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상 도박자금 등 '불법원인급여'는 반환 못 받아
돈 빌려준 뒤 추후 차용증 받았다면 별도 약정으로 '유효'
돈 빌려준 뒤 추후 차용증 받았다면 별도 약정으로 '유효'

[파이낸셜뉴스] 도박자금으로 빌려준 돈은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지만, 추후 차용증을 작성했다면 돈을 갚아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원칙상 불법적인 목적에 쓰인 돈을 빌려준 경우 반환받을 수 없지만, 시간이 흐른 뒤 차용증을 작성했다면 별도의 약정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A씨가 B씨의 부동산을 증여받은 아들·며느리를 상대로 제기한 사해행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지난 2021년 2~5월 C씨에게 5000만원을 빌려줬다. 이후 돈을 받지 못하자 C씨로부터 뒤늦게 차용증을 받았지만, C씨는 채무를 변제하지 않았다.
C씨의 부친인 B씨는 2023년 10월까지 C씨가 돈을 갚지 않을 경우 대신해서 채무를 부담하겠다는 취지의 보증을 섰다. 그런데 B씨는 보증채무가 있는 상황에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을 아들 부부에게 증여, 소유권을 이전했다.
이에 A씨는 이같은 증여가 사해행위에 해당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사해행위란 채무자가 고의로 자신의 재산을 처분해 채권자가 채권을 회수할 수 없도록 방해하는 행위를 말한다.
쟁점은 도박자금으로 사용된 채무와 관련해 보증 책임이 있는지 여부였다. 피고 측은 B씨가 도박자금 명목으로 돈을 빌린 것은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기 때문에 반환청구권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보증도 무효라고 주장했다.
민법 746조는 불법의 원인으로 인해 재산을 급여하거나 노무를 제공한 때에는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1심은 피고 측이 대응하지 않으면서 무변론으로 인한 원고 승소 판결이 내려졌다. 반면 2심은 원고 패소로 판단을 뒤집었다.
2심 재판부는 "원고가 C씨에게 대여한 돈은 민법에서 정한 불법원인급여로서, 반환청구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증여계약이 사해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해 살필 필요 없이 원고의 채권자취소권 행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원고가 C씨에게 도박자금으로 돈을 빌려줬다고 하더라도, 추후 차용증을 작성했다면 별도의 약정이기 때문에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C씨가 당초 도박자금 명목으로 원고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후 원고에게 차용증을 작성해줌으로써 별도의 약정을 했고, 피고도 그 반환 약정에 따른 채무를 보증했다고 볼 수 있다"며 "B씨의 반환약정은 사회질서에 반해 무효가 되지 않는 한 유효하고, 이에 관한 B씨의 보증도 유효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C씨가 도박자금으로 사용하기 위해 원고로부터 돈을 빌렸고, 원고도 대여 당시 그러한 사정을 알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B씨의 보증채무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본 원심 판단에는 잘못이 있다"고 했다.
jisseo@fnnews.com 서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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