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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트럼프발 무역전쟁과 산업정책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2.13 19:24

수정 2025.02.13 19:57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첫날 서명한 '미국 우선 무역정책(America First Trade Policy)' 행정명령의 내용이 점점 구체화되면서 트럼프발 무역전쟁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2월 초 발표된 캐나다, 멕시코, 중국에 대한 관세 부과 방침처럼 트럼프의 자국 우선주의 무역정책은 그 대상을 동맹과 비동맹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지난 10일 발표된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25% 관세 부과를 시작으로 품목도 자동차, 반도체, 의약품 등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특히 이번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행정명령을 통해서는 그동안 한국이 적용받았던 쿼터제 등의 대체 협정과 개별품목의 관세 예외조치를 종료함으로써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따라서 향후 발표될 여러 무역정책의 강도도 만만치 않으리라고 예상된다.



지금까지 보여준 트럼프 무역정책의 방식은 '선(先)관세 후(後)협상'으로 특징될 수 있다. 결국 협상 과정에서 얼마나 국익을 관철할 수 있느냐가 문제인데 과거 트럼프 1기 때보다 훨씬 어려운 과정이 예상된다. 향후 미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여러 상황이 전개될 수 있겠지만 시장확보 측면에서 한국의 산업은 크게 두 가지 선택에 직면해 있다. 즉 미국의 요새(fortress) 안으로의 진입과 요새 밖 경제영토의 확장이다. 트럼프는 보호주의의 요새를 구축하고 관세가 싫으면 이 요새 안으로 들어오라는 입장이다. 그동안 나타난 미국 유권자 표심을 볼 때 트럼프 2기 정부가 끝난 후에도 이 같은 정책 기조는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어떤 기업은 미국 요새 안으로 진입하는 선택을 할 수 있겠지만 해외투자에 수반되는 고비용을 감안하면 많은 기업들은 쉽게 이 선택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남은 선택은 요새 밖에서 미국 시장을 대체할 수 있는 시장을 확보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과의 통상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미국이 아닌 다른 국가와의 통상이 과거보다 훨씬 더 중요해진 시점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우리와 동일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결국 미국 외 시장에서 과거 어느 때보다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중국의 공세는 더욱 거세질 것이 자명하다.

트럼프 무역정책의 핵심 목표 중 하나가 중국 견제이고, 미국은 중국의 대미 직접수출은 물론 제3국을 통한 대미 우회수출도 최대한 억제하고자 할 것이기 때문에 중국도 미국이 아닌 다른 시장에서 활로를 찾을 수밖에 없다. 중국의 밀어내기 수출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 분명하지만 세계무역의 룰을 집행해야 할 세계무역기구(WTO)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중국의 덤핑 행태를 제어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중국은 가격경쟁력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품질경쟁력에 있어서도 과거보다 많은 진전을 이루고 있어 더욱 위협적이다. 결국 남들보다 뛰어난 산업경쟁력 없이는 한층 치열해질 미국 외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필자는 그동안 보호무역주의 시대의 통상정책은 산업정책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산업경쟁력은 통상협상에서 우위를 가질 수 있는 핵심요소이고, 산업정책은 이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정책수단이다. 미국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조선, 원자력, 방산 등의 분야에서 미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포함한 패키지 딜을 통해 한미 통상현안을 풀어나가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이 많다.
이 또한 우리가 이들 산업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방안이다. 효과적인 산업정책은 단순히 재정지원으로만 가능하지 않고 규제개혁을 포함한 여러 제도적 개선이 재정지원과 결합해야 가능하다.
현재 정치적 상황이 여러 정책 추진을 어렵게 하고 있지만 트럼프발 무역전쟁의 파고를 넘기 위해 적어도 산업정책에 관해서는 정치권의 전폭적인 지원을 기대한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