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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미키17' 악역은 트럼프? "특정인 아냐..나라마다 각자의 독재자 떠올렸죠"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2.20 16:30

수정 2025.02.20 22:23

독재적인 지도자 연기한 마크 러팔로 역 관련 봉준호 감독 설명
20일 내한 기자회견 열려
미키17의 마크 러팔로. 연합뉴스.
미키17의 마크 러팔로. 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봉준호 감독의 신작 SF영화 ‘미키 17’를 통해 데뷔 이래 첫 악역에 도전한 마크 러팔로가 2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내한 기자회견에서 “살아있는 명감독 중 한 명인 봉준호 감독과 이 자리에 함께 해 기쁘다”며 내한 소감을 밝혔다.

러팔로는 지난 2015년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 개봉 당시 한국을 찾았다. 차기작 촬영하느라 바쁜 중에도 10년 만에 다시 내한한 그는 “당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저를 질투할 정도로 한국 팬들이 저를 환대해줬는데 이번에도 역시 그랬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독재자 마셜 연기 "봉준호 겸손, 계속 친구로 남고파"

러팔로는 이번 영화에서 2050년대, 얼음행성 개척단의 독재적인 지도자 ‘케네스 마셜’을 연기했다. 전직 국회의원인 그는 허세 가득한 선동으로 추종자를 이끄나 실제로는 늘 붙어 다니는 아내인 ‘일파’ 없이는 아무것도 혼자 결정하지 못하는 유약한 인물이다.

선민의식 가득한 그는 원정대에서 궂은 일을 맡고 있는 주인공 미키17를 혐오하며 행성의 생명체 크리퍼를 몰살하려 한다.

국내 팬에게는 마블 시리즈의 영웅 ‘헐크’와 ‘스포트라이트’의 정의로운 기자 등 선하고 지적인 역할로 친숙하다. 이에 봉 감독은 앞서 자신의 러브콜을 받고 러팔로가 당황해했다고 밝힌 바 있다.

러팔로는 이에 긍정하며 “출연 제의를 받고 정말 놀랐다”며 “결국엔 감사하게 생각한다. 저 자신도 저를 의심하고 있을 때 감독님이 나를 믿어줘서 감사하다”며 첫 악역을 연기한 소감을 밝혔다.

이어 “영화의 결과물엔 만족한다. 하지만 겁도 난다. 아직 영화 리뷰를 읽지 않았다. 다만 영화의 취지에 맞게 연기하는 게 배우의 책무라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연기에 대해 언급했다.

봉 감독과의 첫 작업에 대해선 “섬세하고 꼼꼼하다”며 “동시에 내가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든든하게 지원해줬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모든 장면을 꼼꼼히 그림으로 표현한 스토리보드를 언급하면서 “그렇게 일한 적이 없다”며 “콘티를 보면서 연기적 힌트를 얻었다. 캐릭터들이 가진 특징을 그림으로 보면서 새로운 면도 발견했다”며 이번 현장만의 차별점을 언급했다. 또 봉 감독에 대해선 “높은 자리까지 올라오고 칭송을 받는데도 늘 겸손했다. 앞으로도 친구로 남고 싶다”며 깊은 신뢰를 표했다.

"마셜 캐릭터 특정인 연상되지 않게 연기"

극중 러팔로가 연기한 독재자 캐릭터를 두고 미국의 특정 정치인을 모델로 한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러팔로는 이에 대해 “특정인이 연상되지 않길 바랐다"며 “그저 쩨쩨하고 그릇이 작은 독재자다. 우리가 오랜 세월
봉준호 감독(왼쪽부터)과 배우 나오미 애키, 마크 러팔로, 스티븐 연이 2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미키17'(감독 봉준호) 내한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미키17'은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소모품(익스펜더블)으로,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미키’(로버트 패틴슨 분)가 17번째 죽음의 위기를 겪던 중, 그가 죽은 줄 알고 '미키 18'이 프린트되면서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뉴스1
봉준호 감독(왼쪽부터)과 배우 나오미 애키, 마크 러팔로, 스티븐 연이 2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미키17'(감독 봉준호) 내한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미키17'은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소모품(익스펜더블)으로,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미키’(로버트 패틴슨 분)가 17번째 죽음의 위기를 겪던 중, 그가 죽은 줄 알고 '미키 18'이 프린트되면서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뉴스1


