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양자 산업화 원년' 선포…2035년까지 민·관 합동 3조 투자 추진
2032년엔 1000큐비트급 양자컴 확보…ETRI·KIST 등 양자 기술 개발 성과
통신3사, 기존 암호 체계 무력화 양자컴 대비하는 보안 기술 검증
[서울=뉴시스]심지혜 기자 = 연세대학교가 최근 국내 최초로 IBM 양자컴퓨터를 도입했다. 이번 IBM 퀀텀 시스템 원을 도입은 미국, 캐나다, 독일, 일본에 이어 다섯 번째다.
이 양자컴퓨터는 127큐비트 IBM 퀀텀 이글 프로세서로 구동된다. 이는 현재 슈퍼컴퓨터를 넘어서는 2의 127제곱(39자리 자연수) 규모의 연산을 한 번에 수행할 수 있다. 전체 우주의 별 개수보다 더 많은 정보 처리가 가능한 수준이라는 평가다.
그렇다고 양자컴퓨터 선진국 대열에 서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후발주자로 기술 수준은 세계 주요국 대비 열위에 있다. 과기정통부가 발표한 글로벌 기술수준 지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양자 기술 수준은 12위로 사실상 밑바닥 수준이다. 미국을 100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의 양자컴퓨터 기술 수준은 2.3점에 불과하다.
◆ '더 늦을 순 없다"…2032년 1000큐비트급 양자컴 개발 목표
정부는 후발주자 한계 극복을 위해 팔을 걷어 붙였다. 올해를 우리나라 양자산업화 원년으로 삼고 성과 발굴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앞서 양자과학기술 전략을 발표하며 2035년까지 민·관 합동으로 3조원 이상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또 국회 만장일치로 양자과학기술 및 양자산업 육성에 관한 법률안(양자기술산업법)을 통과시켰다.
국가 양자과학기술 정책의 최고 심의·의결기구인 양자전략위원회도 연내 출범한다.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비롯한 8개 중앙부처와 민간 전문가가 참여한다. 연내에는 양자산업의 체계적 육성을 위한 5개년 종합계획을 마련할 예정이다.
올해 양자기술 R&D 예산은 전년보다 54.1% 많은 1981억원을 배정하고, 이 중 양자컴퓨팅에 479억원을 책정했다. 또한 양자컴퓨팅 서비스 및 활용체계 구축 등에 59억원을 신규 배정했다.
특히 임무지향형 전략과제를 수행하는 '양자과학기술 플래그십 프로젝트'를 시작, 향후 8년 내 국제적 선도 수준의 성과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창윤 과기정통부 차관은 "이제 양자가 실험실에서 나와 산업적인 성과로 전환되는 시점이 된 만큼 정부는 민간과 원팀이 돼 성과를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며 "특히 올해를 우리나라 양자 산업화 원년으로 삼고 기업들이 양자에 관심을 갖고 투자할 수 있도록 역량을 확대하겠다"고 전했다.
◆ 후발주자 극복…ETRI·KIST 등 양자 기술 개발 속도
국책기관들도 양자 기술 개발에서 속속 성과를 내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빛 알갱이인 광자(光子) 방식의 8광자 큐비트(Qubit) 집적회로 칩 개발에 성공했다. 광자기반 기술은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방법 중 가장 유력한 기술 중 하나로 연구진은 큐비트 간 양자적으로 서로 강하게 얽힌 상태를 칩 내에서 구현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광자 큐디트(0과 1 외에도 0, 1, 2 등 여러 상태를 가질 수 있는 양자 단위)를 양자 오류정정 기술 없이 더 정확한 양자컴퓨팅 구현이 가능한 기술을 개발했다. 오류정정 기술은 양자 컴퓨터 실용화의 핵심 과제로 큐비트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그 오류가 연산 과정에서 증폭되는 문제를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20큐비트 성능의 양자컴퓨터를 개발했다. 아직은 실험용 수준이지만 조만간 클라우드 서비스 형태로 상용화할 계획이다. 그리고 2026년까지 50큐비트 규모의 양자컴퓨터 개발을 추진한다. 정부는 한 발 더 나아가 2032년까지 1000큐비트급 양자컴퓨터를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 기존 암호체계 뚫는 양자컴…통신3사, 방패 기술 개발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국내 통신사들은 양자컴퓨터 위협에 대응하는 암호 체계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기존 암호체계는 난수로 암호키를 만드는데 양자컴퓨터가 수많은 경우의 수를 빠르게 연산해 난수 생성 패턴을 순식간에 파악한다는 것이다. 고도화된 양자컴퓨터가 현재의 암호체계를 쉽게 계산해 낸다면, 반대로 양자과학기술은 절대 깨지지 않는 암호를 만드는 데에도 사용된다.
