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김경민 특파원】 일본이 5년 연속으로 미국에 가장 많이 투자한 국가로 나타났다. 엔저(엔화가치 하락)와 인력 부족이라는 리스크 속에서도 일본 기업들은 자동차, 식품, 인공지능(AI)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현지 생산을 확대하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내건 '대미 투자 1조달러(약 1455조원)' 목표도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11일 미 상무부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일본의 대미 직접 투자 잔액은 7833억달러(약 1139조원)로, 캐나다·독일·영국을 제치고 5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2024년 7~9월 일본 기업들의 미국 내 부동산·공장·설비 투자액도 26억달러로 전년동기대비 11% 증가했다.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에서 "일본은 경제적으로 미국의 가장 긴밀한 파트너"라고 강조하며 "대미 투자액을 1조달러라는 전례 없는 규모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대미 투자 증가를 견인하는 것은 자동차 산업이다. 도요타는 노스캐롤라이나주에 140억달러를 들여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건설, 올해 4월부터 본격 가동할 예정이다. 혼다도 오하이오주 공장에 10억달러를 추가 투자해 전기차 생산 라인을 확충한다.
현지에서 일본 음식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식품 업계의 대미 투자도 활발하다. 닛신식품은 47년 만에 미국 내 새 즉석라면 공장을 가동했다. 키코만은 위스콘신주에 새 간장 공장을 건설해 내년 가을 출하를 목표로 하고 있다.
AI와 반도체 분야도 일본이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영역이다. 소프트뱅크는 AI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 '스타게이트'에 3조엔(약 29조원)을 들여 오픈AI, 오라클과 공동 출자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은 AI 관련 총 투자액이 500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스미토모화학이 반도체 공정용 세정액 공장을 텍사스주에 신설해 연내 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그러나 일본 기업들의 대미 투자가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지속되는 엔저 현상과 미국 내 인력난이 투자 비용을 끌어올리고 있어서다. 일본에서 번 돈을 미국 투자에 투입하면 비용 부담이 커지고, 미국의 역사적으로 낮은 실업률은 기업들의 인력 확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추가 관세 가능성도 비용 부담과 직결된다.
한편 한국의 대미 투자 잔액은 약 2000억달러 규모로 세계 9위 수준이지만 최근 들어 '큰 손'으로 부상했다. 2023년 한 해에만 한국 기업들은 미국에 총 215억달러를 투자해 최대 대미 투자국에 올랐다. 미국 내 생산 의무를 골자로 하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그 해 우리 기업들이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공장 건설 계획 등을 잇따라 발표하면서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탄은 대미 무역흑자국을 정조준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무역적자는 9184억달러로 전년보다 17% 증가했다. 국가별로는 중국과 무역에서 가장 많은 2954억달러의 적자를 봤다. 이어 유럽연합(EU·2356억달러), 멕시코(1718억달러), 베트남(1235억달러), 아일랜드(867억달러), 독일(848억달러), 대만(739억달러), 일본(685억달러), 한국(660억달러) 순이었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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