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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명 개칭 120주년' 천도교…3·1절 행사로 민족종교 정체성 강화

연합뉴스

입력 2025.02.26 07:01

수정 2025.02.26 11:34

내달 1일 '106주년 기념식' 봉행…전국 교구서도 기념행사 진행 3·1운동 당시 전국적 만세운동 이끌어…민족교육·문화운동도 주도
'교명 개칭 120주년' 천도교…3·1절 행사로 민족종교 정체성 강화
내달 1일 '106주년 기념식' 봉행…전국 교구서도 기념행사 진행
3·1운동 당시 전국적 만세운동 이끌어…민족교육·문화운동도 주도

천도교 2024년도 3.1절 기념식 (출처=연합뉴스)
천도교 2024년도 3.1절 기념식 (출처=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올해 12월 교명 개칭 120주년을 앞둔 천도교가 3·1운동 106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로 순국선열을 기린다.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 낭독과 탑골공원 등 전국 각지의 만세운동을 실질적으로 기획하고 이끈 천도교는 이번 행사를 계기로 '민족 종교'라는 정체성을 더욱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천도교는 다음 달 1일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3·1절 106주년 기념식'을 봉행한다고 26일 밝혔다.

기념식 이후에는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탑골공원까지 거리 행진을 한 뒤 3대 교주인 손병희 동상에 참례할 예정이다. 천도교는 탑골공원 성지화를 추진 중이다.



기념식 외에도 전국 각지에서 106년 전 들끓었던 독립에 대한 열망을 재현하는 행사가 준비됐다.

전북 임실군에서는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된 뒤 자결한 한영태를 기리는 행사가 한영태열사기념탑에서 열린다.

경남 남해군 3·1운동 발상 기념탑과 경기 화성시 제암리순국기념관, 충북 청주 삼일공원에서도 3·1운동 기념행사가 진행된다.

천도교 중앙대교당 (출처=연합뉴스)
천도교 중앙대교당 (출처=연합뉴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동학에서 출발한 천도교는 민족 종교라는 정체성을 내세워 일제강점기 전국적인 저항운동을 이끌었다.

손병희를 비롯한 천도교 지도부는 1910년 경술국치일 이후부터 국권 회복을 목표로 하는 조직적 기반을 다졌다.

서울 강북구 우이동(한성부 동부 숭신방)에 지은 봉황각을 비밀회합 장소로 삼아 독립운동을 조직화했다. 손병희는 봉황각에서 천도교 교역자 483명을 대상으로 독립운동을 위한 훈련과 교육을 실시했다.

천도교가 3·1운동을 본격적으로 준비한 것은 1919년 일본 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 이후였다. 일본 유학생들의 일본 내 독립운동은 천도교뿐만 아니라 기독교와 불교 인사들에게도 충격과 부끄러움을 안겼다. 곧바로 천도교와 기독교 인사들을 중심으로 독립운동 계획이 추진됐고, 이후 불교계 인사들이 참여했다.

전국적인 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된 3·1운동 독립선언서도 천도교 주도로 전국에 배포됐다. 천도교가 운영하던 서울 종로구 보성사 인쇄소에서 비밀리에 인쇄했다. 2월 20일부터 27일까지 극비리에 2만5천부를 인쇄한 뒤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의 천도교 조직망을 통해 지방으로 퍼뜨렸다.

의암 손병희 선생 100주기 추모 특별전 (출처=연합뉴스)
의암 손병희 선생 100주기 추모 특별전 (출처=연합뉴스)

인쇄를 마무리하던 27일 밤 종로경찰서 고등계 형사가 갑자기 보성사에 들이닥쳐 발각됐지만, 손병희가 거금을 쥐여주고 무마한 일은 유명한 일화다. 이 형사는 이후 돈을 받은 사실을 들켜 헌병대에 체포된 뒤 자결했다.

천도교의 전국적인 조직망은 3·1운동이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천도교 중앙총부의 지시로 지방 교구장들이 3월 1일 탑골공원 만세운동에 참가한 뒤 지방으로 내려가 만세운동을 독려했다. 이는 통신이 열악한 시절임에도 순식간에 만세운동이 전국에 퍼질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3·1운동 이후 천도교는 손병희 등 지도부가 대거 체포되면서 시련을 겪는다. 서대문형무소에서 극심한 고문을 당한 손병희는 1920년 10월 병보석으로 풀려났지만 회복하지 못하고 1922년 사망한다.

하지만 천도교는 전국적인 조직망을 활용해 독립운동의 불씨를 이어갔다.
주로 지방의 천도교 조직망을 활용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자금을 조달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민족교육과 문화운동에도 집중했다.
천도교가 운영한 보성학교는 독립운동가 양성의 중심지가 됐고, 월간지 '개벽'을 발간해 민족의식 고취에 기여했다.

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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