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전문가칼럼

[안종범의 정책진단] AI 시대의 사법개혁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2.02 19:13

수정 2025.02.02 19:54

모든 재판에 시한 명시화
판결문 등 정보 신속 공개
빅데이터 이용 과학화해야
안종범 정책평가연구원장
안종범 정책평가연구원장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라는 세 가지 권력의 개념을 정립하고 이들은 분립되어야 한다는 것은 1748년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에서 처음 시작됐고 1787년 미국 헌법에 반영되면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근본을 이루었다. 그런데 이 삼권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이 삼권의 원천인 국민으로부터 불신과 불만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입법부인 국회는 행정부에 대한 탄핵을 반복하고 예산안과 무분별한 문제법안들을 야당 단독으로 통과시키면서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야기했고, 이는 결국 대통령 탄핵으로까지 이어졌다. 이에 대한 사후 수습을 맡은 사법부는 절차상 법적·정서적 문제를 무수히 초래하면서 불신의 중심에 서 있다.
입법부와 행정부 간의 독재적·독단적 행태는 그동안 가끔 나타나서 바로잡는 과정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사법부마저 독단적이고도 비상식적 행보를 보이면서 불신과 분열의 근원이 된 적은 없다. 입법과 행정은 현시점에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함으로써 국민과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책무를 갖고 있다. 반면 사법은 과거 일을 최종 판단하면서 독립성과 투명성이 생명이다. 이런 사법이 정치와 여론에 영향을 받으면서 독립성이 훼손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벌어진 사건에 관한 판단은 철저히 법의 정신에 따라서 이루어져야 함에도 그 판단이 현재 상황과 미래 예측 때문에 영향을 받는 이상한 사법부가 되었다. 국민 개개인과 그 가족의 운명을 좌우하는 재판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확실성과 불합리성은 오래전부터 사법부에 대한 문제로 지적됐다. 21세기 과학기술과 제도의 발전으로 거의 모든 부문의 불확실성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유독 우리 사법은 20세기식 절차와 관행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각 심을 거치면서 유무죄에 관한 판단과 형량 결정에 일관성이 유지되지 않고, 재판이 언제 끝날지에 대한 확실한 시한도 없을 정도이다. 이러한 사법부의 후진성과 불확실성은 정보공개 부문에서는 더욱 두드러진다. 과거 부동산 거래와 관련한 정보의 기록이 사법부 산하 등기소에서 한 달 이상 소요되면서 양도소득세 등 체납 문제가 발생했었다. 2006년 '부동산등기법' 개정을 통해 디지털 등기가 시행되기까지 등기소에서는 수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판결문 또한 2019년 인터넷 열람제도가 도입되기 전에는 공개 비율이 0.3%에 불과하다고 지적을 받기도 했다.

행정부에서는 정보화와 과학화가 가장 뒤처진 부문이 세무행정이었다. 그래서 세무행정에 대한 국민의 불만과 불신은 늘 문제가 됐다. 그런데 1999년 국세행정 개혁으로 새로운 계기가 마련됐다. 국세행정 조직과 운영방식을 세목별 조직에서 신고과, 납세자보호과, 조사과, 징수과와 같은 기능별 조직으로 전환했다. 납득할 만한 기준 없이 이루어지던 세무조사 대상 선정도 2003년에 신고성실도 분석시스템을 통해 과학화하면서 바로잡혔다. 아울러 과세정보 또한 부단한 노력으로 상당 부분 공개되어 활용되고 있다. 1996년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정과 2013년 '국세기본법' 개정을 통해 과세정보를 연구와 공공목적으로 활용하도록 했다. 이는 국세통합시스템이 구축되고 국세통계센터가 설립되는 계기가 되어 납세자와 연구기관 그리고 정책 입안자들에게 유용하고 풍부한 과세정보자료를 제공하며 조세행정의 투명성과 편리성을 높였다고 평가된다.

사법도 국세행정과 같은 개혁 과정을 거쳐야 한다. 첫째, 모든 재판절차에 대한 구체적인 시한을 명시화하고 이를 따르도록 해야 한다. 선거법과 관련된 시한이 있는데 지키지 않아도 되는 비정상을 바로잡으면서 모든 재판의 시한을 명시하는 법적·관행적 노력을 해야 한다.
둘째, 판결문 등 각종 재판 관련 정보를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공개하고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재판에서 판결에 대한 불신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유무죄 판단은 판사가 하더라도 형량 결정이라도 모든 사법정보를 기초로 구축된 빅데이터를 이용하여 과학화해야 한다.
이를 AI 시대 사법개혁의 출발이라고 해도 좋겠다.

안종범 정책평가연구원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