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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기의 외교포커스] 트럼프, 北에 러브콜 '속내'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2.11 18:23

수정 2025.02.11 19:20

美北 정상회담 추진 의사
中과 떼어놓으려는 전략
노벨평화상 수상 기대도
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
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아부의 기술"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샀다는 평가도 있지만, 지난주 미일 정상회담에서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과 대미투자 1조달러 약속 등 트럼프에게 통 큰 선물을 주고, 센카쿠열도 방위공약을 재확인하는 등 국익을 확실히 챙겼다는 게 대체적 관전평이다. 트럼프와 첫 대면외교에서 경제분야에서 적절히 양보하고 안보분야에서 국익을 확실히 챙긴 이시바의 '거래외교'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일 정상회담 공동선언문을 보면 트럼프 행정부가 고립주의로 후퇴할 것이라는 그간의 우려와 달리 인태지역에서 안보적 관여를 축소하려는 징후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미국·일본·인도·호주 4개국 협의체인 쿼드(Quad), 한미일 3국 협의체 등 바이든 행정부가 구축한 격자형(lattice-like) 소다자 안보협력 체제를 계승해서 확대·발전시키고 동중국해, 대만, 남중국해 등에서 중국의 힘에 의한 현상 변경행위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기존 공약을 재확인하고 있다. 이런 기조가 트럼프 행정부의 향후 인태지역 전략으로 굳어질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북한 관련 사항이다. 얼마 전 트럼프가 북한을 '핵 국가(Nuclear Power)'로 지칭해서 북핵을 인정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자아냈지만, 이번 공동선언문에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공약을 명시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하지만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는 '좋은 사이를 유지하고 있는 김정은과 다시 관계를 맺을 것'이라며 향후 미북 정상회담 추진 의사를 표명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과거 김정은과 협상을 통해 "전쟁을 막았다"고 한 발언이다. 2018~2019년 북미회담이 '하노이 노딜'로 끝난 비핵화 실패가 아니라,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은' 자신의 외교적 성과라는 뜻이다. 자존심이나 공명심에서 한 말일 수도 있지만 향후 김정은과의 정상회담 목표가 굳이 비핵화가 아닐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미북 간 협상이 재개되어도 북한 비핵화 목표를 전제로 한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은 현재로선 크지 않다. 북한이 핵무기를 자발적으로 포기하거나 미국이 원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제거 요구에 순순히 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미북 정상회담 목표가 북한 비핵화가 더 이상 아니라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그 경우 일련의 외교협상 이벤트로 미북 간 대화국면을 조성하고, 협상의 최종 목표는 모호하게 유지한 채 '핵동결'이나 핵실험·ICBM 발사유예(모라토리엄) 합의 등 '스몰딜'로 북한의 군사도발을 적절히 자제시키는 수준에서 타협할 가능성도 있다. 만약 트럼프가 북한의 잠정적 군사도발 중단을 '한반도 평화' 달성으로 포장해서 자신의 외교적 업적으로 과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미북회담을 추진하는 것이라면 김정은도 결국 이런 회담에는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가 북한 비핵화에 대한 자신만의 해법이 정말로 있어서 대화를 하려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여로 노벨상을 타려는 단순한 공명심으로 대화를 원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지만 비핵화는 단념하고 북한 문제를 적당한 선에서 갈무리해 두려는 것일 수도 있다. 대중국 견제 전략 차원에서 잠재적 교란요인인 북한을 미리 관리해 둠으로써 미중대결 국면에서 국지도발 등 북한이 중국에 전략적 조력을 제공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고 더 이상 북한에 신경쓰지 않고 중국 견제에 집중하려는 고도의 전략적 셈법일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미국은 중국에 집중하는 것으로 전환하고, 북한 위협은 한국이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 지명자의 '한미동맹 재조정'론 같은 생각이 밑바닥에 깔려 있을 수도 있다.


결국 트럼프의 북한 '러브콜'의 진의가 무엇인지 아직은 '불확실성' 그 자체다. 하지만 트럼프의 북미대화 의지만큼은 이제 분명하게 드러났다.
한미 당국 간 긴밀한 소통이 무엇보다 긴요하다.

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