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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실험 정신…단색화 거장 하종현의 청년시절 작업들

연합뉴스

입력 2025.02.14 09:30

수정 2025.02.14 09:30

아트선재센터서 1959∼1975년 초기 작업 조명하는 '하종현 5975'전
끊임없는 실험 정신…단색화 거장 하종현의 청년시절 작업들
아트선재센터서 1959∼1975년 초기 작업 조명하는 '하종현 5975'전

끊임없는 실험 정신…단색화 거장 하종현의 청년시절 작업들 (출처=연합뉴스)
끊임없는 실험 정신…단색화 거장 하종현의 청년시절 작업들 (출처=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한국 단색화 1세대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하종현(90)은 평생 물질성과 재료를 실험한 작가다. 그의 대표작 '접합' 연작은 캔버스가 아닌 마대를 이용하고, 마대 앞면이 아닌 뒷면에 물감을 발라 앞면으로 밀어내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제작된다.

작가는 대학(홍익대 미술대학)을 졸업한 이후부터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실험하며 회화의 경계를 확장해 왔다. 전위적인 미술 운동에도 참여했고 사회의 변화도 작업에 반영했다.

'접합'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변화했던 하종현의 초기 작업을 조명하는 '하종현 5975'전이 14일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개막했다.



끊임없는 실험 정신…단색화 거장 하종현의 청년시절 작업들 (출처=연합뉴스)
끊임없는 실험 정신…단색화 거장 하종현의 청년시절 작업들 (출처=연합뉴스)

제목처럼 전시는 하종현이 홍익대 미술대학을 졸업한 1959년부터 '접합' 작업을 시작한 1975년까지 청년 작가 하종현의 작업을 네 시기로 나눠 살핀다.

초기 작업은 한국전쟁과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라는 한국 현대사의 변화에 반응하면서 끊임없이 물질성과 재료를 실험한 결과물이다.

대학을 졸업한 직후에는 당시 유럽에 등장했던 앵포르멜(비정형 회화) 미술의 영향을 받았다. 하종현은 정형화된 회화의 틀을 깨고 즉흥적이고 격정적인 표현을 중시하는 앵포르멜을 한국적인 맥락에서 재구성했다. 당시 전후 혼란을 겪던 한국 사회의 불안정한 느낌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기 위해 어두운 색조로 물감을 두껍게 바르거나 실뭉치를 캔버스에 붙이고 불에 그슬려 거친 질감을 만들기도 했다.

끊임없는 실험 정신…단색화 거장 하종현의 청년시절 작업들 (출처=연합뉴스)
끊임없는 실험 정신…단색화 거장 하종현의 청년시절 작업들 (출처=연합뉴스)

어둡고 무거웠던 작업은 1960년대 후반 밝게 변화한다. 작가는 전쟁의 상흔에서 벗어나 도시화와 경제 성장이 이뤄지던 사회상을 반영한 기하학적 작업을 시작했다. 이 시기 '도시계획백서' 연작은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을 기하학적 추상으로 표현한 것이다.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고 경제개발계획이 진행되면서 달라지는 도시 경관을 강렬한 색채와 반복적인 패턴으로 시각화했다. 또 다른 연작인 '탄생'은 씨앗 패턴을 반복적으로 표현한 작업으로, 한국 전통 단청의 색깔을 사용하면서 캔버스를 길게 잘라 돗자리를 짜듯 엮어 공예 같은 느낌을 줬다. 도시화라는 새로운 '탄생'을 이야기하면서 전통적인 미학도 잃지 않은 작업이다.

끊임없는 실험 정신…단색화 거장 하종현의 청년시절 작업들 (출처=연합뉴스)
끊임없는 실험 정신…단색화 거장 하종현의 청년시절 작업들 (출처=연합뉴스)

1969년 하종현은 이일, 오광수 등 평론가, 김구림, 박석원, 서승원, 이승조 등 작가들과 함께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를 결성한다. '전위 예술에의 강한 의식을 전제로 비전 빈곤의 한국 화단에 새로운 조형 질서를 모색 창조해 한국 미술 문화에 기여한다'고 선언하며 출범한 AG는 1975년 해체될 때까지 네 차례 전시와 한 번의 '서울비엔날레'를 열었고 협회지 'AG'도 네 차례 발간했다.

끊임없는 실험 정신…단색화 거장 하종현의 청년시절 작업들 (출처=연합뉴스)
끊임없는 실험 정신…단색화 거장 하종현의 청년시절 작업들 (출처=연합뉴스)

AG 활동 기간 하종현은 철사, 용수철, 신문지 같은 일상적 재료를 활용해 실험적인 작업을 했다. 평면 위에 철사를 구부려 박거나 가시철망으로 캔버스 뒷면을 감싸기도 했다. 1970년 AG의 첫 전시 때 소개한 거울 설치 '작품'은 여러 개의 거울과 두개골, 골반 엑스레이 필름을 활용해 거울 속에 엑스레이 필름의 이미지가 반사되는 작업이다. 도면으로만 남아 있던 것을 1970년 이후 이번 전시에서 처음 재현했다. 오랜 기간 모은 신문 더미와 아무것도 인쇄되지 않은 같은 크기의 백지를 쌓아 올려 당시의 언론 통제를 비판한 설치 작업 '대위(對位)'(1971)도 AG 활동 기간의 작업이다.

끊임없는 실험 정신…단색화 거장 하종현의 청년시절 작업들 (출처=연합뉴스)
끊임없는 실험 정신…단색화 거장 하종현의 청년시절 작업들 (출처=연합뉴스)

전시는 대표작인 '접합' 연작의 초기 작업으로 마무리된다. 작가는 올이 성긴 마대 뒷면에 두껍게 바른 물감을 커다란 나무 주걱으로 밀어내 앞면으로 물감이 배어 나오도록 하는 기법인 '배압법'을 고안했다.
앞면으로 배어 나온 물감의 질감은 물감을 밀어내는 신체적 행위와 물질성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하는지를 보여준다.

전시장에서는 대학을 졸업한 1959년 그린 자화상도 볼 수 있다.


전시는 4월 29일까지. 유료 관람. 3월에는 서울 국제갤러리에서 작가의 최근작을 소개하는 개인전도 열릴 예정이다.

하종현 작가 (출처=연합뉴스)
하종현 작가 (출처=연합뉴스)

zitron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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