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옛 신문광고] 첫 국산 위스키 '죠지 드레이크'](https://image.fnnews.com/resource/media/image/2025/02/27/202502271831597777_l.jpg)
20년 동안 팔리던 '도라지 위스키'는 1976년 보해양조에 매각된 후 사라졌다. 그즈음 서민들의 술은 카바이드로 속성 제조한 막걸리나 30도짜리 희석식 소주가 주종이었다. 외국에 나가는 일도 어려울 때였으니 진짜 위스키는 언감생심 구경하기도 힘든 귀한 술이었다. 게다가 위스키는 밀수 금지품목에 단골로 끼던 사치품이었다. 부유한 집 양주장에서나 주당들에게 군침을 흘리게 했던 '조니 워커'를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술꾼들의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진짜 위스키에 대한 갈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먹고살 만해지자 우리 손으로 만들어서라도 위스키 좀 마셔보자는 목소리가 거세지기 시작했다. 경제도 차츰 좋아지고 기업의 접대와 회식 문화도 생기면서 고급 술에 대한 수요와 요구도 있었다.
갈망에 부응하듯 제법 진짜 같은 국산 위스키들이 1975년 말경 등장했다. 백화양조의 '죠지 드레이크'는 스코틀랜드에서 원액을 들여와 제조한 사실상 최초의 국내산 위스키라고 할 수 있다(경향신문 1976년 9월 1일자·사진). 죠지 드레이크에 대항해 이듬해 진로에서도 'JR' 위스키를 내놓았다.
죠지 드레이크는 병 모양부터 스카치위스키 '밸런타인'과 닮았다. 상표도 비슷한 분위기로 흉내를 냈다. JR 또한 'J&B'의 병 형태와 상표를 베낀 듯이 비슷했다. 그러나 이 제품들도 진짜 위스키라고는 할 수 없었다. 수입한 위스키 원액이 19.9%밖에 들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주정을 섞어 만든 유사 위스키였고, 주세법상으로는 '기타 재제주'였다. 광고에는 '정통 위스키'라고 소개하고 있다.
19.9%라는 원액 비율에는 이유가 있다. 당시의 주세법은 원액을 20% 이상 섞은 술만 위스키로 인정해 주면서 일종의 사치세인 높은 세금을 부과했다. 원액 20% 이상이면 주세는 200%였는데 그 미만이면 절반인 100%였다. 주류회사들은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19.9%의 원액을 섞는 편법을 쓴 것이다. 국회에서 이런 점이 문제가 됐다. 한 의원은 "0.1% 차이로 막대한 세금 혜택을 준 것은 국세청장이 봐주려고 작정한 것 아니냐"고 따졌다.
국세청장은 의원들의 질타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고, 기업들의 술수에 칼을 댔다.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은 끝에 죠지 드레이크와 JR은 1977년 무렵 사라졌다. 백화양조는 죠지 드레이크 대신 원액 함량 25%인 '베리나인'을, 진로는 JR 대신 '길벗'을 출시했다. 해태주조도 '드슈'라는 위스키를 내놓고 경쟁에 뛰어들었다. 죠지 드레이크를 이은 베리나인은 선두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남자 고교생이 여자 친구를 백화양조 술통에 빠뜨려 죽인 사건이 발생했지만, 영향을 주지 않았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 현장에 있었던 '시바스 리갈'이 공개되면서 위스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정부는 위스키 원액 함유량을 늘려 품질을 높이도록 했다. 원액이 더 들어간 위스키 이름에는 '로얄' '골드' 등의 수식어가 붙었고, 국산 위스키들은 그런 진화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금은 원액을 국내에서 제조한 '골든 블루' 등의 토종 위스키가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릴 정도로 판도가 바뀌었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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