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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범의 정책진단] 미래 먹거리 찾는 인재 양성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2.24 18:07

수정 2025.02.24 18:07

상위 1% 의대 쏠림 방치
미래산업 이끌 인재 바닥
경제·사회적 여건 개선을
안종범 정책평가연구원장
안종범 정책평가연구원장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말은 대학 입학이 중심이 된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더라도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성공의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그만큼 대학 입학은 한 가족과 나아가 국가의 성공에 지렛대 역할을 해왔다.

해방 이후 섬유공학이 유망한 학문으로 떠오르면서 대학의 관련 학과에 우수한 인재가 몰렸다. 그 덕분에 1960~1970년대에는 한국이 세계적인 섬유 수출국으로 자리 잡으며 경제성장의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1970년대 박정희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과 함께 기계공학, 화학공학, 원자력공학, 전자공학 등의 전공이 차례로 인기를 끌면서는 인재들이 대학의 이러한 학과들로 몰려들었다. 이는 그 후 철강, 조선, 반도체, 자동차, 원자력 산업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삼성, 현대, LG, SK 등 세계적 기업들이 성장하는 과정에는 이 분야에 최상위권 인재들의 역량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이러한 상황은 변하기 시작했다. 상위 1% 인재가 의학에만 쏠리게 된 것이다. 과거에는 다양한 학문 분야로 상위권 학생들이 분산되었지만, 2000년대 이후 전국의 의과대학이 상위 1% 학생들을 거의 독점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자기 능력과 적성과도 무관하게 오로지 의대에만 가도록 강요당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의대 졸업 후 대부분은 국가경쟁력에 직접 연결되지 않는 임상에만 투입된다. 한 국가의 최우수 인적자원이 기초과학이나 첨단기술 개발보다는 병원 진료에 집중되면서 미래 산업을 이끌 인재층이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인공지능(AI)과 바이오 등 새로운 산업에서 우리가 갖는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의대 쏠림현상은 우리 대학 전반의 경쟁력이 떨어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최근 발표된 QS(Quacquarelli Symonds) 세계 대학 순위를 보면 미국은 상위 500위 내에 가장 많은 74개 대학을 보유하고 있다. 영국은 48개, 중국은 33개이고 우리는 13개에 불과하다. 세계 상위 대학 숫자가 많은 국가는 연구개발, 기술혁신, 우수인재 유치, 기업 협력, 국가 브랜드 가치 등의 측면에서 경쟁력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대학 경쟁력이 급성장한 것은 오늘날 AI, 원자력, 전기자동차 등의 산업경쟁력을 갖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나 국제경영개발원(IMD) 등의 국가경쟁력지수에서도 교육과 연구 역량이 중요한 평가기준으로 포함된다. 그래서 지난 20년간 의대 쏠림현상으로 요약되는 대학 교육과 연구 역량에서의 문제점은 심각하다. 같은 기간에 우리는 대학 등록금을 동결하면서 더욱더 대학의 경쟁력을 떨어뜨렸다. 반값 등록금과 같은 포퓰리즘이 이끌어낸 대학 등록금 동결은 우수한 교수 인력과 연구시설을 확보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 정치가 교육까지 망치는 단상을 보여준 사례로 기록될지도 모르겠다.

지금이라도 근본적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첫째, 대입에만 집중된 현재의 교육에서 탈피해서 적성과 능력을 찾아내고 이를 양성하는 교육이 되도록 해야 한다. 2013년 시작된 중학교 자유학기제가 이제 전국 단위의 자유학년제로 확대되었는데 이에 대한 실효성을 더욱 키울 필요가 있다. 학생들이 대학입시의 부담에서 벗어나 진로탐색과 다양한 체험활동을 경험할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해야 한다. 둘째, 초·중·고등학교에 투입되는 예산에 비해 현격히 떨어지는 대학교육 예산을 대폭 확대해서 대학교육의 효과를 높여야 한다.
다만 확대된 예산을 골고루 나눠주는 식이 아닌 철저한 평가를 통해 선택과 집중이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의대정원 확대와 같은 단편적 방안으로 의대 쏠림현상을 막는 것이 아니라 의사라는 직업이 갖는 고수입과 안정성 보장이라는 막연한 이미지를 바꾸어 주는 경제적·사회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개천에서 나는 용이 의학만이 아닌 여러 미래 먹거리 분야에서 고루 나오도록 해야 하겠다.

안종범 정책평가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