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옛 신문광고] 웨스팅하우스와 우리의 인연](https://image.fnnews.com/resource/media/image/2025/01/23/202501231924553123_l.jpg)
웨스팅하우스는 1970년대 중반에 한국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이 기업은 1886년 조지 웨스팅하우스가 미국 피츠버그에서 전기회사로 창업했다. 교류 전기 시스템을 판매하던 웨스팅하우스는 니콜라 테슬라와 함께 토머스 에디슨의 강력한 경쟁자였다. 웨스팅하우스는 방위산업과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백색가전으로 사업을 넓혔다.
웨스팅하우스는 특히 원전 건설에서는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했다. 1970년대에 우리나라가 원전 건설을 시작할 때도 웨스팅하우스의 도움을 받았다. 고리 1호기 건설에 참여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웨스팅하우스는 원천기술 소유권을 주장하며 한국의 원전 수출 때마다 발목을 잡았다. 웨스팅하우스는 2022년 폴란드에 원전 수출을 추진하던 한국수력원자력에 특허침해 소송을 내기도 했으며 결국 우리를 물리치고 사업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최근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는 원전동맹을 체결, 분쟁을 종결했다.
웨스팅하우스는 원전 사고로 고전하다 시장에 매물로 나와 2006년 54억달러라는 거액을 써낸 일본의 도시바에 인수됐다. 그러나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 원전들이 폐쇄되면서 모기업 도시바는 몰락하고 말았다. 도시바가 원전사업 부진으로 입은 누적 손실은 7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웨스팅하우스는 2018년 캐나다의 자산운용사 브룩필드를 거쳐 2022년 세계 최대 우라늄 기업인 캐나다의 카메코 컨소시엄으로 넘어갔다. 그러니까 웨스팅하우스는 법적으로는 미국 기업이 아닌 셈이다.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미국 기업으로 불린다.
웨스팅하우스는 승강기 사업도 했다. 현대그룹이 웨스팅하우스와 1984년 합작 설립한 기업이 현대엘리베이터다. 웨스팅하우스는 그 밖에도 박흥식의 화신전기와 손잡고 냉장고를 한국 시장에 출시한 적이 있다. 두 기업은 1960년 화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한 적도 있다. 냉장고 이름은 '화신-웨스팅하우스 냉장고'(경향신문 1976년 3월 17일자·사진). 광고에 나와 있듯이 미국에서 판매되던 제품과 같은 것이었다. 다양한 색상의 컬러 냉장고는 파격적이었다. 가전제품 보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당시에는 백색가전이라는 말 그대로 냉장고는 다 흰색이었다.
화신은 1960년대 초부터 웨스팅하우스의 국내 대리점이 됐고, 우리가 TV를 생산하기 전에 웨스팅하우스의 TV를 들여와 팔았다. 웨스팅하우스의 세탁기와 에어컨도 판매했다. 화신-웨스팅하우스 냉장고는 품질은 뛰어났지만, 가격이 비쌌고 애프터서비스가 부족해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광고에서도 싸지 않다고 쓰여 있다. 치열한 시장 쟁탈전을 벌이던 금성, 삼성, 대한전선 등 국내사들 사이에서 견뎌내기 어려웠다.
화신은 일본 소니와 제휴해 TV와 오디오, 라디오 카세트도 내놓고 있었다. 화신이 망한 뒤 웨스팅하우스 이름이 붙은 가전제품 판매는 중단됐지만, 원전과 방산을 고리로 한국과의 인연은 이어졌다.
웨스팅하우스가 '품격 가전'이라는 광고를 내며 다시 국내 시장 문을 두드린 것은 1995년이다. 효성물산이 웨스팅하우스 냉장고 등을 들여와 서울 압구정동에 직매장을 내는 등 판매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선 국산 가전제품을 이길 수는 없었다. 지금도 인터넷에는 웨스팅하우스의 다양한 가전제품이 판매되고 있으나 상표만 빌려 쓰는 OEM 제품이라고 한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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