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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한라산 백록담 통제의 순간들…언제, 왜?

뉴시스

입력 2025.02.25 09:01

수정 2025.02.25 09:01

1996~1999년, 2001~2003년…복구를 위해 백록담 전면 통제 적설기 한라산 초등…일제강점기 경성제대 산악부 한국산악회 1956년 1월 적설기 한라산 등산 성공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겨울 한라산과 백록담 전경. (사진=뉴시스 DB) ijy788@newsis.com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겨울 한라산과 백록담 전경. (사진=뉴시스 DB) ijy788@newsis.com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폭설로 인해 한라산 백록담 정상 탐방이 장기간 통제되면서 과거에도 이런 사례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25일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에 따르면 한라산 탐방로 전면통제일수는 지난해 37일, 2023년 46일, 2022년 29일 등으로 나타났다.

이는 연간 통제일수로 대설특보 발효에 따른 것도 있지만 태풍, 강풍, 호우특보 등이 내려졌던 날도 모두 포함됐다.

눈이 쌓이거나 태풍이 불었어도 백록담 탐방 통제 기간은 2~5일 정도에 불과했다. 올해처럼 장기간 지속적으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백록담 정상 통제가 장기간 이뤄진 것은 1996년 3월1일부터 1999년 2월28일까지, 2001년 3월1일부터 2003년 2월28일까지 등 모두 2차례이다.

[제주=뉴시스] 한라산 백록담 분화구에서 1960년대 열린 철쭉제 모습. (사진=제주도 제공) photo@newsis.com
[제주=뉴시스] 한라산 백록담 분화구에서 1960년대 열린 철쭉제 모습. (사진=제주도 제공) photo@newsis.com

오랜 동안 탐방객이 백록담에 몰려들면서 분화구 사면은 물론이고 남벽 정상, 서북벽 정상 등에서 상당한 훼손이 발생했다. 훼손지를 복구하기 위해 자연휴식년제를 적용해서 백록담 정상 탐방을 금지한 것이다.

당시 백록담 정상 탐방을 금지했지만 2002년 5월1일부터 6월말까지 '2002 한·일 월드컵' 기간에 한시적으로 개방하기도 했다.

1997년 1월1일부터 2월28일까지, 1999년 1월1일부터 2월28일까지 등 적설기에도 일시 개방했다. 겨울 한라산 백록담 탐방에 대한 요청이 과거에도 높았던 것을 반증한다.

◆일제강점기 겨울 한라산 초등, 첫 조난사 기록

적설기 한라산 백록담 정상 탐방은 그리 오랜 역사가 아니다. 조선시대에도 목사나 어사, 사대부 등이 백록담 정상을 밟았지만 적설기 등산 기록은 없다. 눈 쌓인 한라산을 오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사정이 달라졌다. 모험과 도전을 위해 고산을 오르는 '알피니즘'이 등장하면서 적설기 한라산 등산 시도가 이뤄졌다.

[제주=뉴시스] 일제강점기에 한라산을 올라서 백록담 분화구에 들어간 등산객. (사진=제주도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제주=뉴시스] 일제강점기에 한라산을 올라서 백록담 분화구에 들어간 등산객. (사진=제주도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제주지역 산악인인 진창기씨가 정리한 '한라산등반사'에 따르면 1936년 1월1일 경성제국대 산악부가 한라산 백록담 정상을 밟은 것이 적설기 최초 등산(초등)으로 기록됐다.

당시 정상을 등산하고 하산하던 산악부원 마에가와 도시하루(前川智春)군이 조난한 뒤 5월에 숨진 채 발견됐다. 공식적으로 적설기 한라산 첫 조난사였다.

해방이후에는 남한 최고봉이라는 명성과 함께 전설의 삼신산의 하나라는 이미지도 더해지면서 한라산 등산이 유행처럼 번졌다.

한국인의 적설기 첫 도전이 1948년 1월에 이뤄졌는데, 당시 한국산악회 전탁 대장이 조난사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제주4·3사건이후 한라산 등산 재개, 1956년 겨울 한라산 등산 시작

제주4·3사건 전개과정에서 비극의 도화선인 '중산간 초토화' 작전이 시작된 1948년 10월 이후에는 한라산은 금단의 영역이었다.

무장대의 저항능력이 상실했다고 판단한 당시 제주도 경찰국장은 1954년 9월21일을 기해 한라산을 전면 개방했으며, 이듬해 백록담 북벽에 '한라산개방평화기념비'를 세웠다.

1954년 10월 제주대 학생들이 평화를 기념하기 위해 120명이 한라산을 오른 것을 시작으로 개방 기념 등산대회가 줄줄이 이어졌다.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한라산 백록담 북벽에 세운 '한라산개방평화기념비'.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개방을 기념해서 이듬해 세운 것으로 기단이 부서지면서 기울어졌다. ijy788@newsis.com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한라산 백록담 북벽에 세운 '한라산개방평화기념비'.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개방을 기념해서 이듬해 세운 것으로 기단이 부서지면서 기울어졌다. ijy788@newsis.com
적설기 한라산 정상 등산은 한국산악회가 주도한 가운데 1956년 1월에는 21일에 걸쳐 이뤄졌다. 관음사터(현재 관음사)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고 캠프1, 캠프2에서 정상에 도전하는 방식이었다.

지금처럼 하루에 한라산 백록담 정상을 왕복하는 것에 비하면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나 다름없다.


탐방로와 편의시설, 장비 등으로 등산이 예전보다 수월해졌지만 한라산의 겨울 날씨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혹독하다. 백록담 정상에 살을 에는 북서풍이 불어 닥치면, 노출된 손과 얼굴이 그대로 얼어버릴 정도로 강력하다.


변화무쌍한 혹한기 날씨는 히말라야 등 해외원정 등반을 준비하는 산악인이 훈련을 위해 한라산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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