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신용등급은 한마디로 '돈을 빌린 나라가 갚을 능력이 있느냐'를 따지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해당 국가의 신뢰도를 평가하는 주요 지표다. 현재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은 무디스(Moody's)가 Aa2(안정적),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AA(안정적), 피치(Fitch)가 AA-(안정적)로 각각 평가하고 있다. 영국, 벨기에 등과 같은 수준이고 이웃나라 일본이나 중국보다는 1~2단계 높다.
하지만 이들 국제신용평가기관이 한국을 바라보는 눈은 곱지 않다. 피치는 지난달 한국 신용 관련 보고서에서 "정치적 위기가 장기화되거나 정치적 분열이 지속돼 정책 입안의 효율성, 경제적 성과 및 재정 관리가 악화될 경우 하방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일각에서 국가신인도 하락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정부는 '국가신인도 지키기'를 가장 중요한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하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수출에 목숨을 거는 한국으로서는 무역과 금융시장에 미치는 충격파가 더 크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 전망은 우울하기만 하다. 글로벌 투자은행(IB) 8곳이 제시한 올해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는 갈수록 낮아져 1.7%까지 내려왔다. 한국은행(1.9%)이나 정부(1.8%)의 전망치보다 낮은 수치다. JP모건은 한 달 새 0.4%p를 낮추면서 "비상계엄 사태 여파로 내수 불황이 한층 짙어졌다"는 이유를 들었다. 경기가 안 좋으면 세수가 줄어들고, 정부의 재정건전성이 악화되며, 자연스레 한국에 대한 투자 매력도가 감소한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 정부는 올해 민생·경기 예산의 70%를 상반기에 투입하기로 했다. 전례가 없는 신속한 집행이다. 야당은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주장하고 있다. 다만 추경을 위해서는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데 자칫 국채금리 상승→국가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의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 당나라 태종의 태평성세를 담은 '정관정요'에 보면 '창업이(創業易), 수성난(守成難)'이라는 말이 나온다. 한마디로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뜻이다. 신뢰나 신용도 마찬가지다. 국가신용등급은 한 번 떨어지면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은 이미 18년 전에 이를 경험한 바 있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한국의 국가신용등급(S&P 기준)은 AA-에서 투자부적격 등급인 B+로 추락했다. 불과 2개월 만에 국가신용등급이 10단계나 떨어진 것이다(무디스와 피치에서도 같은 시기 투기등급으로 떨어졌다). 2001년 초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졸업했지만 국가신용등급은 그해 11월에 가서야 투자등급인 BBB+로 올라섰다. 제자리(AA-)를 되찾은 것은 그후로도 무려 14년이 지난 2015년이었다.
선진국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은 2011년 부채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신용등급이 한 단계 강등됐고, 아직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도 예산안 등을 둘러싼 정치적 혼란 속에 총리가 불신임으로 물러나면서 지난달 신용등급이 한 단계 떨어졌다.
이쯤에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헌법재판관 2인 임명에 대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코멘트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이 결정이) 해외 신용평가사에 어떤 함의가 있는지 고려해야 한다. (신용등급은) 해외 기관들이 우리 정부가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지, 우리가 하는 게 아니다"며 "신용등급은 한 번 내려가면 다시 올라오기가 굉장히 힘들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모두가 힘을 합쳐 조속히 혼란을 잠재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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