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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우 교수의 호르몬 백과사전] 현대인의 멜라토닌 분비량, 괜찮을까?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2.08 07:00

수정 2025.02.08 07:00

[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안철우 교수의 호르몬 백과사전] 현대인의 멜라토닌 분비량, 괜찮을까?

멜라토닌을 생명체 최초의 호르몬, 고대 호르몬(ancient hormone)이라고 표현한다.

그 이유는 멜라토닌을 생성하는 주요 세포기관이 미토콘드리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호르몬으로서의 멜라토닌은 뇌의 송과선에서 분비되지만, 사실 체내 모든 세포가 멜라토닌을 분비한다. 세포 안의 미토콘드리아가 자체적으로 멜라토닌을 합성해 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체 대부분의 장기와 근육, 피부에서도 멜라토닌이 검출된다. 혈액에서 검출되는 양보다 조직에서 검출되는 양이 오히려 더 많다.

미토콘드리아는 진핵생물의 세포 안에서 세포호흡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세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는 아데노신3인산으로 알려진 ATP가 유일하다. 미토콘드리아는 호흡을 통해 ATP를 합성해서 세포 안에 저장한다. 그리고 모든 생명활동에 이 에너지를 사용한다. 미토콘드리아가 없는 일부 원생생물이나 기생충을 제외하고, 모든 생명체는 미토콘드리아의 ATP 합성을 통해 에너지를 비축하고 생명을 유지한다.

멜라토닌이 미토콘드리아에서 생산된다는 것은 그만큼 그 기원이 오래되었다는 뜻이다. 진핵생물의 탄생이 기원전 27억년인 신시생대이므로 멜라토닌도 그만큼 오래된 분자로 추정한다.

그렇다면 고대의 멜라토닌은 생명체 안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했을까. 과학자들은 고대의 멜라토닌은 항산화제로 작용했을 거라고 추측한다. 고대의 대기에는 산소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다량의 활성산소가 만들어져 생명체에 위협이 되었다. 그래서 미토콘드리아가 멜라토닌을 합성하여 활성산소를 상쇄시키는 진화를 했을 거라는 가설이 성립한다.

이후 단세포 생물에서 다세포 생물로 진화하면서 24시간 주기에 맞춰 생체 리듬을 만들고 염증을 억제하고 다른 분자와 결합하여 새로운 물질을 합성하는 기능까지 갖추게 되었을 거라고 추측한다. 멜라토닌이 지금처럼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의 기능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척추동물의 탄생 이후인 4억5000만년 전으로 추정한다. 이후 1억7800만년 전 포유류가 탄생하면서 더 구체화되었다.

이렇게 오랜 세월을 진화했지만 멜라토닌은 고대의 분자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다. 그래서 항산화, 항염 등 하등생물에서 가졌던 본래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서캐디언 리듬, 혈압, 체온, 면역, 비만억제 등의 복잡한 기능까지 수행한다.

그렇다면 현대인의 멜라토닌 분비량, 괜찮을까? 이제 우리는 멜라토닌이 호르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호르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걱정에 빠지는 사람들이 꽤 많을 것이다.

불규칙한 수면 패턴, 부족한 잠에 시달리는 현대인, 특히 잠들기 직전까지 TV와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보는 도시인들은 그만큼 수면의 질이 낮기 때문에 멜라토닌 분비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안타깝게도 비타민 부족에 대해서는 자료가 많지만 호르몬 부족에 대해서는 자료가 많지 않다. 비타민은 인간이 스스로 합성하지 못해서 반드시 음식을 통해 몸에 공급해야 하는 영양소다.

그래서 각 나라 정부들은 연령별, 지역별, 소득별로 비타민 섭취 상태를 조사하여 특정 집단에서 비타민 부족 증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국민 보건 차원에서 관리한다.

그런데 호르몬은 이런 관리가 없다. 호르몬은 인체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내분비 물질이라서 관리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이다. 특별히 호르몬 장애가 발생하지 않는 한 대체로 정상범위 내에서 분비되고 조금 부족해도 자각증상이 별로 없는 것도 관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이다.

수면부족과 불면증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볼 때 과거보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멜라토닌 부족 상태에 직면해 있는지도 모른다. 2021년 미국수면협회의 조사에 의하면 수면 장애를 겪는 미국인이 5000~7000만명에 이르고 3분의 1 이상의 미국 성인이 7시간 이하로 잠을 잔다고 한다.

또 불면증에 대한 조사를 리뷰한 2020년의 논문에 따르면 매년 일시적 혹은 만성적 불면증을 호소하는 미국 성인이 전체 인구의 30~40%에 이른다고 한다. 세계 통계도 비슷한 상황을 말해준다. 2019년 필립스 글로벌 수면 조사를 보면 44%의 성인이 지난 5년 동안 수면의 질이 나빠졌고, 67%가 매일 밤 한 번 이상 잠을 설친다. 10명 중 8명이 수면의 질을 개선하길 원하지만 60%는 의학적 치료법을 시도하지 않는다.

수면 부족은 성인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2014년 미국가정의협회의 조사에따르면 50%의 아동이 수면 문제를 겪고 있고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을 겪는 아동이 1~5%에 이른다. 2015년 미국질병예방센터의 조사에서는 미국 고등학생의 거의 4분의 3이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발표된 연구에서는 대학생의 60%가 수면의 질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도 수면장애 환자가 매년 8%씩 증가해서 2021년 거의 80만 명이 진료를 받았다. 특히 60대와 20~30대 남성에서 환자의 증가율이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안철우 교수의 호르몬 백과사전] 현대인의 멜라토닌 분비량, 괜찮을까?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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