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이야기 담은 소설집 '무지개 눈' 출간…"그들 눈에 보이는 것 쓰고 싶었죠"
시각장애인 세상 그려낸 김숨 "'본다'는 건 존재를 이해하는 것"시각장애인 이야기 담은 소설집 '무지개 눈' 출간…"그들 눈에 보이는 것 쓰고 싶었죠"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본다'는 행위는 저에게 듣는 것과 같은 행위로 다가와요. 전에 소설을 쓰려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인터뷰할 때 듣기라는 게 귀로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느꼈죠."
소설가 김숨(51)은 17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연합뉴스를 만나 시각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집 '무지개 눈'(민음사)을 펴내며 느낀 소회를 털어놨다. 그는 다섯 명의 시각장애인을 만나 인터뷰한 뒤 단편소설 다섯 편을 썼다.
소설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말은 '본다'이다. 시각장애인인 소설 속 인물들은 오랜만에 만난 사람에게 "보고 싶었다"고 말하고, 바닷가에 다녀와 "바다를 봤다"고 말하며, 갖고 있던 물건이 없어지자 "내가 아까 분명히 봤는데"라고 말한다. 그들에게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본다'는 의미에 대해 김 작가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침묵도 들어야 할 때가 있다"며 "침묵에도 의미가 있고 그 뜻을 예민하게 포착해야 하는데, 이런 경우 듣기는 귀가 아니라 눈으로 이뤄진다"고 답했다.
결국 '본다'는 것은 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한 행위라는 취지다.
"듣기와 보기라는 행위는 제 앞에 있는 사람을 온전하게 존재하게 하는 것 같아요. 듣고 보는 일은 모두 무언가를 생생하게 존재하도록 하는 행위죠."

소설집에는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사물을 인식하고 세상을 바라보는지 담겨 있다.
표제작에서 저시력인 화자는 "내 오른쪽 눈동자에 눈물이 고이고 햇빛이 사선으로 비쳐 들면 무지개가 뜬다"고 말한다. 이어 "눈동자가 진동 속에 있는 데다 사시여서, 햇빛이 눈동자에 맺힌 눈물방울을 통과할 때 굴절과 반사가 일어나며 무지개가 뜨는 걸 거다"라고 여긴다.
김 작가는 "실제 (인터뷰 대상자로) 만난 분들이 그렇게 얘기해주셨다"며 "완전한 일곱 색깔은 아니고 몇 가지 색이 모자라는 무지개가 눈동자에 뜨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각장애인은 '못 보는 사람'이 아니라 이처럼 '다르게 보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소설집이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김 작가는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때 문득 '시각장애인들이 보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에 맹학교를 찾아가 인터뷰를 요청했다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전맹인 분들은 검은색이나 어둠을 보는 게 아니라 교육을 통해서 '내 눈에 보이는 건 검은색 또는 어둠'이라고 배우는 거잖아요.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자, 그리고 그분들 눈에 보이지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맹학교에서 만난 특수교사 이진석 씨는 선천성 저시력증에서 앞을 전혀 못 보는 전맹(全盲)이 된 경험을 김 작가에게 들려줬다. 그의 이야기는 소설집에 담긴 '파도를 만지는 남자'가 됐다.
또 선천성 전맹 전주연 씨의 이야기는 소설 '오늘 밤 내 아이들은 새장을 찾아 떠날 거예요'로, 선천성 전맹이며 지체장애인인 최다원 씨와 나눈 대화는 '빨간 집에 사는 소녀'로 탄생했다.
김 작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저에게 들려준 이분들 덕분에 생생한 감각으로 소설을 썼다"며 "인터뷰가 아니라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같았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이들 시각장애인과 함께 산책하거나 식사하고 공연을 관람하고, 결혼식에도 초대돼 참석하는 등 이제는 친구나 다름없는 사이가 됐다고 한다.

김 작가는 1997년 단편소설 '느림에 대하여'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2005년 첫 소설집 '투견'을 냈고, 이후 거의 매해 거르지 않고 신작을 내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담은 '한 명'(2016), 일본 오키나와에서 벌어진 조선인 학살을 담은 '오키나와 스파이'(2024) 등 주목받는 장편소설을 선보였고, 현대문학상·대산문학상·이상문학상·동인문학상을 받았다.
그에게 작가로서의 목표는 "쓰고 싶은 소설을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것"이다. 김 작가는 "바라는 게 있다면 오늘 낸 책보다 다음에 낸 책에서 좀 더 인간에 대한, 삶에 대한 통찰이 더 깊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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