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무생물에도 영혼 있다 믿어… 쓸모 없어진 바늘 위해 공양 [인류학자 전경수의 세상 속으로]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2.03 18:40

수정 2025.02.03 20:33

日 애니메이션과 애니미즘
삼라만상 모두 같다는 인식 깔려
영화 속에는 오물神이 등장하고
우주선 쏜후 '성공 주문' 빌기도
지난 2019년 2월 8일 열린 침공양의 날, 일본 도쿄의 한 사찰에서 부인들이 부러진 바늘을 두부판 위에 꽂고 있다. 전경수 교수 제공
지난 2019년 2월 8일 열린 침공양의 날, 일본 도쿄의 한 사찰에서 부인들이 부러진 바늘을 두부판 위에 꽂고 있다. 전경수 교수 제공

장어 공양을 위한 '만총(鰻塚)' 석비 전경수 교수 제공
장어 공양을 위한 '만총(鰻塚)' 석비 전경수 교수 제공

'작사'(JAXA·Japan Aerospace Exploration Agency)는 2003년 설립된 일본의 우주항공연구소다. 2007년 달 탐사선, 2015년 금성 탐사선, 2018년 수성 탐사선(공동) 성공을 발판으로 2018년에는 '하야부사'(매를 뜻하는 일본어)를 쏘아서 소행성 '류구'로부터 세계 최초로 샘플 채취에 성공해 지구에는 없는 광물질을 보고했다. 이 분야는 미국의 나사(NASA)를 앞섰다. 하야부사가 발사된 후 궤도상에 오르자 프로젝트의 책임자 요시카와 마코토 박사는 "과학적으로는 완벽하다.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이노루시카나이'"라고 하면서 두 손을 모으는 장면이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됐다.
"비는 일만 남았다"는 주문(呪文)이다. 누구에게 빈다는 것인가. 신(神)에게 빈다는 것인가? 이 신은 영어로 쓰는 유일신의 GOD와는 다르다. 일본사람들은 팔백만 신을 믿고 '삼계만령(三界萬靈)'이라는 말도 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영혼이 있다는 얘기다. 과학자인 요시카와 박사는 인공물인 인공위성의 영혼에 빌었고, 성공 여부는 '하야부사'에 달렸다고 생각했다.

일본에서 매년 2월 8일은 침공양(針供養)의 날이다. 1934년 아키타현 오가(男鹿)의 농가일지에도 2월 8일에 부인들이 침공양을 했다는 민속지를 읽었다. 12월 8일에도 했다. 나는 2004년과 2019년 두 번의 도쿄 사찰에서 '침공양제전'에 대한 관문참여(觀聞參與) 기회를 가졌다. '대동경화복재봉교사회(大東京和服裁縫敎師會)'란 깃발이 보였고, 병원 측에서 온 남성들과 간호사들도 참가했다. 커다란 향로에서 타는 향불 냄새가 짙었고, 부러지거나 구부러진 바늘 그리고 압침에 이르기까지 침과 바늘 형상인 것들은 모두 모아서 가지고 왔다. 작은 병이나 통에 담긴 바늘을 한 개씩 꺼내어 깨끗한 두부판 위에 꽂는다. 한 개씩 꽂을 때마다 무엇이라고 주문을 외운다. 무엇이라고 말했는지를 물었다. "그동안 고생하셨으니 이제 편히 쉬세요"라고 했다. 주로 두부판을 준비하지만, 곤약 전분으로 만든 묵판에 꽂기도 한다. 양재학원생들은 단체로 봉재용 침(손잡이 끝에 작은 플라스틱봉이 붙은 것)들을 가지고 왔다. 평생 딱딱한 것들을 찌르면서 고생했으니, 이제 부드러운 곳에 안치해 드린다는 얘기다. 공양의 주체는 침이고, 사람과 침은 혼효될 수도 있다. 현상학적 인식론에 한술 더 뜬 사상이다. 어떤 부인은 작은 병에서 바늘들을 꺼내어 '침총(針塚)'이라고 음각된 돌상자인 바늘 무덤에 넣는다. 마찬가지로 주문을 외운다. 구두수선공이 가지고 온 바늘은 크기도 달랐다. 타투업을 하는 사람은 문신에 사용하는 아주 길게 생긴 특이한 침을 가지고 왔다. 사찰의 스님에게 물으니 두부판 위의 바늘들은 나중에 모두 침총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봉제업자와 구두수선공, 병원 간호사들이 공양의 주체가 아니다. 침공양이라고 했는데, '공양'의 의미를 잘 새겨야 한다. 심청전에 나오는 '공양미 삼백석'의 '공양'과는 의미가 다르다.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할 공양미는 쌀이 객체이고, 심봉사가 주체이다. 사람이 주체가 되니 사람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한 톨의 쌀알이 아니고 삼백석이나 바쳐야 한다. 욕망에 비례해서 공양미의 양이 커지기 마련이다. 침공양에서는 부러진 바늘 한 개가 공양의 주체다. 사찰의 한쪽에는 '만총(鰻塚)'이라는 석비가 서 있다. 일본에는 여름에 장어(鰻)를 먹는 날이 따로 정해져 있다. 복날이나 마찬가지의 개념이다. 장어의 영혼에 공양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장어를 잘 먹게 해달라는 공양이 아니다. 그 옆에는 전사자영령비가 있고, 건너편에는 '필총(筆塚)'도 있다.

