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뉴스1) 전민 기자 = 최근 정치권과 한국은행, 학계 등 각계에서 경기부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필요성을 제기하는 가운데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사실상 반대 의견을 내 눈길을 끈다.
추경 편성을 위한 법적 요건에 맞지 않고, 재정보다는 통화정책을 통한 경기부양이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이다.
12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KDI는 전날 '경제전망 수정'을 통해 올해 경제성장률을 2.0%에서 1.6%로 0.4%포인트(p) 낮췄다. 이는 정부(1.8%), 한국은행(1.9%), 피치(1.7%) 등 주요 국내외 기관이 제시한 전망과 비교해 한층 더 낮은 수치다.
KDI는 지난해보다 내수 부진은 완화되겠지만,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관세정책에 따라 수출 증가율이 둔화될 것으로 봤다.
특히 KDI는 통화·재정정책을 통해 경기를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추경 편성에는 신중론을 제기했다.
최근 여야 정치권에서 추경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한국은행 등 기관들도 직·간접적으로 추경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15조~20조 원 규모의 추경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으며, 그간 추경에 부정적이던 여권에서도 추경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먼저 KDI는 현재 경제 상황이 국가재정법상 추경 요건에 해당한다고 보지 않았다. 국가재정법에서는 추경 요건을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 대량실업, 경기침체로 규정해 놓고 있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성장률이 1%대 중후반이면 이것을 경기침체로 판단할 수 있는가, 대량 실업이 발생하고 있는가를 보면 저희 판단에는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경기 뒷받침이 필요하지만, 아직 추경의 요건이 갖춰졌다고 명확하게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KDI는 추경을 통한 재정승수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KDI 분석에 따르면 재정승수는 항목에 따라 0.2~0.5 수준이다. 만일 10조 원의 재정을 투입하면 국내총생산(GDP)은 2조 원에서 5조 원 정도가 증가하는 것이다.
만일 20조 원 규모의 추경이 이뤄질 경우 최소 4조 원에서 10조 원의 GDP 증가 효과가 발생한다. 2500조 원 수준인 GDP를 고려하면, 성장률 증가 효과는 최대 0.4%가 될 수 있지만, 적게는 0.16%에 그칠 수도 있다.
따라서 재정정책보다는 기준금리 인하를 통해 통화정책으로 경기를 뒷받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정 실장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둘 다 경기를 뒷받침할 수 있지만, 통화정책은 여전히 긴축적인 기조이며, 조금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며 "재정정책은 코로나19를 지나면서 적자가 많이 확대됐으며, 올해 예산도 GDP 대비 2.8% 적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긴축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중립금리를 대략 2% 중반 정도로 보면, 현재 기준금리(3.0%)에서 안 좋은 상황을 생각해 적어도 두세 차례 정도 내리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본다"고 했다.
"올해 물가, KDI 전망대로 1.6%면 先금리인하가 맞아"
KDI의 선(先) 금리인하 주장은 물가 판단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KDI는 수정 전망에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한은의 물가안정 목표치(2.0%)보다 낮은 1.6%로 전망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추경의 비용이 편익보다 더 크고, 물가 상승률이 물가안정 목표보다 낮기 때문에 KDI가 기준금리 인하를 통해 경기를 부양할 여건이 된다고 본 것"이라고 분석했다.
석 교수는 이어 "통상 경제학에서 통화정책이 재정정책보다 경제에 반영되는 시차가 짧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물가 상승률 등 KDI의 경제전망이 맞을 경우 추경보다 통화정책으로 대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상황이 법적인 추경 요건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추경 여부는 결국 국회에서 판단할 일이기 때문에 KDI도 그런 차원에서 추경 요건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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