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투자원금 10조4000억원 중 4조6000억원의 손실을 초래한 이른바 '홍콩 H지수 ELS(주가연계증권) 사태'의 후속 대책으로 ELS 판매 관련 규제가 강화된다. 은행은 지정된 일부 점포에서만 ELS를 판매할 수 있으며 판매 과정에서 소비자 확인 절차도 더욱 까다로워진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26일 '홍콩 H지수 ELS 현황 및 대책'을 발표했다. 금융당국이 ELS 관련 대책을 내놓은 것은 지난해 초 사태가 촉발된 이후 1년여 만이다. 은행권 홍콩 H지수 ELS 손실 확정 계좌는 17만건.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3월 자율배상 분쟁조정 기준을 마련해 자율배상이 진행되고 있으며 전체 배상진행 계좌 16만9000건 중 93.8%가 자율배상에 최종 동의한 상태다.
당국은 이번 대책에서 발표된 ELS 판매 절차와 관련된 제도개선을 오는 9월까지 마무리해 판매가 재개될 수 있게 하겠다는 방침이다.
은행 '거점 점포'에서만 ELS 판다…별도 공간에서 전문 직원이 취급
가장 먼저 달라지는 것은 은행이 일부 '거점 점포'에서만 ELS 상품을 취급할 수 있다는 점이다. 거점 점포는 일반 점포와 다른 물적·인적 요건을 갖춰야 한다.
거점 점포에서는 ELS 판매를 위해 별도의 출입문이나 층간 분리를 통해 물리적으로 분리된 판매 공간(전용 상담실)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과거 소비자들이 ELS 상품을 은행의 일반 원금보장형 상품으로 착각해 가입했다가 피해를 본 사례의 재발을 막기 위해 판매 창구를 완전히 분리하려는 취지다. 반면, 고위험 상품을 일상적으로 취급하는 증권사는 이러한 분리 조치가 적용되지 않는다.
또 거점 점포 내에서도 관련 교육을 이수 및 자격증을 보유에 더해 판매 경력을 갖춘 '전담 판매 직원'만 ELS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 이전에는 일반 여·수신 담당 직원도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을 판매할 수 있었으나, 상품에 대한 명확한 이해 없이 단순히 판매 실적을 높이기 위해 고위험 상품을 권유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날 발표를 맡은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현재 5개 시중은행의 점포가 약 3900개이며, 이 중 5~10%(195~390곳) 정도가 거점 점포로 지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실 감내 가능한 고객에게만 '추천'
소비자가 ELS와 같은 고난도 금투상품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금융 이해도가 높고,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소비자만 충분한 고민을 거쳐 상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게 금융당국의 방침이다.
이에 따라 금융사가 투자자의 정보와 투자 성향을 분석하는 기준이 한층 강화된다. 금융사는 상품 구매 시마다 거래 목적, 재산 상황, 투자성 상품 취득·처분 경험, 상품 이해도, 위험에 대한 태도, 연령 등의 요소를 분석해 투자 적합성과 적정성을 판단해야 한다. 기존에는 투자자의 답변 점수를 단순히 종합해 투자 성향을 평가했으나, 앞으로는 특정 답변에 따라 적합하지 않은 상품은 아예 투자 권유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한 소비자가 감내할 수 있는 기대 손실 항목에 기존 '원금 보존, 10%·20%·전액 손실 가능' 외에 50%·70% 손실 가능 구간을 추가해 손실 범위를 더욱 세분화하기로 했다.
금융사는 사전에 구체적으로 상품 판매 대상 고객군을 설정해야 하며 이에 해당하지 않는 소비자에게는 투자 권유를 할 수 없다.
다만, ELS 상품 가입에 적합하지 않은 투자 성향을 가진 소비자라도 가입을 원할 경우 금융사는 고객이 부적합·부적정 상품임을 명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부적정 판단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기존에 '적정성 판단 보고서'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나, 소비자의 오인을 방지하기 위해 명칭을 변경했다.
금융사는 부적정 고객이 상품에 가입한 경우 투자 권유 없이 고객이 직접 상품에 가입했다는 사실을 증빙하기 위한 서류도 마련해야 한다.
65세 이상 고령자 계약은 '가족'에게 알리고…'동영상'으로 상품 설명
금융당국은 과거 ELS 사태에서 고령자 피해가 많았던 점을 고려해 65세 이상 고령 소비자가 원할 경우 가족 등이 고난도 금투상품의 최종 계약 체결 여부를 확인하는 '지정인 확인 서비스'를 도입할 예정이다.
고난도 금투상품의 경우 2영업일 이상의 숙려 기간을 제공해야 하는데 이 기간 동안 고령 소비자와 지정인이 계약 필요성을 함께 숙고했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마련한 것이다.
또 금융사가 고난도 금투상품을 판매할 때 녹취해야 하는 범위도 기존 '설명의무 이행 시'에서 '적합성 평가'로 확대된다. 금융사는 적합성 평가부터 최종 계약 체결까지 전 과정을 녹취해야 하며, 상품 내용 설명 역시 단순히 스크립트를 읽는 것이 아니라 실제 설명 내용을 녹취해야 한다.
아울러 금융사는 소비자가 고난도 금투상품의 위험성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주의 환기용 동영상 자료를 제작해 제공해야 한다. 동영상에는 고난도 금투상품의 위험성, 역대 손실 사례, 상품 구조 등이 포함되며, 소비자는 숙려 기간 동안 해당 동영상을 시청한 후 다시 청약 의사를 밝혀야 계약이 확정된다.동영상 제작은 각 금융사가 개별적으로 진행해야 하지만 금투협회가 일괄 제작할 수 있도록 금융당국이 지원할 방침이다.
한눈에 위험성 알 수 있어야…"절대 안 망한다" 홍보 금지
금융사는 고난도 투자상품의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할 의무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우선 금융사는 소비자가 고난도 금투상품을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상품명 앞에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문구를 추가해야 한다.
또, 투자상품 설명서의 설명 순서를 개선해 최상단에 고난도 금투상품이라는 점, 적합하지 않은 소비자 유형, 손실 가능성, 손실 발생 사례 등을 안내하도록 했다. 형식적인 정보 제공 방식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상품 설명 시에는 일반 소비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문 용어를 순화해야 하며, 투자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수 있도록 '자기 판단에 대한 과신으로 인해 불확실성에 따른 손해를 과소평가할 수 있음'을 함께 안내해야 한다.
금융사 직원이 소비자의 투자 성향 평가 시 특정한 답변을 유도하는 행위, 대면 투자 권유 후 비대면 계약을 유도하는 행위, 대리 가입 행위 등은 부당행위로 규정돼 금지된다.
금융당국은 금융사 직원이 소비자의 합리적 판단을 저해하는 유인성 발언을 남발하는 행위도 설명 의무 위반 및 부당 권유 금지 조항 위반으로 제재할 방침이다. 실제로 ELS 사태 당시 일부 은행 직원들이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안전한 상품"이라고 홍보한 사례들이 있었던 만큼 이러한 행위를 엄격히 금지할 계획이다.
한편 현재 대다수의 은행에서는 자체적으로 ELS 상품을 취급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은 개선방안에 대한 적용이 완료되는 9월 이후 자체점검이 완료된 은행부터 ELS 상품 판매를 재개한다는 방침이다.
모바일 뱅킹을 통한 비대면 판매의 경우 은행창구를 통한 가입 절차와 동일하게 강화된 조치가 적용된다. 비대면 판매의 경우 판매사가 영상통화를 통해 상품의 위험성 등을 설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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