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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한국도 트럼프와 '패키지 거래' 필요하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2.17 19:29

수정 2025.02.17 20:12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전가의 보도'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취임 직후 잠시 칼집만 만지작거리더니 드디어 만능의 보검을 꺼내 들고 칼춤을 추기 시작했다. 캐나다와 멕시코에 25%, 중국에는 1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고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를 예외 없이 25%로 인상하겠다고 했다. 또한 자동차·반도체·의약품에 대한 관세도 예고했고, 급기야 국가별로 맞춤형 '상호관세'를 시행하겠다는 각서에 서명했다. 한국의 대미 수출에 비상등이 켜졌다.



트럼프 2기의 관세정책은 1기와 비교해 몇 가지 차이점을 보인다. 1기에는 관세를 주로 경제 영역에 국한해 사용했다면, 2기에는 경제 영역뿐 아니라 다양한 이슈의 경계 영역을 넘나들며 정책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불법 이민자'와 '펜타닐' 유입을 문제 삼으며 캐나다와 멕시코에 관세 부과를 시도했고, 대중국 관세 역시 '마약과의 전쟁(Opium War)'의 일환이라고 했다. 둘째, 1기 때는 중국이 관세정책의 주요 대상이었다면 2기는 임기 초이지만 일단 우방을 겨누고 있는 칼끝이 더 매섭게 돌아가고 있다.

트럼프는 대미 무역흑자 국가들에 예외 없이 관세의 칼끝을 겨누고 있다. 불법 이민과 마약을 이유로 캐나다와 멕시코에 관세를 부과했지만, 인터뷰에서는 양국의 대미 무역흑자에 대한 불만을 여과 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반면 미국이 무역흑자를 내는 호주에는 철강관세를 면제할 수 있다고 했다. 대미 8위 무역흑자국인 한국은 트럼프 관세의 칼끝을 피해 갈 수 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개최된 미일 정상회담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트럼프와 '패키지 거래'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패키지 거래란 한번의 거래로 여러 품목이나 서비스를 사고파는 거래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준비한 '패키지 상품'에는 미국 LNG 수입 확대, 약 1500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액 증대, 방위비 지출액 증가 등의 품목이 들어 있었다. 어차피 LNG 수입은 해야 하니, 미국산 수입을 확대해 대미 흑자 규모를 줄이는 정책은 일본에 해가 되는 정책이 아니다. 미일 양국은 일본의 방위비 지출을 트럼프 1기 때와 비교해 2027년까지 2배 늘리기로 했는데, 1기 때 일본의 방위비 지출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1%였으니 일본은 2%를 약속한 셈이다. 이는 트럼프가 압박한 3%에 못 미치는 수준일 뿐만 아니라 2% 수준의 방위비 지출은 '보통 국가'를 준비하며 군비 증강을 해오던 일본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

일본은 한국보다 더 큰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시바는 트럼프가 일본의 자동차 산업을 콕 집어 고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었다. 그런데 회담 후 트럼프는 대일 관세에 관한 질문에 "관세 부과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지만, 징벌적인 조치는 없을 것이고 대부분 상호관세가 될 것"이라며 뭉뚱그려 대답했다. 이시바는 패키지 상품을 잘 구성해 트럼프에게 '아부의 기술'을 발휘하며 제시했는데, 결과적으로 상당히 괜찮은 거래를 한 셈이다. 트럼프가 일본의 철강관세 면제 요청을 받아줄지 궁금하다. 트럼프 취임 후 한미는 정상급 통화 한번 못 했는데, 미일이 정상회담을 개최해 일정 성과를 도출했다는 사실에 입맛이 쓰다. 하지만 한국은 좋은 과외공부했다고 생각하고 한국판 패키지 상품 구성을 서둘러 준비해야 한다. (1)적절한 방위비 분담금 증액 제안 (2)미국산 원유·가스 수입 확대 등 대미 흑자 축소방안 (3)대미 투자 규모 확대방안 (4)원자력 협력 및 조선업 협력 제고방안 등으로 트럼프에게 상당히 매력적인 패키지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국내 정치상황 때문에 한국은 그동안 트럼프의 칼끝에서 잠시 비켜서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더는 아니다.
대행 체제이지만 더 늦기 전에 선제적으로 움직여야 할 때다. 트럼프가 거래를 원하니, 한국 역시 거래할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그래야지만 '굿 딜'을 할 수 있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