히 혼란을 잠재워야 한다.

blue73@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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