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기고

[기고] 정월대보름의 오곡밥, 잡곡이 주는 영양학적 균형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2.11 18:14

수정 2025.02.11 18:14

곽도연 국립식량과학원장
곽도연 국립식량과학원장
사람들은 '처음'이란 단어에서 오는 설렘을 좋아한다.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첫눈'과 가보지 않은 길의 '첫걸음'처럼, 이제 곧 2025년의 '첫 보름달'을 만나게 된다. 음력 1월 15일 정월대보름, 그날의 설렘은 추운 겨울을 보내고 생기 넘치는 봄을 맞이할 수 있다는 기대를 안고 찾아온다.

정월대보름은 다양한 세시 풍속과 음식을 통해 한 해의 풍요와 건강을 기원하는 대표 명절 중 하나다. 하지만 현대 들어 정월대보름은 점차 잊혀가고, 서구 문화인 밸런타인데이가 2월의 대표적인 기념일로 자리 잡았다.

이는 급격한 산업화와 서구화로 인해 음력 대신 양력을, 밥 대신 빵을, 한옥 대신 아파트를 선호하는 삶의 방식으로 변화한 결과다.

전통을 고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현대적 시각으로 계승하고 재창조하는 것이다.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전통 음식도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재해석한다면 훌륭한 먹거리 콘텐츠로 거듭날 수 있다.

특히 정월대보름의 대표 음식인 오곡밥은 단순한 전통 음식을 넘어 '웰빙푸드'로 주목받고 있다. 주로 찹쌀에 팥, 검정콩, 수수, 기장, 조 등을 섞어 만드는데, 이 곡물들은 각기 다른 영양소를 제공하여 균형 잡힌 식단을 구성한다.

팥은 사포닌 성분이 풍부해 항비만 효과와 혈압을 낮추는 데 도움을 주고, 검정콩은 항산화 성분인 안토시아닌과 항암 및 골다공증 예방에 좋은 이소플라본 12종이 들어 있다. 수수는 폴리페놀 성분으로 항암 및 항산화 작용이 뛰어나며, 기장은 탈모 예방에 도움을 준다. 조는 철과 칼슘이 풍부해 뼈 건강과 빈혈 예방에 효과적이다.

여기에 정월대보름의 아홉 가지 나물까지 곁들이면 보름달처럼 꽉 찬 건강 식단이 완성된다. 특히 환경과 건강을 중시하는 '가치 소비 트렌드'가 확산되는 요즘,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훌륭한 선택이 될 것이다.

또한 현대 사회에 만연한 당뇨병, 고혈압 등 만성 질환 예방책으로 잡곡 중심 식단이 주목받고 있다.

국립식량과학원은 한양대, 충북대와 함께 항당뇨·항고혈압 활성이 우수한 잡곡 블렌딩 기술을 개발하여 최적 혼합비율을 설정했다. 이 연구 성과는 항고혈압 환자용 영양조제식품, 항당뇨 선식 등 다양한 가공식품 개발로 이어지고 있다.
국산 잡곡의 산업화는 국민건강 증진과 소비촉진에도 기여할 것이다.

'오늘의 한 끼가 내일의 나를 만든다'는 말처럼, 매일 먹는 음식은 우리의 건강과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정월대보름을 맞아 영양 가득한 오곡밥 한 끼로 2025년 한 해의 건강을 기원하며, 이번 기회를 통해 균형 잡힌 식습관을 실천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만들어보길 바란다.

곽도연 국립식량과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