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불복의 정치'가 낳은 계엄 사태

김윤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2.11 18:21

수정 2025.02.11 18:21

김윤호 정치부
김윤호 정치부

탄핵정국을 야기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윤 대통령이 밝힌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부정선거 의혹과 야당의 입법권 남용이다. 언뜻 극우의 편향적 인식으로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정치권의 '승복하지 않는 행태'가 쌓인 결과이다.

부정선거론은 불복하는 태도의 전형이다. 처음 대대적으로 의혹을 설파한 건 다름 아닌 진보진영이었다. 2012년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패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자 방송인 김어준씨는 부정선거를 주장했다.

당시 성남시장이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동조했다. 박 대통령이 국정농단 사태로 파면당하고 2017년 5월 치러진 19대 대선. 미리 불복할 근거를 마련하려는 듯, 김어준씨는 18대 대선 부정선거 의혹을 담은 영화 '더 플랜'을 같은 해 4월 개봉했다. 그러다가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자 부정선거론은 진보진영에서 모습을 감췄다. 부정선거론은 국민의힘의 선거 연패를 양분 삼아 보수진영에까지 퍼졌고,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선거에 승복하지 않는 분위기가 자리 잡게 됐다.

승복할 수 없는 상대는 당연히 존중할 수도 없다. 여야 갈등이 해를 거듭할수록 거세진 원동력이다. 절정은 2019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와 준연동형비례대표제 선거제 개편을 두고 몸싸움을 벌인 '동물국회'이다. 이때 깊어진 갈등의 골은 국회에서 토론과 타협을 지우고 고발과 독단을 낳았다. 여야는 부딪치면 토론하기보단 온갖 법을 끌어다 고소해 '정치의 사법화'를 자행했고, 협상을 통해 절충안을 마련키보단 거대야당의 단독처리만 반복했다. 결국 윤석열 정부 들어 야당의 입법독주와 29차례의 탄핵 남발, 감액예산안 의결 등 전횡이 벌어지기에 이르렀고 계엄이라는 비극을 맞았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부정선거론에 심취한 계기는 김어준씨의 주장과 영화인 것으로 전해졌다. 진보진영이 악용했던 부정선거론이 12년 동안 진영을 넘나들며 확산된 끝에 계엄 사태까지 이어지는 나비효과를 일으킨 것이다.

최근에는 판결마저 불복하겠다는 분위기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을 맡은 헌법재판소를 향한 여권의 공세가 공공연해지면서다. 야당이 이 대표 관련 사건을 맡은 검사들을 탄핵했던 탓에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심정일 테다.
하지만 선거와 재판을 존중하지 않는 건 우리 사회의 기반인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무너뜨리겠다는 의미이다. 허물어지는 모래밭 위에는 그 어떤 것도 세울 수 없다.
어느 집권세력이 나타나든 타협의 정치와 제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면 정권을 지속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uknow@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