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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번역의 고됨에 대하여…'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

연합뉴스

입력 2025.02.27 17:55

수정 2025.02.27 17:55

인간 실존의 문제…'자살의 연구'
[신간] 번역의 고됨에 대하여…'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
인간 실존의 문제…'자살의 연구'

책 표지 이미지 (출처=연합뉴스)
책 표지 이미지 (출처=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 = 홍한별 지음.

허먼 멜빌의 고전 '모비 딕'은 135장으로 이뤄진 장편 소설이다. 책 내용을 거칠게 요약하면 흰고래 모비 딕에 다리를 잃은 에이허브 선장이 복수에 나서 모비 딕과 최종 결판을 벌인다는 이야기다. 단순한 복수 서사에 700쪽이나 할애해야 하는지 의구심도 들지만, 멜빌은 이를 비웃듯, 주요 서사에서 벗어나는 수많은 곁가지 이야기로 책 대부분을 채운다. 책의 4분의 1지점이 되어서야 에이허브 선장이 등장하고, 흰고래는 133장이 되어서야 나온다.

'모비 딕'은 또한 화자 이슈메일이 흰고래를 알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결국 실패하는 이야기다.

고래의 어원을 밝히고, 고래를 언급한 문헌을 나열하며, 고래 그림을 평가하고, 고래 문헌을 분석하지만, 그는 끝내 고래에 대해 알지 못한다.

"내가 고래를 아무리 해부해보더라도 피상적인 것 이상은 알 수 없다. 고래에 대해서는 지금도 모르고 앞으로도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클레어 키건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 등을 옮긴 전문 번역가인 저자는 번역가들의 운명이 이슈메일의 고군분투와 닮았다고 말한다. 흰고래를 그리려 했으나 결국 흰고래를 그리지 못한 실패한 이야기를 쓴다는 점에서다.

"잡히지 않는 공허. 포착할 수 없는 의미. 이쪽을 붙들면 저쪽을 놓치고, 저쪽을 잡으면 이쪽이 사라지는 단어를, 의미를 고정하는 순간 무수한 틈이 생겨버리는 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위고. 272쪽.

책 표지 이미지 (출처=연합뉴스)
책 표지 이미지 (출처=연합뉴스)

▲ 자살의 연구 = 앨 앨버레즈 지음. 최승자·황은주 옮김.

1982년 최승자 시인이 번역해 스테디셀러가 된 책으로 43년 만에 새롭게 개정돼 출간됐다. 최 시인의 번역본을 바탕으로 기존 판본에 누락했던 내용 50쪽 분량을 추가한 전면 개정판이다.

문학비평가인 저자는 작가 실비아 플라스의 친구였다. 플라스가 전성기 시절, 둘은 자살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플라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에야 자살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저자에 따르면 자살은 "더럽고 혼란스럽고 고뇌에 찬 위기와 관련된 것"이다.
책은 플라스에 대한 회상에서 시작해 자살을 설명하는 다양한 이론으로 나아가지만 끝내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진 않는다. 다만 연구 과정에서 자살이란 때론 능동적이며 적극적인 선택이고, 인간의 내적 에너지가 일으키는 여러 불꽃 가운데 하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내게 자살이란 강요당하고 궁지에 몰리고 자연에 어긋나는 숙명에 맞서게 된 우리가 때로 스스로를 위해 일으키는, 무시무시하면서도 전적으로 자연스러운 반응인 것 같다."
을유문화사. 488쪽.

buff27@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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