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뉴스1) 오현지 기자 = "아버지 육신을 찾게 되어 정말 행복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비석에 새겨진 이름 석자만 쓰다듬으며 그리움을 삭히다 70여 년만에 아버지를 품에 안게 된 아들의 애끓는 사부곡이 장내를 울렸다.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24일 오후 제주4·3평화공원 내 제주4·3평화교육센터 대강당에서 제주4·3 희생자 고(故) 김희숙 씨, 고 강정호 씨에 대한 신원 확인 보고회를 열었다.
이들의 유해는 2007·8년 4·3 당시 집단학살터였던 제주국제공항 남북활주로 부근에서 발굴된 뒤 유전자 대조 작업을 거쳐 최근 극적으로 신원이 확인됐다.
4·3 당시 한경면 저지리에 살던 김희숙 씨(당시 29세)는 6·25전쟁 발발 후 시행된 예비검속 희생자다.
9연대 소속 군인이던 성산면 오조리 출신 강정호 씨(당시 22세)는 1948년 군인들이 집단 희생 당할 때 함께 끌려갔다는 소식을 끝으로 행방불명됐다. 당시 군인들은 도민 학살이라는 부당한 작전을 거부하고 탈영했다가 붙잡혀 사형 당한 기록이 있다.
강 씨 아버지와 어머니, 큰형은 성산포 터진목 해안에서, 둘째형은 난산리에서 토벌대에 의해 희생됐다.
김 씨의 아들 김광익 씨는 "아버지를 보고싶은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을 때는 모슬포 알뜨르 비행장 비석을 찾아 아버지 이름을 만지며 아버지를 부르며 소리쳤다"며 "이제 아버지 육신을 찾게 되어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라고 눈물 흘렸다.
그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새도 없이 "아버지, 사랑합니다"를 연신 외치며 만세를 불렀다.
깅 씨의 조카 강중훈 씨는 "숙부님은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형제분들 모두가 죽임을 당하는 와중에 어머니와 우리 삼남매는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며 "그 사연을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하소연 못하고 숨기며 살아온 혼돈의 세월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제 제 나이도 여든 다섯이 됐고, 풍비박산된 우리 가족을 바르게 이끄시던 어머니도 102살의 나이로 세상을 뜨셨다"며 "비록 늦었지만 그래도 숙부님의 신원이 확인되며 터진목에서 죽어간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형제들의 원혼도 함께 풀게 됐습니다. 작은아버지, 부디 영면하십시오"라고 눈물 지었다.
두 희생자의 신원은 유가족들의 적극적인 유전자 검사 참여로 확인할 수 있었다. 자녀가 있었던 김 씨는 손자, 강 씨는 조카의 채혈이 이번 유해 신원 확인의 결정적 단서가 됐다.
두 희생자는 이승을 떠난 지 70여 년, 유해로 발굴된 지도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서야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지금까지 제주공항을 포함해 제주에서 발굴된 유해는 총 417구로, 이 중 이름을 되찾은 4·3 희생자는 147명에 불과하다. 도는 4·3 발굴 유해 신원 확인을 위해서는 희생자의 직계 가족 뿐 아니라 방계 가족도 유전자 감식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이날 추도사를 통해 “오랜 세월 이름 없이 잠들어야 했던 영령들의 명복을 기원한다”며 “4·3 희생자들의 신원을 모두 밝히고 그들이 가족 품에 돌아와 영원한 안식을 취하도록 총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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