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독재 시절의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재등장하고 있다. 윤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측은 '종북 좌파'에 장악된 국회가 사사건건 국정을 방해한다, 선거 결과를 믿을 수 없다, 이런 문제를 풀고 민생을 챙기기 위해 군대라는 물리적 공권력을 동원할 수 있다 등의 주장을 한다. 선거를 통한 문민통치, 법규에 입각한 국정운영, 권력 간 견제의 제도화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다. 그런데도 사회 일각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40~50년 전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권위주의 망령이 돌아와 민주주의와 재대결을 펼치는 듯하다.
이런 상황은 우리 모두를 반성하게 한다. 특히 식자층은 안이했다. 민주주의가 공고화 단계로 가면 그냥 거기 머물 거라고 믿었다. 선거에 의한 평화적 정권교체가 여러 번 있었다, 프리덤하우스도 우리나라를 민주주의 우등국가로 분류한다, 군사 쿠데타는 꿈도 꿀 수 없다 등등 자부심을 넘어 교만한 생각에 의심을 품지 않았다. 한국 민주주의를 해외에 수출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했다. 이런 와중에 친위 쿠데타를 시도하는 대통령이 나올 가능성과 그런 그가 상당한 유권자의 지지를 누릴 수 있다는 점을 등한시했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 재출현의 일차적·직접적 책임은 물론 윤 대통령 진영에 있다. 국회가 국정 협조를 거부하고 행정부 공직자를 자주 탄핵소추한다고 해서, 부정선거가 의심된다고 해서, 대통령 주변 인물들에 대한 사법조사가 옥죄어온다고 해서 정규 제도 틀을 벗어나 계엄이란 비상수단에 의존하려 했다. 대통령이 계엄령 선포와 동시에 국회를 해산하고 헌법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었던 유신헌법 때에나 가능했던 시대착오적·권위주의적 행동이다.
윤 대통령이 이런 어이없는 일을 벌이고 국민의힘과 일부 유권자가 그를 감싸드는 데는 현 야권이자 문재인 대통령 시절 여권인 진보세력의 문제점도 근본적으로 작용했다. 탄핵당한 박근혜 대통령의 뒤를 이어 집권한 문 대통령은 적폐청산의 완장을 찬 채 사회를 양극화시켰고, 극단적 기조로 보수 진영을 궤멸시키다시피 했다. 이때 보수 진영은 박 대통령이 저항 없이 너무 무기력하게 탄핵당해 자기네 전체도 힘없이 몰락했다는 피해의식을 느꼈을 것이다. 게다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 다수 의석을 이용해 행정부를 벼랑으로 몰고, '개딸'의 힘을 빌려 매섭게 당내 경쟁자들을 밀어내 당을 접수하는 모습을 보며 그의 집권은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막아야 한다는 공포심을 느꼈을 것이다. 이런 현 야권의 극단적 공세가 보수 진영에 반동적 결집·저항의 동기를 제공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비호는 그를 향한 애정이라기보다는 상대 측에 대한 반감과 공포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 내 진영 경쟁이 민주 대 반민주 체제 대결로 바뀐다면 그 전면전의 폐해가 심각해진다. 결국 반민주 측은 시대착오적인 극우 소수파로 전락하기 쉽다. 민주 세력도 체제 내의 정당한 견제와 건전한 경쟁 없이는 스스로 과두제로 흘러가기 쉽고, 결국은 분열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이러면 양쪽뿐 아니라 정치판 전체가 공멸하게 된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굳어지지 않도록 정치권과 유권자의 대오각성이 필요한 때다.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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