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 따라 재판' 헌법 규정
법관 주관적 판단 부추겨
구시대 조항, 외국은 삭제
법관 주관적 판단 부추겨
구시대 조항, 외국은 삭제

우리 헌법은 '양심'이라는 특별한 기준을 둬 법관의 주관적 판단을 부추기고 있다. 헌법 제103조에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돼 있다. 법관의 정신적 우월성을 인정하는 규정이다. 양심(良心)이 뭘까. "그 사람 참 양심도 없다" "양심의 가책"에서 쓰는 의미대로 '어진 마음'일까.
옮음과 그름을 분별하여 올바른 행동을 하려는 의식. 사전에서 풀이한 양심의 뜻이다. 법관마다 정의와 불의를 구분하는 가치관이 다를 것인데 '양심에 따른 심판' 규정은 개인의 판단을 지나치게 존중한다. 헌법의 양심에 대한 헌법학자들의 통설은 '법조적·객관적·논리적 양심'이다. 이른바 객관적 양심설로 개인의 가치관을 배제한 개념이다.
우리 사법부나 법관들은 이미 양심을 법관 개인의 재량권, 자의적 해석권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객관적이 아닌 주관적 판단이다. 공정성을 해치는 위험한 생각이다. 같은 사건을 놓고 각각의 잣대를 가진 법관들이 다른 판결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배가 고파 빵을 훔친 장발장은 유죄인가, 무죄인가. 저마다 달리 선고한다면 사법제도의 근간이 흔들릴 것이다.
형사 사건의 집행유예, 정상참작, 작량감경도 양심의 범주에서 행해지는 판결이다. 법관의 권한이지만 양심의 오남용은 사법 불신의 원인이 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말이 빈말이 아니다. 변호사를 잘 써서 거짓 참회한 피고인의 형량을 깎아주는 사례가 실제로 있다. 그 나름대로 정의로운 판결이라 해도 과도한 재량권은 들쭉날쭉한 양형을 부른다.
양심이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이념적 정치재판에서다. 주지하다시피 법관의 개인적 가치관에 따른 동사이판(同事異判)이 비일비재하다. 사법부에 만연한 이념의 폐해는 비상계엄 수사에서 익히 드러났다. '우리법연구회'란 좌파적 법관 모임이 논란의 중심에 있다. '판사쇼핑'이라는 비아냥도 나왔다. 물론 우파 법관의 편파적 판결도 있을 수 있다. 양심을 구실로 한 '이현령비현령'식 판결은 어느 한쪽에서는 신뢰를 얻지 못한다.
법관이 특별히 고매한 양심을 가진다고 볼 수 없다. 범인(凡人)보다 더 양심적이지도 않다. 가인 김병로나 '사도(使徒) 법관' 김홍섭이라면 모르겠으나, 발끝이라도 따라간 법관을 본 적이 없다. 법관도 인간일 뿐이고 '정의의 여신'은 실현되지 못하는 한낱 상징일 뿐이다. 법관의 권위는 법관에 의해 무너졌다.
갈등의 마지막 조정자로서의 사법부는 온데간데없다. 도리어 분열을 부추긴다. 그렇다면 법관의 양심 규정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 세계에서 법관의 양심 규정을 두고 있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한국은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 일본이 차용한 유럽 등에서는 다 삭제했다. 일본도 양심의 해석을 놓고 혼란스러워 한다.
지금 여러 헌법재판 사건을 심리 중인 헌법재판소가 "양심을 따라 판단하고 국민만 보고 간다"고 했다. 물론 미국의 연방대법원처럼 헌재는 사법부보다 이념적 판단에서 재량권이 있긴 하다. 그래도 헌재가 말하는 '양심'에서 이념의 냄새가 너무 심하게 풍긴다. '국민'은 여론재판의 다른 말로 들린다. 공정을 말하려는 것이겠지만 반대로 느껴진다.
법관의 양심이 불신의 씨앗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다음 헌법에서는 양심을 삭제하는 게 마땅하다. 오직 법률에 의한 기계적 판단이 더 공정할 수 있다. 머잖아 인공지능(AI)이 정의롭고 냉정한 판결을 내리는 날이 올 것이다. 얼마 남지 않았다.
tonio66@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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