동식물을 숭배해 조상으로 여기는 신앙을 토테미즘이라고 한다. 육당 최남선은 일찍이 토템을 족령(族靈)이라고 번역했다. 단군과 관련되는 곰 신앙이 토템이고, 닭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와 관련이 있다. 그런데 이 땅에는 인공물에 영혼의 개념을 부여한 적이 없다. 일본은 다르다. 산이나 강과 같은 자연뿐만 아니라 사람이 만든 인공물에도 영혼이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버리는 쓰레기나 빗자루에도 영혼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길거리에 쓰레기가 없는 이유의 기본이 여기에 있고, 쓰레기통에 부러진 바늘이 있을 리가 없다.

한국사람들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의 '설국(雪國)'의 세계를 얼마나 이해할까? 알 듯 말 듯한 표현을 '미지의 세계'라고만 해석하니, 일본 동북 지방을 배경으로 만물의 영혼이 뒤섞여서 전개된 일본인들의 정신세계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에서 드러나는 표현들에 한국 청소년들이 매료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꿀렁거리는 액체 질감의 표현은 '모노노케 히메'의 시시가미·다이다라봇치(사슴신)와 '센과 치히로'의 오물신으로부터 드러난다. 인물의 감정변화를 나타낼 때 동물의 털이 서는 것처럼, 무엇인가 부풀어오르는 소름의 표현들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다카하타 이사오의 작품에서도 사람과 물건과 동물이 뒤섞이는 장면은 마찬가지로 등장한다. 대상의 그림이 식물이건 동물이건 무생물이건 구름이건 차이가 없다. 그야말로 극치와 골수의 애니미즘 세상이다. 삼라만상이 동일선상에서 표현되는 일본 특유의 문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오천년 전 암사동 사람들이 이런 유의 생각을 하였을까?

문화상대성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문화는 상대적이기 때문에, 어떤 다른 가치에 의해서 재단돼 평가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과연 이런 생각이 어느 정도까지 용납될 수 있는가? 애니메이션의 일본문화는 좋아할 수 있고, 동일한 뿌리에서 나온 가미카제와 같은 특공대의 일본문화는 싫어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일본문화의 특수성에서 드러나는 문제를 인류 보편의 윤리적인 가치로 제어할 수 있는 통로가 보편성이다. 문화의 특수성과 보편성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이 원칙은 일본문화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문화에서도, 이슬람문화에서도 그리고 그 하위를 구성하는 기업과 정당에서도 기본적으로 수용되어야 한다. 그래야 이 세상의 사람들이 어디에서나 편안하게 살아가는 삶의 기본이 조성된다.
세계사와 세계지리만 가르친다고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 타 문화를 가르쳐야 한다.
세계화 시대의 공생은 타 문화 이해가 기본이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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