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차관칼럼

[차관칼럼] 특허로 달리는 혁신기관차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2.23 19:07

수정 2025.02.23 19:17

김완기 특허청장
김완기 특허청장

1776년 스코틀랜드 윌킨슨의 제철소에서 사람들이 한 기계 앞에 모였다. 모두가 숨죽인 가운데 기계가 쉭쉭 소리를 내며 작동하는 순간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세계 경제발전을 가속화한 증기기관이 뛰기 시작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 순간이 오기까지 특허를 받은 후 이를 제품으로 사업화하는 데 7년이나 걸렸다는 사실은 세상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산업혁명의 불씨를 댕긴 증기기관의 발명가 제임스 와트는 기존의 증기기관이 가진 연료 효율성의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1769년 특허도 획득했다.

하지만 이를 제품으로 만들어 시장에 내놓는 데 필요한 자금과 역량이 턱없이 부족했다. 세계사를 뒤흔들 혁신적인 기술이 사장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때 그의 기술을 알아봐준 두 명의 자본가이자 사업가가 있었다. 바로 존 로벅과 매슈 볼턴이다. 로벅은 와트의 기술에 대한 잠재력을 알아보고 와트의 특허지분의 절반 이상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초기 재정지원을 통해 아이디어 수준의 기술을 상용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후 이 특허지분을 인수한 볼턴이 자본과 사업운영, 마케팅 등을 지원해 주었고, '볼턴앤와트'라는 회사를 공동 설립했다. 와트의 혁신적인 기술에 로벅과 볼턴의 자본력이 더해져 비로소 시대를 바꾼 혁명적인 제품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사례는 우수한 지식재산과 금융이 연계되어 상업적 성공으로 이끈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250여년이 지난 지금도 우수한 기술이 자본을 만나지 못해 사장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실제 우리나라에도 우수한 기술력을 갖췄지만 현재 부동산 같은 물적 담보가 부족하거나 신용도가 낮다는 이유로 자금을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중소·창업기업이 많다.

특허청은 이렇게 우수한 기술력과 특허를 기반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업들이 사업자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한계에 부딪히지 않도록 금융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자금조달 방법을 고민해왔다. 그 해답이 바로 지식재산금융이다.

특허와 같은 지식재산을 가진 기업은 해당 지식재산에 대해 가치를 평가받아 담보대출, 투자, 보증의 방법을 통해 사업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특허청은 기업이 지식재산금융을 원활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지식재산 가치평가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고, 우수한 지식재산을 가진 기업들이 투자받을 수 있도록 정부와 민간투자자가 함께 지식재산 투자펀드를 조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체계를 통해 필요한 곳에 자금이 원활히 조달될 수 있도록 금융기관, 투자기관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해왔다.

이렇게 발전한 지식재산금융은 지난해 8월 10조원을 돌파했다. 10조원 넘는 자금이 특허와 같은 지식재산을 매개로 혁신기업들의 위기극복과 성장에 큰 힘을 실어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식재산금융은 프랑스, 핀란드 등 선진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관련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특히 올해 예정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지식재산권 전문가회의에서도 회원국 간 주요 의제로 설정되는 등 세계적으로도 발전된 지식재산금융 모델로 인정받고 있다.

산업혁명의 심장을 뛰게 한 증기기관은 금융을 만나 힘차게 달려나갈 수 있었다.
이제는 우수한 기술과 특허를 가진 기업들이 우리 산업과 경제의 심장을 뛰게 할 차례이다.

지식재산과 이를 매개로 한 지식재산금융이 우리 경제를 역동적으로 달려 나가게 하는 핵심 동력이 될 수 있도록 특허청이 아낌없이 지원하고자 한다.
푸른 뱀의 해인 2025년, 지식재산금융을 통해 우리 기업들이 더 큰 도약을 이룰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김완기 특허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