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4년 합계출산율이 1.74로 내려간 이후 한번도 대체출산율 2.1 이상을 기록한 적이 없다. 1992년 1.76이 그 이후 최고 기록이다. 초저출산의 기준이라고 하는 1.3을 2001년에 기록한 이후 한번도 1.3을 넘어선 적도 없다. 우리는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저출산 시대에 살아왔다. 2000년대 이후에는 최장기간 초저출산 국가이기도 하다.
출산율과 출생률이 너무 낮아졌다. 2015년에 약 43만명이 태어났는데, 2017년 출생아 수 40만명 선이 무너졌다. 불과 3년 뒤 2020년 27만여명이던 출생아 수는 2023년 23만명을 가까스로 넘겼다. 2015년부터 2023년까지 출산율은 1.24에서 0.72로 떨어졌다. 출생아 수나 출산율 모두 거의 반 토막이 난 것이다. 저출산·저출생 때문에 한반도에서 사람이 사라질 것이라는 어느 세계적인 인구학자의 말을 무조건 인용하는 풍조는 사라졌지만,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호가 침몰할 수 있는 여러 다양한 시나리오를 예측해 볼 수 있다. 2015년 즈음을 '침몰의 시작'으로 보는 위기의식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2015년을 기점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첫째,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전통적 가족·부부 관계를 거부하는 흐름이 정착했다. 여성의 독박육아, 경력단절이 익숙한 단어가 되었고 부양부담 때문에 결혼을 꺼리는 남성의 존재도 낯설지 않다. 연예인의 사생활에 관음증적이라 말할 정도로 관심이 많은 한국 사회에서 사유리와 정우성의 이야기는 아이를 낳는 '정상적 과정'에 대한 신념을 흔들어 놓았다.
둘째, 전통적 제조업이 몰락하고 신흥 IT기업을 중심으로 산업 생태계가 재편되는 가운데 서울·수도권 집중이 전례 없는 규모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판교 실리콘밸리는 그런 움직임의 상징이 됐다. 이제 부분적으로 운영을 시작한 GTX는 서울공화국으로 가는 관문이기도 하다. 서울·수도권에만 있는 '높은 학벌과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 놓은 경쟁의 틀이 더 조여지면서도 청년의 삶은 점점 한계상황으로 내몰린다. 각 지역 청년의 수도권 이동 가속화는 지역소멸 위기 속도를 빠르게 한다. '미래의 계획보다 현재의 생존이 중요해진 상황'에서 청년들에게 연애와 결혼, 출산은 인생 과제에서 후순위가 됐다.
셋째, 사회적 관계의 근본적 재편 과정이 시작과 정착이다. 워낙 빠른 속도의 변화라서 시작이 정착으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SNS 생태계를 주도하는 인스타그램 문화를 '보여주기식 허세' 정도로 단정할 수는 없다. SNS 생태계가 주는 허탈감 혹은 대리만족 양상은 현실에서 사람을 사귀고 가족을 이루고 싶어 하는 욕구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가족정책의 모범국이라고 하는 핀란드가 최근 경험하는 초저출산율의 원인 중 하나를 SNS 세계 확대에서 찾기도 한다.
전통적 가족관계에 대한 거부, 서울·수도권 집중화의 가속, 새로운 사회적 관계 형성이라는 변화에 대한 대안 부재 등 상황이 얽혀서 지난 40여년의 기간과는 다른 양상의 초저출산·초저출생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 시대 종식과 최근 정책적 지원 확대에 힘입어 잠시 1.0 수준을 향하는 출산율 반등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축소사회에 대한 대비도 연령별 인구규모 비율이 어느 정도 맞아야 한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사회가 걸어왔던 길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개혁이 필요한 시기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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