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년 전 트럼프식 협상이 시작됐다"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미국에 수입되는 모든 철강 및 알루미늄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포고문에 서명하면서 철강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한국에 적용됐던 '철강 쿼터제'(할당제)가 철폐된 것이어서 가격 경쟁력에 큰 타격을 받게 됐다.
철강업계는 할당 물량이 줄더라도 협상을 통해 쿼터제를 복원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7년 전처럼 보편관세를 매긴 뒤 개별 협상을 벌이는 전략을 공식화했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분석이다.
정부는 주요 철강사들과 간담회를 갖고 머리를 맞댔지만,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인 '국정 공백'이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美 "철강·알루미늄 관세 25%"…업계선 "선물보따리 내놓으라는 것"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백악관 집무실에서 미국에 수입되는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한다는 내용의 포고문을 발표했다. 이번 관세 부과는 3월 12일(현지시간)부터 적용되며 한국도 대상에 포함됐다. 우리나라에 적용되는 기존 비관세 쿼터제는 폐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예외나 면제는 없다"고 못 박았는데, 쿼터제를 적용받고 있는 한국도 25% 관세를 물게 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철강에 25%, 알루미늄에 10% 관세를 부과한 적이 있는데, 한국은 협상을 통해 연간 263만 톤까지 무관세 적용을 받아왔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대미(對美) 철강 수출량은 2023년까지 쿼터 내 범위(259만 톤)까지 머물렀다가 지난해 277만 톤으로 늘었다. 현재까진 초과량인 14만 톤(5.3%)에만 관세가 붙었다면 이제는 전체 물량에 관세가 붙어 K-철강의 가격 경쟁력에 치명타가 불가피해졌다.
업계에선 "트럼프식(式) 관세 협상이 시작됐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는 '선물 보따리를 가져오라'는 것"이라며 "모든 국가에 플랫(Flat)하게 25% 관세를 매기고, 협상해서 개별 국가마다 다르게 쿼터제나 관세율을 조정하겠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탄핵 정국으로 협상의 키(Key)를 잡을 정부가 '리더십 공백'에 빠져 있다는 게 뼈아픈 현실이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는 전날 대외경제현안간담회를 열고 업계 의견을 청취했지만, 아직 대미 협상 로드맵이 구체적으로 논의되진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미 정상회담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지난 7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대미 투자를 1조 달러(약 1457조 원)까지 늘리겠다고 한 것을 언급하며 "정상회담에서 통 큰 합의가 나오고, 밑단에서 협상이 급물살이 타는 그림이 필요하다"며" 당장은 기대하기 어렵지 않겠나"라고 했다.
"박리다매냐 美 이전이냐"…플랜 B 수립 나선 철강업
철강업계는 비상체제를 가동하고 미국 정·관계와 소통하며 전략 수립에 나선 상황이다. 25% 관세가 붙는 대신 물량 제한이 없어진 만큼 저부가 철강재로 박리다매를 노리는 전략부터, 현지에 제철소를 세워 북미 물량을 돌리는 방안까지 시나리오 검증에 분주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쿼터제가 있던 때에는 (수출) 물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최대한 고부가가치 위주의 철강재를 수출해 이익을 극대화했다"며 "이제는 질보다는 양으로, 저부가 철강재를 최대한 많이 수출해서 마진을 올리는 방식도 고려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포스코·현대제철(004020)·세아그룹 등 주요 철강사들은 미국 현지에 제철소 건설을 검토 중이다. 세아그룹은 텍사스주에 연간 6000만 톤 규모의 특수합금 공장을 현재 건설 중으로, 내년 중반에 완공해 2026년 상업 가동을 할 예정이다. 현대제철과 포스코의 현지 제철소 건설 검토에도 가속도가 붙을 수 있다.
업계에선 "민·관 원팀 대응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확산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가 목전에 임박한 만큼, 쿼터제 복구 또는 관세율 조정을 위한 대미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가 이날 자국 기자들과 만나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한 사실을 밝히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호주에 대한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 면제를 검토하기로 합의했다"고 언급한 것이 대표적이다. 호주는 트럼프 1기에도 발 빠른 협상으로 무관세 혜택을 입은 바 있다.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은 지난달 14일 철강협회 신년인사회에서 2018년 트럼프 1기의 관세 부과 당시 업계와 정부가 원팀을 이뤄 '철강 쿼터제'를 끌어냈던 사례를 언급하며 "철강업계가 하나 돼 보호무역주의 파고를 슬기롭게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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