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고려아연(010130) 경영권 분쟁이 23일 '운명의 분수령'을 맞는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과 MBK파트너스·영풍(000670) 연합은 이날 임시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에 나선다. MBK 연합이 지난해 9월13일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를 선언한 지 132일 만으로, 넉 달 넘게 이어진 '경영권 혈투'가 종지부를 찍을지 주목된다.
특히 전날 최 회장 측이 '상호주' 카드를 꺼내들면서 주총에서 어떤 변수로 작용할 것인지도 관전 포인트다.
제동 거린 崔 '히든카드'…이사 수 상한 제한도 가능성 낮아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이날 오전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서울에서 임시주총을 열고 집중투표제 도입 및 신규 이사 선임 안건 등을 심의·표결한다. 최 회장 측은 이사 후보 7인을, MBK·영풍 측은 이사 후보 14인을 내세웠으며, 집중투표제가 가결되더라도 이번 이사 선임은 단순 투표로 결정된다.
핵심 안건이었던 '집중투표제'는 일단 반쪽짜리가 됐다. 소수주주에 유리한 제도인 집중투표제는 지분율에서 MBK 연합에 밀리는 최윤범 회장 측이 던졌던 '히든카드'였다. 하지만 지난 21일 법원이 '1월 임시주총에선 집중투표제로 이사를 선임하지 말라'는 취지의 가처분 인용 결정을 내리면서 제동이 걸렸다.
현재 지분율 구도는 최 회장 측 34.24%(의결권 기준 39%), MBK 연합 40.97%(의결권 기준 46.7%)다. 현 고려아연 이사회는 13명으로,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을 제외한 11명이 최 회장 측이다. 최 회장 입장에선 집중투표제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MBK 연합의 이사회 장악을 저지하는 게 최선이었다.
임시주총을 불과 이틀 앞두고 법원이 MBK 연합의 손을 들어주면서 판세는 의결권 과반에 육박하는 MBK 연합에 기운 분위기다. '이사 수 19인 상한 제한' 안건이 남아있긴 하지만, 이는 특별결의 사안(출석주주 3분의 2 이상 찬성)이어서 가결 가능성은 높지 않다.
승부처는 '이사회 장악'…崔, 3월 정기주총 반전 노린다
최 회장 측과 MBK 연합은 '이사회 장악'을 두고 진짜 승부를 벌이게 됐다. 고려아연은 정관에 이사회 상한을 두지 않아 사실상 '무제한 이사회 진입'이 가능한 상태다. 이사 선임은 보통결의(출석주주 과반 찬성)로 가결된다.
재계는 우선 MBK 연합 측 이사 후보 14명 전원 입성이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MBK 연합이 비록 의결권 기준 지분율 과반을 확보하진 못했지만, 국내외 기관투자자나 일부 소수주주가 우군이 되면 손쉽게 이사 선임을 할 수 있다.
이미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노르웨이 정부연기금과 미국 최대 연기금인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과 캘리포니아교직원연금(CalSTRS) 등 고려아연의 국내외 기관투자자 19곳 중 16곳이 MBK 연합 측 이사 후보에 찬성 입장을 밝힌 상황이다.
최윤범 회장 입장에선 곤혹스러운 구도지만, 재계에선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는 분석이 나온다. MBK 연합 측 이사 14명이 전원 진입하더라도, 고려아연 이사회 구도는 최 회장 측 12인 대 MBK 연합 측 15인이 돼 균형이 현격히 한 쪽으로만 쏠리진 않는다. 일각에선 "최 회장 측 이사 후보 3인만 진입하면 후반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 회장 측이 이날 임시주총에서 제1-1호 안건으로 집중투표제를 표결에 붙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록 가결돼도 이날 당장 이사 선임에는 집중투표제를 활용하지 못하지만, 3월 정기주총 때부터는 집중투표제로 이사 선임이 가능해진다. 3월 정기주총에서 반전을 꾀한다는 전략이다.
집중투표제 전망은 최 회장에 유리하다.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은 주주 별로 최대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3% 룰'이 적용된다. 최 회장과 52명의 특수관계인(17.5%)은 전부 3% 미만 지분만 들고 있어 온전히 표결할 수 있지만, MBK 연합은 소수 법인과 개인이 '뭉텅이 지분'을 가진 구조라 의결권이 크게 제약된다.
'상호주 제한' 변수 돌출…'제2 갈등 씨앗' 확전하나
막판 변수는 있다. 최윤범 회장 측이 임시주총 직전 영풍정밀과 일가족의 영풍 보유 지분 10% 이상을 호주 손자회사인 선메탈코퍼레이션(SMC)에 넘기면서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를 시도하는 영풍이 '상호주 의결권 제한'에 발이 묶일 여지가 생긴 것이다. 최 회장의 '마지막 승부수'인 셈이다.
상법 제369조 3항에 따르면 두 회사가 10%를 초과해 서로의 지분을 갖고 있을 경우, 각 회사가 상대방 기업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고려아연은 SMC의 지분 취득으로 '상호주 의결권 제한'이 걸려 영풍은 이튿날 임시주총에서 의결권이 제한된다는 입장이다.
이 주장대로라면 MBK·영풍의 고려아연 경영권 장악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진다. 현 지분율 구도라면 MBK 연합의 표 대결 승리 가능성이 높지만, 영풍(25.42%)의 의결권이 묶이면 MBK 연합의 실질적 지분율은 15.55%로 급감해 판세가 역전될 수 있다.
상호주 의결권 제한은 지난해 JB금융지주와 2대 주주인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 자산운용의 경영권 분쟁에서도 등장한 바 있다. 당시 얼라인파트너스는 JB금융과 핀다를 상대로 상호주 의결권 행사 금지를 구하는 가처분을 제기해 인용 결정을 받아냈다.
MBK 연합은 영풍의 의결권은 제한되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맞서고 있다. SMC는 외국법인이자 유한회사이기 때문에 상법상 상호주 의결권 제한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영풍 지분의 의결권 제한 여부는 또 하나의 갈등의 씨앗으로 확전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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