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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44원이 없어 학교에 못 가는 '영재'도 있다[영화로운 텅장탈출]

박문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2.19 06:00

수정 2025.02.19 06:00

오스카 단편영화상 후보작
넷플릭스 '아누자'
23분 짧은 상영 시간
깊은 울림 남기는 추격신
인도 바라나시의 한 상점에서 아이가 매대를 지키고 있다. 사진=박문수 기자
인도 바라나시의 한 상점에서 아이가 매대를 지키고 있다. 사진=박문수 기자

아누자 포스터. 네이버 영화
아누자 포스터. 네이버 영화

인도 바라나시의 한 옷가게에서 부자가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박문수 기자
인도 바라나시의 한 옷가게에서 부자가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박문수 기자

경비노동자. 사진=박문수 기자
경비노동자. 사진=박문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2022년 인도를 무대로 한 영화 '아누자'의 주인공은 아누자다. 아누자는 수학적 재능을 타고난 천재 소녀다. 학교에 있어야 할 아누자는 오늘도 제봉 공장 '시다' 일에 한창이다. 빽빽한 재봉틀 사이로 널브러진 자투리 옷감을 줍고, 언니들의 심부름을 하고 있다. 아누자의 재능을 알아본 미슈라 선생님은 공장을 찾아와 공장장에게 따져 묻는다.

아누자를 가운데 두고 둘은 신경전을 벌인다.

[선생님]여기서 뭐 하니? 학교는 왜 안 다녀?
[아누자]저는...
[공장장]뭐 하기는요. 정직하게 돈 버는 중이죠. 나한테 감사할걸요.
[선생님]정직? 불법인 건 압니까?
[공장장]네 나일 말해
[아누자]14살요
[선생님]애야 입학시험이 화요일 오전 8시란다. 넌 특별한 재능이 있어...시험비는 400루피. 큰 돈도 아니에요
[공장장]당신에게나 그렇겠죠. 400루피라니. 얘한텐 목돈이에요.
영화 속 아누자의 모습은 14살로는 보이지 않는다. 14살이라고 해도, 아직 학교에 있어야 할 나이다. 6살에 입학하는 인도에서 의무교육은 초등학교(1~5학년)와 중학교(6~8학년) 1~8학년으로 이러진다. 아누자에겐 400루피, 우리돈 6644원이 없다. 이 돈으로 입학시험을 보고 합격하면 기숙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 영화에서 아누자는 기숙학교가 어떤 곳인지 모른다. 인도 공교육이 무너졌음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14억 인구, 실리콘밸리를 주름잡는 IT 역량을 기반으로 인도는 '넥스트 차이나'로 부상했다. 하지만 동시에 아누자처럼 6644원이 없어 교육과 제대로 된 일자리를 포기하는 현실도 엄연하다.

맹현철 인도방갈로르경영대학원(Indian Institute of Management Bangalore) 교수가 대외경제연구원에 지난 2023년 기고한 '인도 시대의 도래를 준비하는 인도의 핵심 과제'에 따르면, 인도의 초등교육은 총등록률(Gross enrolment ratio)을 기준으로 볼 때 매우 양호하다.

맹 교수는 "1학년부터 5학년 구간의 등록률은 100%가 넘는다. 인도 의무교육인 8학년을 기준으로 보면, 6~8 학년 구간에서 총등록률은 90% 수준으로 10%p가 감소한다. 대학 입학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마지막 학년은 10학년이므로 80%에 가까운 총등록률은 사실 그리 낮은 숫자는 아니다. 또한 성별의 격차 역시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교육의 질에 있다."고 지적한다. 영화 '아누자'가 보여주듯 인도의 교육 문제는 이어지는 실업 문제와 함께 인도의 고질병으로 꾸준히 지적돼 왔다.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야쇼카 모디 교수도 책 '두 개의 인도'에서 부상하는 인도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실업을 꼽았고 그 배경으로 교육 문제와 부재한 윤리 의식을 꼽았다.

영화로 돌아와 아누자의 언니는 400루피를 마련할 묘안을 낸다. 제봉 공장에서 빼돌린 짜투리 천으로 만든 가방을 팔자는 것. 아누자가 용케 '훔치는 걸 들키지 않았다'고 말하자 언니는 정색한다. "훔쳐? 누구더러 훔쳤데? 남는 천으로 만들었어. 아무도 안 쓰고 어차피 나중에 버려"라고 말한다. 짜투리 천으로 만든 가방을 알록달록한 무늬지만 인도의 거리에선 누구도 사주 지 않는다.

아누자는 백화점 의류 매장으로 뛰어 들어간다. 정돈된 매대, 여공의 손에서 탄생한 옷들을 마네킹이 입고 있다. 아마도 또 다른 아누자와 아누자의 언니가 만들었을 옷. 그 속에 몸을 숨긴채 가방을 판다. 그는 거리에서 40루피에 팔던 가방을 400루피에 2개나 파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내 직원에게 발각당하고, 경비노동자에게 쫓긴다.

추격신이 시작된다.
최근 본 그 어떤 영화 속 추격 장면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스릴'이다. "잡히지 말라, 학교에 가라."
모디 교수는 앞의 책에서 인도의 생산연령인구 10억여명 중 경제활동인구가 6억7000만명에 불과한 현실을 지적한다.
3억3000만명은 구직 활동조차 하지 않는 상황. 경제활동인구 중 거의 절반인 46%가 여전히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인도가 중국처럼 성장할 수 있을까. 영화와 책 모두 이대로는 어렵다고 말한다.

mj@fnnews.com 박문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