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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주 52시간' 양보 않는 여야, 대승적 합의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2.18 18:37

수정 2025.02.18 18:37

서로 남탓만 하다 골든타임만 흘러
선 법안 처리, 후 계속 논의도 방법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에서 김원이 소위원장이 반도체 특별법, 에너지 3법 등 논의를 위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뉴스1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에서 김원이 소위원장이 반도체 특별법, 에너지 3법 등 논의를 위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뉴스1
한시가 급한 반도체특별법이 계속 표류하고 있다. 주 52시간 예외조항 여부를 놓고 의견차를 좁히지 못한 여야는 지난 17일 국회 소위에서 특별법을 처리하지 못했다. 20일 열릴 여야정 국정협의회에서도 여야의 양보와 결단 없이는 합의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재계가 반도체특별법에 고소득 연구개발(R&D)직의 주 52시간 근무를 예외로 하는 조항(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공식적으로 요구한 지 3개월이 지났다. 특별법에 예외조항을 추가했지만 여야의 입장은 첨예하게 갈린다.

국민의힘은 "산업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특별법에 반드시 주 52시간 예외조항을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예외조항을 제외한 반도체법을 우선 처리하고 R&D 분야 추가 근로 확대를 추후 논의하자는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골든타임을 생각하면 여야가 합의한 내용의 반도체특별법을 먼저 처리하자는 야당의 의견이 합리적이다. 근로기준법상 주 52시간 예외에 관한 진정성 있는 후속 논의를 한다는 전제다. 경쟁국은 반도체 산업 부강을 위해 세금과 보조금, 각종 특례 등 가용자원을 쏟아붓고 있다. 반면 우리 기업들은 '주 52시간'에 발목을 잡혀 한발도 나아가지 못하는 꼴이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대만·중국 등 경쟁국의 기술개발 환경과 비교하면 주 52시간 규정에 묶인 우리의 반도체산업 경쟁력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

'주52시간 예외'에 대한 야당의 주장도 일리가 없지 않다. 반도체 산업에 예외조항을 신설하면 중소제조업, 벤처기업 등 여러 산업군에서 형평성을 들어 주 52시간에 묶인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게 해달라는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올 수 있다. 진보정권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주 52시간제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여당은 노동시장 개혁 단초로 삼을 수 있다는 계산도 할 것이다.

특별법에 시빗거리를 더한 게 이재명 민주당 대표다. 기업 주도 경제성장을 강조하면서 주 52시간 예외를 수용할 것처럼 했다가 당내 강경파와 노조 반대로 다시 틀어버린 것이다. 여당은 이 대표의 오락가락 행보가 "거짓말과 국민 기만"이라며 날을 세우고 있다. 이랬다저랬다 한 야당이나 대안 없이 비난하는 여당이나 도긴개긴이다.

냉정하게 보면 반도체특별법에는 주 52시간 예외조항만 있는 게 아니다. 반도체기업 보조금 직접 지원, 5년 단위 국가반도체산업 기본계획 수립 및 특별회계 운영, 반도체산업 기술유출 처벌 강화, 국가반도체산업본부 신설, 조세 감면과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특례 등 중요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꼬리(주 52시간 예외조항) 때문에 몸통(반도체특별법 전체 내용)이 흔들리는 상황이 안타깝다"는 민주당 의원의 주장도 틀린 말이 아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주 52시간 특례가 장시간 노동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는 진정성을 갖고 소통하면 충분히 해소될 수 있다"고 했다.

여야는 17일 소위에서 에너지 3법(국가기간전력망확충법·고준위방폐장법·해상풍력특별법)을, 18일 기재위에서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업의 설비투자와 R&D 세제지원을 확대하는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여야가 뒤늦게 합의점을 찾은 것은 다행이다. 이번에 무산된 특별법이 사실상 마지막 남은 반도체 관련 경제법안이다.
조속한 처리를 위해 더 늦기 전에 여야는 대승적 결단에 나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