반복적으로 봐왔던 독재자. 이기적이고 연약한 자아를 갖고 있는 그런 독재자다. 이 인물이 말할 때마다 악센트나 말하는 방식이 변하는데 사람들이 여러 해석을 하고 여러 인물을 떠올리길 바랐다"라고 덧붙였다. 또 “2년 전에 촬영했는데, 개봉 즈음에 이 영화가 더 많은 의미를 갖게 될지는 몰랐다. 우리 세상과 닮았다고 생각할 여지는 있다”고 답했다.

이에 봉 감독은 “전 세계 정치적 악몽의 이미지가 들어가 있고 그걸 융합해서 보편적인 모습으로 마크가 표현해줬다”며 “여러가지 독재자 모습이 많이 녹아있다보니 각 나라마다 자신들의 상황과 역사를 투사해서 이 캐릭터는 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미키 17'은 얼마 전 베를린영화제에서 상영됐다. 봉 감독은 “베를린영화제에서 한 나이 많은 이탈리아 기자가 (이탈리아 파시즘 체제를 세운) 무솔리니에서 영감받은 거 아니냐고 물었다”며 “또 다른 기자는 1980년대 루마니아 초대 대통령이자 독재자인 차우셰스쿠 부부를 언급했다”고 말했다.

러팔로는 연기자일뿐 아니라 사회운동가다. 그는 자신이 연기한 독재자와 같은 권력의 폭력에 어떻게 맞서야 한다고 생각하냐는 물음에 “사람들의 연대”를 꼽았다.

“국가가 행하는 폭력은 특히나 압도적이고 극단적으로 다가온다”며 “그에 맞서 우리가 가진 것은 사람들의 힘이다. 그 힘의 근원은 서로를 향한 사랑이다. ‘미키 17’에서 나샤가 가진 미키에 대한 사랑처럼 말이다. 이 영화 역시 사람들의 힘을 보여준다. 그 힘은 제도가 가진 힘보다 더 크다”고 답했다.

러팔로는 “맨 앞에 서서 주목받고 싶어하지 않고 카메라 뒤편에 있지만,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있는 사람들, 유하고 부드럽고 내향적인 사람들, 그들이 폭력에 대항해 일어나기까지 비록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일단 일어나면 큰 힘이 되며 변화 또한 이끌어낸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비폭력 운동들, 마틴 루터 킹이나 간디와 같이 비폭력 운동이 우리 역사에서 큰 변화를 만들어냈다”고 부연했다.

봉 감독 "미키가 끝까지 부서지지 않고 살아남는 게 중요했다"

극중 원정대의 엘리트 요원이자 미키 17의 여자 친구인 나샤 역의 나오미 애키도 평범함의 힘을 언급했다. 이번 방한이 처음인 그는 극중 러팔로가 연기한 마샬과 대척점에 있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애키는 “나샤는 어떤 영광이나 권력을 추구하지 않는다. 타인에 대한 공감과 사랑에 의해 움직인다. 결국 그런 사람이 이긴다”고 짚었다.

“나샤와 미키는 자신들이 하는 행동이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지 모르는데 그 점이 매력적”이라며 “이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비범한 일을 해낸다. 누군가를 사랑하니까 그를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데 그게 마치 눈사태처럼 큰 결과를 만들어낸다. 평범함이 가진 힘을 잘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봉 감독은 '전작 '기생충'은 자본주의 모순을 꼬집었는데 이번 '미키 17'을 통해선 무엇을 의도했는지' 묻는 질문에 "영화를 만들 때 어떤 목표나 깃발을 들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자본주의 분석은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분들이 책에서 명확하고 효율적으로 설명한다"며 "영화는 그런 것보다, 그런 틈바구니에서 숨 쉬는 인간들의 감정을 나눠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봉 감독은 “어제 지인들이 영화를 보고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고 해서 기뻤다”며 “주인공 미키는 연약하고 불쌍한 친구인데, 여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부서지지 않고 살아 남는다는게 이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중요했다”고 말했다. 28일 개봉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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