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길주 국립외교원 교수
-트럼프 2기 출범 후 러-우 전쟁, 주권 영토 일부 양보 방식의 조속 종결 우려
-美 국제문제 방기·미관여 넘어 캐나다, 파나마 운하, 그린란드 영토확장 행보
-영토야심인지 협상력 높이려는 거래전략인지는 불분명... 예측불가성 보여줘
-권위주의 국가들 역이용가능성, 자유주의 진영 내 불협화음·결속력 와해 우려도
-MAGA 질서 모호..예측불가성·불확실성 높아져 ‘신냉전 2.0’ 고도화 단초 전망도
-한국 국제질서 변화, 국제안보 메커니즘 주시...정책적 탄력성·총체적 역량 높여야
[파이낸셜뉴스]
-트럼프 2기 출범 후 러-우 전쟁, 주권 영토 일부 양보 방식의 조속 종결 우려
-美 국제문제 방기·미관여 넘어 캐나다, 파나마 운하, 그린란드 영토확장 행보
-영토야심인지 협상력 높이려는 거래전략인지는 불분명... 예측불가성 보여줘
-권위주의 국가들 역이용가능성, 자유주의 진영 내 불협화음·결속력 와해 우려도
-MAGA 질서 모호..예측불가성·불확실성 높아져 ‘신냉전 2.0’ 고도화 단초 전망도
-한국 국제질서 변화, 국제안보 메커니즘 주시...정책적 탄력성·총체적 역량 높여야
물리적 힘을 동원하여 상대방의 주권을 빼앗거나 영토를 확장하는 일은 국제무대에서 용인할 수 없는 원칙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1648년 베스트팔렌 체제를 거치며 주권은 외부에서 개입할 수 없는 철통 국제원칙으로 작동해왔다. 마찬가지로 국제무대에서 군사력을 동원한 영토확장은 규칙적으로나 규범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사안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불변의 원칙은 없는 것일까? 주권 원칙이 흔들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 시작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었다. 그래도 주권 원칙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이 높았기에 국제원칙을 지켜내려는 다자적 대러전선을 형성되었다. 푸틴의 영토 야심을 극명하게 드러낸 러시아의 도발에 국제사회는 고강도 대러제재에 나섰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대적인 군사적·재정적 지원에도 나섰다. 그리고 이러한 대러전선을 주도한 국가는 미국이었고 이러한 전선의 결속력은 지금까지 나름대로 유지되어 왔다. 하지만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주권 원칙 약화의 제2라운드가 시작될 조짐이다. 제1라운드를 시작한 것은 러시아였지만, 제2라운드는 미국에 의해 시작되고 있다.
러시아의 불법적 영토확장 시도에 주도적으로 제동을 걸었던 미국이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에 변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영토야심의 우려를 자아낼 수 있는 발언들을 쏟아내면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올바른 방식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일방에 주권 영토 일부를 양보하는 방식으로 조속히 종결되는 우려에 그치지 않는 상황이다. 미국이 단지 국제문제에 대한 방기나 미관여가 아니라 미국의 영토확장을 위한 적극적 행보를 벌일 수 있다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캐나다, 파나마 운하, 그린란드를 영토확장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발언을 이어가면서 이러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우선 미국의 캐나다 대상 영토확장 의도가 문제로 비화되었다. 지난해 12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에게 “캐나다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될 것”을 주문하는 언급으로 도마에 올랐다. 당시 트뤼도 총리는 트럼프 당선인이 25% 캐나다 대상 관세부과에 항의했고,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트럼프가 51번째 주 관련 언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트뤼도 총리는 트럼프의 이러한 공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일들이 쌓여 국내 불만이 고조되면서 총리직에서 사퇴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더불어 트럼프는 파나마 운하에 대해서도 파나마의 소유권을 미국에 넘겨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미국 선박에게 비싼 통행료를 받는 파나마 정부에 비판을 가하면서 나온 이야기다. 나아가 트럼프는 중국이 파나마 운하를 통제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이 사안을 미중 패권경쟁의 대리전 성격으로 만들었다. 그린란드 상황도 예사롭지 않다. 특히 그린란드에 대한 트럼프의 관심은 1기에도 있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사안이다. 한편 이번에는 단지 관심을 넘어 덴마크가 보유한 그린란드에 대한 법적 권리에 의심을 품는 듯한 발언을 넘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해 덴마크가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고 주문하는 듯 공세를 높이고 있다는 점에서 1기 당시와는 그 수위가 다르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캐나다는 경제적 강압과 경제안보를 내세웠지만, 파나마 운하와 그린란드의 경우에는 군사적 강압 혹은 군사력 운용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했다는 것이다. 캐나다는 경제안보 문제로 파나마 운하와 그린란드는 국가안보 문제로 연결시킨 것이다. 공공재를 제공하는 패권국의 책임을 포기하고 되레 영토확장이라는 현상변경에 나서는 미국을 최소한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이런 사안이 불거지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 2기의 예측불가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토확장 야심으로 비칠 수 있는 상기 세 가지 사안이 실제로 영토야심에 기반한 것인지 아니면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일종의 거래전략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이러한 발언이 MAGA 질서의 단면을 가늠케 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안보·지역안보·국가안보 모든 차원에서 따져볼 사안인 것은 분명하다.
영토확장 야욕으로 의심될 수 있는 발언의 숨은 의도가 무엇이든 권위주의 진영의 국가들이 이러한 발언을 역이용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점령에 이 발언을 전략적으로 이용할 수 있고, 중국도 대만침공 명분으로 역이용할 수도 있다. 협상에 기반한 통일정책을 포기한 북한이 무력으로 한반도 통일에 나서는데도 악이용될 소지도 있다. 영토확장 의도 부상은 나름 잘 준수되어왔던 주권 원칙의 약화를 의미하고 나아가 규칙기반 질서 붕괴의 단초로 작용하기에 이러한 상황을 역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권위주의 진영의 국가들이 이중기준(Double standard) 문제를 거론하며 거침없는 행보에 나설 수도 있다. 나아가 자유민주주의 진영 내 불협화음과 결속력 와해로 비추어지면서 반대급부로 권위주위 진영 결속력 강화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조롱 섞인 수사적 강압으로 캐나다 총리가 사임하는 상황이 연출된 것은 이러한 신호로 읽어질 수 있는 대목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현 국제질서 변경을 바라는 것은 단지 권위주의 진영뿐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 하 미국도 현 질서에 불만이 있다는 점이다. 그 불만이 대선을 통해 정책화된 것이 바로 MAGA 질서다. 국제적 측면에서 MAGA 질서가 무엇인지 아직은 모호하다. 그것이 추후 비자유주의적 국제질서로 변화될지, 아니면 파워중심 국제질서로 귀결될지, 그것도 아니면 모험주의적 거래질서로 특화될지 아직은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국제질서가 단지 ‘신냉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냉전 2.0’으로 고도화되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무리는 아니다. 예측불가성과 불확실성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한국은 국제질서 변화, 국제안보 메커니즘의 불확실성 등 요동치는 정세를 예의주시하는 가운데 다양한 상황에 대처가능하도록 정책적 탄력성을 높여 국익과 안보를 달성하는데 총체적 역량을 높여야 할 것이다. 정책적 탄력성은 변화의 시기에 안정적인 한미동맹 관리를 위해서도 강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과도기 국제안보질서라는 도전에 직면해서 주권과 국토를 지켜내는 일이 더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