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2년 일본 된장인 미소 공장 부지에 세워진 엡손은 사업 초창기만 해도 시계로 가장 유명했다. 정밀한 작업이 요구되는 시계 사업은 '성(고효율)·소(초소형)·정(초정밀)'으로 대표되는 엡손의 경영 철학의 시초다. 이를 상징하듯 엡손 경영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스와 박물관' 기념관은 역대 세이코 시계 및 제조 장비들로 빼곡하게 차 있다. 1960년대 전후 방송국 등에서 사용한 장롱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크기의 초기 쿼츠 시계를 거쳐 3㎝ 크기의 세계 최초 전자식 쿼츠 손목시계 '아스트론 35SQ' 등이 이 곳에서 탄생했다.
히로시 카미지로 스와 박물관 디렉터는 "세계 '넘버원' 회사로 성장하기 위해 가장 정밀한 쿼츠 시계를 만드는데 모든 역량을 집약시켰다"며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스위스 '오메가' 대신 세이코가 공식 타임키퍼로 채택돼 정확성을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엡손의 주력인 프린터 사업도 시계 기술로 시작됐다. 엡손은 도쿄올림픽 경기에서 기록된 시간을 출력하기 위해 프린터 사업에 뛰어들었고, 1968년 첫 프린터인 'EP-101'을 세상에 내놨다. 당시 기존 프린터 대비 20분의 1 전력을 사용하며 손으로 쥘 수 있을 만큼 크기를 줄였다.

세계 최초의 휴대용 컴퓨터인 'HX-20'도 엡손이 1981년 개발한 제품이다. 1.6㎏의 가벼운 무게와 A4 크기의 본체, 최대 50시간 사용이 가능한 배터리를 갖춘 게 특징이다. 1982년 출시된 세계 최초로 TV 시청이 가능한 손목시계도 전시돼 있었다. 액정 패널로 TV를 볼 수 있는 이 제품은 1984년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작은 TV로 등재됐다.
지난 1998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 우주선 ‘STS-95’에 탑재된 독특한 이력을 지닌 프린터도 있다. 이 제품을 '우주에 갔던 프린터'라고 전시품을 소개한 카미지로 디렉터는 "우주선은 밀폐된 공간이어서 화재에 위험한 환경인데, 이 제품은 열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방식"이라며 "매우 정밀하고, 세밀하게 잉크를 분사해 무중력 공간에서도 정확하게 출력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mkchang@fnnews.com 장민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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