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 통계 분석… 급증세 확연
2023년 1만건 넘어 4년 새 5배
근로기준법 '보호 대상'이지만
"언제 그만 나오라고 할지 몰라"
현실적으로 적극 대처 어려워
"제도·조직문화 개선 병행돼야"
2023년 1만건 넘어 4년 새 5배
근로기준법 '보호 대상'이지만
"언제 그만 나오라고 할지 몰라"
현실적으로 적극 대처 어려워
"제도·조직문화 개선 병행돼야"

#. 2년 전 한 중소기업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직장인 이모씨(29)는 계약기간 5개월을 다 채우지 못하고 퇴사했다. 상사의 인격모독과 비방,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면서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실수할 때면 "왜 시키는 대로 하지 않냐, 나를 무시하냐", "대학을 나왔는데 이것조차 모르면 어떻게 하냐"는 말을 들었다. 자신에게 '회의 개최' 자체를 알려주지 않은 적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을 토로할 동료는 없었다. 그는 "어느 날 사무실에 앉아 있다가 컴퓨터 본체가 자신에게 달려오는 듯한 느낌까지 받았다"며 "매일 이어지는 괴롭힘 앞에서 회사를 그만두고 상담과 치료를 받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해 9월 세상을 떠난 MBC 기상캐스터 고(故) 오요안나씨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 의혹이 불거지면서 비정규직과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어려움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은 직업 불안정성 높아 비슷한 일을 겪고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고 호소한다.
전문가들은 엄격한 근로감독을 통해 보복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구제하고, 프리랜서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적용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4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19년 2130건, 2020년 5823건 등에서 2023년에는 1만28건까지 치솟았다. 2023년 기준 하루 평균 27.5건꼴이다. 처리 현황별로는 개선지도 690건, 과태료 처분 187건이다. 검찰 송치는 153건이었는데 이 중 57건은 재판에 넘겨졌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2019년 7월부터 2022년 6월까지 고용부에 접수된 50인 미만 사업장의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은 총 1만749건으로, 300인 이상 사업장(2955건)보다 4배 많았다. 경찰청 관계자는 "직장 내 괴롭힘이 사건화되면 혐의점이 발견됐을 때 업무상 과실치사나 협박, 폭행 등으로 수사를 한다"고 설명했다.
규모가 작은 사업장의 근로자 외에 비정규직과 프리랜서도 수시로 괴롭힘의 표적이 된다. 고용 안정성이 낮은 고용형태 특성상 향후 불이익을 우려하기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에 노출되더라도 신고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분석이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언제라도 일자리가 끊길 수 있다는 위험성 때문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비정규직에 대한 괴롭힘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지난해 비정규직의 괴롭힘 심각 응답 비율이 정규직보다 8.1%p 높게 나타났다. 2019년 조사 때의 비정규직 39.9%, 정규직 37.3% 보다 격차가 더 벌어졌다. 비정규직 역시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 보호 대상이다. 하지만 신고했을 때 해결되기보다 일자리를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이들은 호소한다.
프리랜서는 상황이 보다 열악하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에서 사용자의 지휘와 통제를 받는 실질적인 근로자로 일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1년 가까이 걸리는데, 이를 증명하지 못하면 즉각적인 회사의 자체 조사와 업무 분리 조치, 유급휴가 등 보호조치를 요구하기 어렵다. 프리랜서는 통상 계약 기간이 정해져 있어 이같은 노력이 실익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들이 실질적으로 구제받는 방법은 민사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형사고소를 진행하는 것이다. 괴롭힘의 형태가 욕설이면 명예훼손으로, 폭행이 있었다면 폭행죄로 고소할 수 있다. 다만 결과가 나오기까지 길게는 몇 년이 걸릴 수 있어 신속한 피해 구제가 어렵다. 프리랜서였던 오씨도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다가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비정규직과 프리랜서가 직장 내 괴롭힘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근로기준법의 실효성을 높이고, 근로감독 제도 등을 활성화해 비정규직을 보호할 수 있도록 보호 행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김기홍 노무법인 돌꽃 노무사는 "프리랜서도 직장 내 괴롭힘의 문제에서만큼은 근로자처럼 보호받을 수 있도록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적용 대상을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도 마련과 조직문화 개선을 병행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하은성 샛별 노무사사무소 노무사는 "괴롭힘 신고가 적어도 근로자의 정당한 권리 행사이자, 잘못된 조직 문화에 대한 성찰 계기를 마련해 줬다는 식의 반응이 조직 내에서 나와야 (피해자가) 괴롭힘 문제를 제대로 공론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jyseo@fnnews.com 서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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