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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숙의 기술빅뱅] 딥시크의 젊은 천재들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2.10 18:39

수정 2025.02.10 18:39

中정부 공들인 인재 창고
세계 빅테크 위협 새물결
AI강국 언제까지 말로만
최진숙 논설위원
최진숙 논설위원
젊은 시절 프랑스와 러시아에서 견문을 넓힌 중국의 덩샤오핑은 전문가 우대 생각이 확고했다. 미국과 수교를 추진하며 덩이 가장 집중했던 분야도 실은 무역이나 투자보다 과학과 교육이었다. 수교를 앞둔 1978년 7월 지미 카터 대통령의 과학고문 프랭크 프레스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덩은 기다렸다는 듯 깜짝 제안을 한다.

수교 전에 중국 유학생 700명 정도를 미국이 바로 받아주고 몇년 내 수만명을 추가로 더 받아달라는 것이 덩의 요구였다. 프레스는 즉시 워싱턴으로 전화를 건다.

워싱턴 시간은 새벽 3시다. 백악관 입성 후 한밤중에 거의 일어난 본 적 없던 카터는 어리둥절했으나 문제 될 게 없다고 화답한다. 프레스가 방중 내내 받은 환대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덩샤오핑 평전, 에즈라 보걸').

과학인재에 대한 덩의 집착은 대단했다. 인재 유출이 걱정되지 않느냐는 서방 기자들의 질문엔 "해외서 눌러앉는다 해도 중국의 자산"이라고 받아쳤다. 덩은 야심 찬 대학 프로젝트도 밀어붙인다. "21세기를 대비해 일류대학 100개를 키우겠다"는 포부로 1991년부터 막대한 예산을 대학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이것이 중국 대학굴기의 출발점 '211공정'이다.

후진타오 집권기인 2008년부터 10년간 가동된 '천인계획'은 해외 석학을 겨냥한 강력한 고급인재 유입책이었다. 노벨상 후보로 거론됐던 탁월한 업적의 과학자들이 천문학적인 보수를 약속받고 중국행을 택했다. 양자역학 권위자였던 장서우청 미국 스탠퍼드대 물리학 교수도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그는 2018년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산업스파이 혐의로 수사 칼날을 들이대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운의 학자다. 천인계획의 희생양은 지금도 나온다. 뒤집어 말하면 실은 여전히 종료되지 않은 진행형 프로젝트라는 뜻이다.

중국은 천인계획을 확장해 시진핑 집권 첫해였던 2012년부터는 '만인계획'을 추진한다. 10년 동안 자국 내 고급 인력 1만명을 뽑아 세계적인 인재로 키우고, 노벨상 수상이 기대되는 과학자 100명의 교육을 책임지겠다는 것이 골자였다. '211공정'의 심화버전인 '쌍일류 프로젝트'도 이 무렵 나왔다. 베이징대, 칭화대 등 40여개 핵심 대학에 대규모 재정지원을 집중화한 것이 핵심이었다. 시진핑은 이들 대학을 2020년 세계적 수준으로, 2030년 이후엔 세계 최고 반열에 올려놓겠다고 선언했다. 당시엔 다들 반신반의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미국 네이처 발표로 지난해 과학분야 10대 세계 최상위 대학 가운데 2~9위가 전부 중국 대학이다. 저장대도 이 순위에 든다.

저장대 출신 40세 량원펑이 이끄는 2년차 스타트업 딥시크의 충격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천문학적 자금을 들여야만 가능할 것 같았던 인공지능(AI) 추론모델을 량과 몇 안 되는 국내파 젊은 천재들이 해냈다. 중국의 자국 내 기술인재 수급체계가 완성됐다는 걸 말해줄 뿐만 아니라 허황되기 그지없어 보였던 중국몽이 얼추 계획대로 이뤄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불현듯 하게 만든 사건이다.

중국이 10년 전 10개 기술을 지목하며 자립도를 획기적으로 높이겠다고 선포한 계획이 '중국 제조 2025'였다. 그 첫 기술에 해당된 것이 AI였다. 앞서 2017년엔 대대적인 AI 산업진흥책을 발표했다. 딥시크의 성취는 중국 정부의 막후 계획과 떼어놓을 수 없다. 서방의 딥시크 금지령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마땅한 조치로 봐야 한다.

AI 경쟁은 국가를 등에 업은 젊은 천재들의 두뇌싸움으로 가고 있다. 량원펑은 동갑내기 샘 올트먼 오픈AI 대표 이상으로 흥미로운 인물이다. 시골 출신 수학천재가 졸업 후 헤지펀드로 거부가 돼 여기서 나온 자금으로 딥시크를 움직였다. 원하는 건 돈보다 존경이라고 서슴지 않고 말한다. 비로소 적수를 제대로 만난 올트먼의 반격도 많은 이들의 관심사다.
이 격전의 현장에 우리는 아직 등판조차 못했다. 미적분을 척척 푸는 초등생들이 여전히 의사 가운 입기에만 목을 맨다.
계속 이렇게 둘 것인가. 국가 리더의 역할을 다시 생각한다.

jins@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