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베르테르·빨래…공감 앞세워 보편성 공략한 작품들
수십년 공연한 뮤지컬 '장수비결'은…친숙함 잡고 변화 더했다명성황후·베르테르·빨래…공감 앞세워 보편성 공략한 작품들

(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뮤지컬이 30년을 살아남는 과정에서 세 가지가 중요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의 교훈과 재미, 보편성이 어우러져서 지금까지 작품이 이어지지 않았을까요."
올해로 초연 30주년을 맞은 뮤지컬 '명성황후'의 윤호진 예술감독은 최근 열린 프레스콜에서 작품의 장수 비결 중 하나로 보편성을 꼽았다. 작품은 비극적 사건인 을미사변을 소재로 삼아 30년간 200만명 넘는 관객을 몰입시키고 분노케 했다.
윤 예술감독이 언급한 '보편성'이라는 키워드는 '명성황후'뿐 아니라 수십년간 무대를 지킨 뮤지컬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16일 공연계에 따르면 '명성황후'를 비롯해 '베르테르', '빨래' 등 친숙한 소재로 공감을 끌어낸 작품들이 장기간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 공감 잡은 친숙한 이야기, 마음 뺏은 명곡
'명성황후'는 이문열의 희곡 '여우사냥'을 원작으로 1995년 초연했다.
국내에 뮤지컬이 생소하던 시기 '한국적인 뮤지컬'을 제작하려 한 윤호진 예술감독은 역사적 사건에 주목했다. 작품은 일본에 맞서 조선을 지키려는 명성황후의 분투를 다뤄 관객의 감정을 건드렸다.
여기에 작품의 상징인 '이중 회전무대'를 활용한 연출과 김희갑 작곡가, 양인자 작사가가 만들어낸 음악을 더했다. 공연 막바지 모든 배우가 힘차게 행진하며 부르는 넘버 '백성이여 일어나라'가 변함없이 사랑받는 명곡으로 꼽힌다.
25주년을 맞이한 '베르테르'는 괴테의 고전 소설을 원작으로 베르테르와 롯데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다. 젊은 날의 애타는 사랑을 표현한 줄거리와 11인조 실내악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서정적인 곡을 앞세워 30만명 넘는 관객을 모았다.

우리나라 뮤지컬 가운데 최초로 '베사모'(베르테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라는 작품 동호회가 생길 만큼 열성적인 팬을 모은 작품으로도 알려져 있다.
제작사 CJ ENM 관계자는 "시대를 초월한 사랑의 본질을 담은 고전 명작을 재구성한 스토리, 작품 특유의 서정성이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한 것이 주요했다"고 자평했다.
다음 달 20주년 기념 공연 개막을 앞둔 '빨래'는 대학로를 대표하는 장수 뮤지컬이다. 이번이 30번째 프로덕션에 달할 정도로 긴 역사를 자랑하며 누적 관객 130만명을 돌파했다.
꿈을 좇아 서울을 찾아온 청년들을 주인공으로 소시민의 애환을 그린 작품으로, '빨래', '서울살이 몇 핸가요?' 등의 넘버로 관객을 위로했다.

◇ 나란히 해외 진출 시도·연출 업그레이드 공통점
이들 장수 뮤지컬은 국내 인기를 바탕으로 해외에 진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명성황후'는 1997년 한국 뮤지컬 최초로 미국 브로드웨이 공연에 성공했고, 2002년에는 영국 웨스트엔드 무대에 서며 세계 양대 뮤지컬 시장에 진출했다.
'베르테르'는 2013년 일본에 진출해 도쿄에서 20회에 걸친 투어 공연을 진행했고, '빨래'는 일본과 중국에 라이선스를 수출했다.
작품의 역사가 긴 만큼 무대를 거쳐 간 배우들의 면면도 돋보인다.
성악가 출신 배우 이태원은 '명성황후' 주역을 맡아 미국과 영국 무대에 진출하며 명성을 쌓았으며, 배우 신영숙과 홍광호는 각각 1999년, 2002년 '명성황후'로 데뷔했다.
조승우와 김소현은 '명성황후'와 '베르테르' 두 작품에 출연하며 경력을 쌓아갔다. '빨래'는 이정은, 이규형, 정문성 등 대학로에서 꾸준히 주연급 배우를 배출한 작품으로 꼽힌다.
빨래 제작사 씨에이치수박 관계자는 "'빨래'는 일상을 소재로 하고 있어 배우의 연기가 잘 보이는 공연"이라며 "영화 제작자가 작품에 어울리는 배우를 캐스팅하는 단계에서 '빨래'를 찾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장수 뮤지컬에서는 연출과 무대에 변화를 주며 꾸준히 새로운 시도를 이어갔다는 점도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명성황후'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새로운 넘버를 추가했고, '베르테르'는 2013년 공연을 상징하는 소품을 장미에서 해바라기로 바꾸기도 했다.
원종원 순천향대학교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영상과 구별되는 무대의 특징은 끊임없는 현대화와 각색에 있다"며 "롱런하는 뮤지컬들은 대중성을 인정받은 것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감각을 덧입히기 위한 노력을 덧붙인다는 것이 공통점"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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