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부터 잘못됐다. 재정건전성을 고리로 긴축재정을 지향하는 정부·여당이 예산 감액을 막기 위해 몸부림친 반면, 적극재정을 견지하는 야당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예산액을 삭감하는 아이러니한 해프닝이 연출됐다. 정부가 1년간 운영할 나라살림 돈을 헌정사상 처음 야당의 시각 위주로 조정한 점도 정부·여당 입장에선 답답할 만하다.
정치와 사법·사회의 성격이 짙은 검찰과 경찰의 특수활동비 등에 대한 삭감은 그렇다고 쳐도 경제·사회적 상황에 따라 신속하게 투입될 수 있도록 '방파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정부 예비비를 2조4000억원가량 반토막낸 것은 당시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컸다. 대내외 경제에 빨간불이 켜진 현재로선 당시 판단이 더욱 아쉬울 수밖에 없다.
그랬던 야당이 지금은 수십조원의 추경 편성을 요구하고 있다. 무책임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지점이다.
전 국민 25만원 지급과 같은 야당의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십조원 추경 편성에는 더더욱 동의하기 어렵다. 기본소득 성격이 짙은 전 국민 지원금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해석이 갈리고 있고, '보편지급이냐 선별지급이냐'를 두고도 정치·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이뤄졌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전 국민 25만원 상품권 지급에만 10조원 이상의 재정이 소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으며, 야당이 재발의한 지역화폐법은 정부의 재정운영 체계까지 건드릴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포퓰리즘 논란에서 자유롭기 힘든 이유다.
한국은행과 같은 경제기관의 전망처럼 연내 추경은 불가피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정부·여당이 올해 전체 예산안의 70% 이상을 상반기에 조기 투입하겠다고 공언해 놓은 현시점에서 예산안 삭감을 강행한 야당이 조급하게 내미는 추경 청구서는 무책임하게 보인다. 추경도, 전 국민 지원금도 다 세금이다.
정치권은 금고지기 재정당국을 향해 왈가왈부하기보다 민생법안 처리와 여야 간 이견이 있는 쟁점법안 합의부터 매진해야 할 때다.
jhyuk@fnnews.com 김준혁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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