이정아 라온시큐어 대표는 "빠르게 발전하는 신기술로 해킹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공개키방식 알고리즘과 같은 기존 암호화 체계로는 군사기밀 등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정보들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대표적 암호 방식으로는 양자암호키분배(QKD)와 양자내성암호(PQC)가 주목 받고 있다. QKD는 양자의 성질을 이용해 일정한 패턴이 없는 비밀 숫자 난수를 만들어 양자키로 사용한다. 신호를 주고받는 송수신 양방향에서 동시에 양자 암호키를 생성하고 분배해 해킹 위협으로부터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기술은 상용화에 가까운 수준으로 발전, 실제 통신망이나 보안 네트워크에 적용되고 있다.
PQC는 수학적 난제를 활용해 양자컴퓨터가 이를 풀어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도록 하는 암호화 방식이다. 양자역학에 의존하지 않고 양자컴퓨터가 기존 암호화 체계를 무력화하는 것을 방지한다. 기존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고 소프트웨어 형태로 기존 네트워크 장비 등에 구축이 가능해 비용 효율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SK텔레콤은 양자암호 분야의 양대 기술로 평가되는 QKD와 PQC를 결합한 하이브리드형 양자암호를 출시했다. 앞서 케이씨에스와 QKD와 PQC를 합친 양자암호원칩을 개발, 국가정보원의 암호모듈검증(KCMVP)을 받기도 했다. KT는 전송망에 QKD를, 가상사설망(VPN)에 PQC 기술을 적용한 하이브리드 양자보안 서비스를 실증했다. 기존에는 특정 통신 구간에서만 양자 암호화 기술을 적용했다면 이번 실증을 통해 전송망에서 고객 구간까지 하이브리드 양자 보안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LG유플러스과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은 공동으로 PQC를 광전송망에 적용하는 표준안이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가 선정한 표준에 선정됐다. LG유플러스는 과기정통부와 NIA가 추진하는 개방형 양자 테스트베드 구축·운영’ 국책과제의 수행기관으로 선정돼 'PQC 마이그레이션 플랫폼'을 조만간 서비스할 예정이다. 개인 또는 기업이 스스로 취약암호를 점검하고 PQC 적용의 안전성을 테스트할 수 있는 솔루션이다.
민간 중심의 양자정보기술 분야 글로벌 사실표준화 기구 '퀸사'도 지난해 출범했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LG전자, 포스코, LIG넥스원 등 대기업과 IDQ, 진인프라, SDT 등 중소·스타트업 등 국내기업 107곳이 참여한다. 의장은 김재완 고등과학원 양자우주연구센터 석좌교수가 맡는다.
정윤채 한미양자기술협력센터장은 "우리가 2023년에 양자에 투자하기 위해 발표한 양자과학기술 전략계획은 전세계에서 주목하고 있다"며 "아직 많은 시장 기회가 있다. 이론적으로 양자 기술 분야는 매우 빠르게 과학과 산업에서 발전하고 있는데, 경쟁의 주 무대는 산업 분야로 늦어지면 참여할 기회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후발 주자의 전략은 패러다임 변화를 노리는 것"이라며 "무엇보다 많은 의사결정자들이 양자(퀀텀) 리터러시를 높이는 일과 인력 양성, 스타트업 육성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siming@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