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패권 경쟁에 관세폭탄 덮쳐
제조·공급 업체들 ‘탈중국’ 속도
말레이·베트남 등 직접투자 70%↑
동남아와 멕시코 등 중국 이외 지역으로 생산지를 옮기는 세계 기술 기업들의 '차이나 엑소더스'(탈출)가 속도를 내고 있다. 첨단 기술 패권에 대한 미중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으로 이 같은 추세에 가속도가 붙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7일(현지시간) 이 같은 현상을 지적하면서 중국 이외 지역으로 아예 공장을 이전하는 '중국 말고 어디든지'(Anything But China·ABC)라는 'ABC'가 새 원칙이 됐다고 밝혔다. 중국 이외 지역에서 공급원을 늘려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기존 '차이나 플러스 원'(China Plus 1) 전략이 '중국 말고 어디든지' 전략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제조·공급 업체들 ‘탈중국’ 속도
말레이·베트남 등 직접투자 70%↑
■'중국 말고 어디든지'(ABC) 전략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최근 보고서에서 제품 조립만 중국 이외 지역으로 이전했던 전과 달리 현재는 센서와 인쇄 회로 기판, 전력 전자 장치 등의 부품 제조 공장도 이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와 공급업체들도 중국 탈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와 램 리서치는 지난해 미 정부의 압박속에서 중국 기업을 공급망에서 제외했다. 반도체 생산 전력 시스템을 만드는 어드밴스드 에너지도 오는 7월까지 마지막 중국 공장을 폐쇄한다.
이 같은 테크 기업들의 중국 '엑소더스'는 스마트폰에서 노트북에 이르기까지 소비자 기기 전반에 걸쳐 일어나고 있다. 중국 주재 미 상공회의소 연례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360명 중 30%는 생산 기지 이전을 고려하거나 이미 시작했다고 답했다. 기술·연구개발기업의 약 4분의 1은 공급망을 이전하고 있다고 밝혔다.
■ 부품공장도 이전
이런 추세 속에 동남아는 가파른 외국인 직접투자(FDI) 증가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서구 기술 기업들이 최첨단 칩, AI 서버, 소비자 기기의 생산과 조립을 이전하면서다.2023년 외국인 FDI는 2300억 달러로 2018년 1550억 달러에서 70% 증가했다. 칩 제조업체 인텔, 인피니온, 마이크론은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고 노트북 제조업체 HP는 지난 3년 동안 태국을 조립 기지에 포함시켰다. 말레이시아는 2024년 반도체, 컴퓨터 및 기타 전자 제품 수출액이 사상 최대인 1370억 달러를 기록했다. 엔비디아는 2024년 12월 베트남에 연구 개발 센터 설립을 발표했다.
■ 중국 기업의 해외 진출도 가속화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고관세 정책으로 중국 기업들도 잇따라 해외로 나가고 있다. 중국의 데이터 센터용 광 트랜시버 제조업체인 에오프토링크는 태국 공장을 확장했다. 노트북 컴퓨터, 태양광 패널 및 산업 기계용 납땜 재료를 생산하는 바이탈 신소재는 동남아와 멕시코에 자회사를 세웠다.
이 같은 빠른 탈중국화 속에서도 중국의 인프라와 공급업체, 시장 생태계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고 WSJ은 진단했다. 시장조사기관 IDC 분석가 마리오 모랄레스는 WSJ에 "장기적으로 새 생산 라인을 만드는 것은 더 비싸고 위험해질 수 있다"며 "중국에서 철수할 경우 공급업체에 최대 15%의 비용이 더 들 수 있다"고 추정했다.
june@fnnews.com 이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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