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겨울에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고 있다. 그냥 눈도 아닌 습기를 많이 머금은 폭설이다. 폭설로 인한 피해 역시 내린 눈의 양에 비례해서 늘고 있다. 겨울이 아니라 여름이었다면 눈이 아닌 비로 인한 피해였을 것이다.
눈 피해 말고도 요즘 경제지표 발표나 분석이 나왔다 하면 새로운 걱정거리가 추가되고 있다.
최근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은 825조7228억원에 달한다. 이는 전년 동기(770조1450억원)보다 55조5778억원(7.2%) 증가한 수치다.
같은 기간 대기업 대출은 138조9484억원에서 163조996억원으로 24조1512억원(17.4%) 늘어난 반면 중소기업 대출은 631조1966억원에서 662조6232억원으로 31조4266억원(5%)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한 달 동안 대기업 대출은 한 달 동안 4조7061억원 급증했지만 중소기업 대출은 3942억원 찔끔 느는 데 그쳤다.
이는 지난해 금융당국이 가계대출을 조이자, 은행들이 부실 위험이 작은 대기업 대출에 치중했기 때문이다. 특히 고환율로 대출 여력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연체율이 높은 중소기업이나 개인사업자 대출을 줄이는 식으로 대응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소기업이 대기업보다 자금조달이 더 쉽지 않은 셈이다.
각종 악재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의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실적 달성에 실패한 중소기업들의 이번 연말 상여금은 자취를 감췄다. 그 대신에 중소기업 채무 조정이나 파산 절차로 법원만 바빠졌다.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법원에 파산을 신청한 법인은 1940건으로 관련 기록이 집계되기 시작한 2014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앞서 최대치였던 2023년(1657건) 대비 17.08% 증가한 수치다. 올해도 경기침체에 더해 원·달러 환율마저 고공행진하고 있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가능성이 크다.
상당수 기업은 영업이익 축소로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처지다. 중소기업 대출도 마구잡이식보다는 옥석 가리기를 해야 한다. 은행이 대출안정성을 생각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은행 건전성에 문제가 없는 한 자금줄을 틀어막지 않아야 할 부분도 있다. 신규 설비에 투자하려 해도 영세 중소기업에 은행 대출의 문턱은 높기만 하다. 외환위기 때보다 더하다는 경제난에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기술력을 인정받은 중소기업은 담보 없이 보증이나 신용만으로 대출 혜택을 받기도 하지만 다수 중소기업은 언감생심이다. 중소기업공제사업기금 등 지원제도로 자금조달의 숨통을 터주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내수침체, 투자 감소, 최저임금 상승 등의 비용 증가로 중소기업 체감경기가 악화되고 있다. 선택하고 집중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유망 중소기업만 도울 수는 없다.
중기업계 관계자는 "비 올 때 우산을 뺏는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행태는 경기침체를 더 심각하게 만들 수 있다"며 "중소기업 위기는 소비와 투자 위축을 불러와 경제성장을 제약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뿐 아니라 은행 연체율 상승으로 이어져 은행 건전성마저 나빠지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고 전했다.
자금 수요가 많은 중소기업은 시설 및 운영자금 지원받기가 여전히 하늘의 별 따기라고 말한다. 은행이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를 받고 있지만 보수적으로 운영한다는 볼멘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중소기업이라서 위험하다고 비 오는 날 우산 뺏기 행태를 보여서는 안 된다.
강재웅 중기벤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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