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러-우, 영토만이 아닌 과거·역사 그리고 미래 바꾸려는 전쟁[우크라戰 3년]

뉴시스

입력 2025.02.21 17:36

수정 2025.02.21 17:36

러, 홀로도모르 희생자 기념비 철거 등 과거 변경·지우기 우크라, 말살과 집단 학살의 과거 트라우마 때문에 더욱 러에 저항 하버드대 플로히 교수 “국경긋기로 보는 것은 이 전쟁 모르는 것”
[팜비치(미 플로리다주)=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각)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에서 기자회견하고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한 러시아가 아니라 우크라이나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난, 전 세계에 충격을 주면서 새로운 분노를 일으켰다.2025.02.21.
[팜비치(미 플로리다주)=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각)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에서 기자회견하고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한 러시아가 아니라 우크라이나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난, 전 세계에 충격을 주면서 새로운 분노를 일으켰다.2025.02.21.

[서울=뉴시스] 구자룡 기자 = 24일로 3년을 맞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의 목표가 영토 확장에 그치지 않고 과거와 역사를 바꿔 우크라이나의 미래를 지우려는 목적도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0일 분석했다.

지난해 7월 러시아가 점령한 루한스크에서 홀로도모르 희생자들을 기리는 기념비를 철거한 것이 한 사례다.

홀로도모르는 러시아가 1932∽1933년 소련에 의한 대기근으로 줄잡아 390만 명이 희생된 사건이다. ‘홀로도모르’는 우크라이나어로 ‘기아에 의한 살인’이라는 뜻이다.

러시아의 홀로도모르에 대한 공식 견해는 산업화 정책의 불행한 부산물이었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이 집단 학살행위로 보는 것과 대조적이다.

당시 소련 당국은 우크라이나 마을에서 식량과 씨앗을 압수해 주민들은 굶주림으로 식인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WSJ은 전했다.

기념비를 철거한 것은 소련 정권에 의한 처참했던 과거를 바꾸고 지우기 위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인들이 저항을 계속하는 것도 소련(러시아)의 통치하에서 겪었던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것이다.

역사가이자 작가인 올레나 스티야즈키나는 “우리가 저항을 멈추면 과거에 일어났던 말살과 집단 학살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WSJ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벌이고 있는 전쟁은 단순히 영토적 이득이나 세계적 권력 확대만이 아니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역사적 기억을 둘러싼 투쟁이라고 규정했다.

러시아는 전쟁을 통해 말살하거나 기억을 바꾸고 싶은 것들이 많고, 우크라이나인들은 전쟁이 계속되면서 더욱 잊지 못할 과거들이 많다.

1926년 소련 우크라이나에는 2900만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나 1953년 3월 요시프 스탈린이 사망했을 때 그 수는 기근, 전쟁, 대량 학살로 절반 가량으로 줄었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인구는 약 3336만 명으로 그 후 늘어났다.

우크라이나는 2차 대전에서 1000만 명 이상이 희생됐는데 홀로코스트로 학살된 유대인과 붉은 군대에서 싸운 수백만 명의 군인이 포함된다. 나치와 소련 전체주의 모두로부터 큰 희생을 치렀다.

1941년 9월 수도 키이우가 독일군에게 함락되자 후퇴하던 소련군은 도심에 부비트랩을 설치해 독일군을 물론 수많은 민간인도 희생됐다.

소련군이 1943년 10월 복귀했을 때 키이우 인구는 절반 가까이 사망했다.

우크라이나가 1991년 12월 소련에서 독립하기 전까지 소련(러시아)는 수세기 동안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숨기고 왜곡해 과거의 잔혹 행위를 은폐했다고 WSJ은 지적했다.

스탈린은 1920년대 우크라이나의 문화 르네상스를 선호했지만 1930년대의 숙청에서 지식인(소설가, 연극 감독, 화가) 대부분이 살해당했다.

사형 집행자들은 두 명의 머리에 총알 한 개를 사용하여 탄약을 아끼라는 지시를 받았고 희생자들을 등 뒤로 줄을 세우기도 했다.

이러한 역사에 대한 진실을 말하는 것은 소련 통치 하에서 범죄였다.

WSJ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하에서 러시아는 다시 한번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별도의 문화나 정체성을 부정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러시아 선전가들은 교육받은 우크라이나인을 제거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데 러시아 국영 통신사는 전쟁 개시 직후 그들을 ‘우크라이나성 바이러스’의 보균자로 묘사하기도 했다고 WSJ은 보도했다.

홀로도모르와 다른 소련의 잔혹 행위를 부인하는데 만족하지 않은 푸틴의 러시아는 가해자들을 기리고 있다. 스탈린과 소련 비밀 경찰의 창립자인 펠릭스 제르진스키를 기리는 기념비를 세운 것이 한 예다.


푸틴도 우크라이나 역사를 러시아 제국주의 프로젝트에 맞게 다시 쓰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21년 7월 푸틴은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의 역사적 통일에 관하여’라는 에세이에서 별도의 우크라이나 정체성이라는 개념을 거부했다.


우크라이나 출신 하버드대 우크라이나 연구소 소장 세르히 플로히 교수는 “이번 전쟁이 영토와 국경 긋기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전쟁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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