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30주년 기념 릴레이 인터뷰 ③]
라이브클럽협동조합 사무국장 겸 APF 컴퍼니 공동대표
밴드 '와이낫' 기타리스트 출신
![[서울=뉴시스] '라이브 클럽 데이' 로고. (사진 = 라이브클럽협동조합 제공) 2025.02.2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age.fnnews.com/resource/media/image/2025/02/28/202502281214110735_l.jpg)
한국의 그래미 '한국대중음악상'(한대음·KMA) 선정위원인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는 27일 열린 '제22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선정위원회 특별상'을 받은 '라이브 클럽 데이'(라클데)와 관련 이 같은 선정의 변(辯)을 남겼다.
김 평론가 평대로 올해 10주년을 맞은 '라이브 클럽 데이'는 홍대 앞이 여전히 음악의 터전이라는 기표(記表)다. 동시에 유튜브 알고리즘이 아직도 해내기 힘든, 우리가 스스로도 몰랐던 숨어 있던 취향을 발굴해주는 기의(記意)이기도 하다.
'라이브 클럽 데이'는 한 장의 티켓으로 여러 공연장에서 다양한 뮤지션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앞서 2001년부터 10년간 진행되다 2011년 1월에 폐지됐다. 2015년 부활한 새로운 '라이브 클럽 데이'는 이전 라이브 클럽 데이와 성격이 다르다. 이전엔 댄스음악 클럽까지 포함됐다면, 현재 '라이브 클럽 데이'는 말 그대로 라이브 음악에 방점이 찍혀 있고 그래서 10주년으로 계산한다.
현재 대세 밴드가 된 '데이식스'가 2015년 데뷔해 '라이브 클럽 데이'를 통해 실력을 갈고 닦기도 했는데, 이 플랫폼은 발굴의 장이면서 축제의 장이다. 동시대 주목을 받는 록 밴드는 물론 '홍대 앞 무경계 음악 축제'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만큼,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을 폭넓게 수용했다.
즉 음악 페스티벌을 일상화한다. 덕분에 다양한 인디 밴드 팬을 결집하며 순항했다. '코로나 팬데믹' 위기도 뚫고 10년 간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블라인드 티켓' 판매부터 매진되며 대표 인기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1995년 4월5일 서울 홍대 앞 라이브 클럽 '드럭'에서 열린 미국 얼터너티브 록밴드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1967∼1994)의 1주기 추모 공연을 기점으로 올해가 인디 30주년인데, '라이브 클럽 데이'가 이 신을 버티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28일에도 10주년을 기념하는 '제71회 라이브클럽데이'(라이브클럽데이 위드 카카오(with Kakao) 창작재단)을 연다. 클럽FF, 프리즘홀, 벨로주 홍대, 클럽 프리버드, 무신사 개러지 등 여섯 개의 공연장이 뭉친다. '제22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정규 '음악만세'로 올해의 앨범상을 받은 밴드 '단편선 순간들', '범 내려온다'의 이날치, 작년 5년5개월 만에 발매한 정규 4집 '우리는 모두 실패할 것을 알고 있어요'로 저력을 확인한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 등이 나온다.
최근 서울 망원동에서 만난 라이브클럽협동조합 김대우 사무국장은 인디 30년을 가까이에서 지켜봐온 산 증인이다. 인디보다 언더그라운드라는 용어를 더 많이 쓰던 1990년대 초반부터 홍대 앞에서 연주 활동을 해온 그는 밴드 '와이낫' 기타리스트 등 여러 팀을 거쳤다. 실험적인 밴드들이 주로 공연한 클럽 타(打)를 운영했다. 지난해 첫 회부터 잘 치러낸 음악 축제 '아시안 팝 페스티벌'을 주최하는 APF 컴퍼니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라이브클럽협동조합의 살림꾼으로 통하는 그는 30년 내내 꾸준함과 부지런함으로 인디계에서 신망이 두텁다. 그런 바쁜 가운데도 삶 자체가 여전히 음악이다. 다음은 김 사무국장과 나눈 일문일답. 인디 30주년을 기념해 올해 내내 진행할 인터뷰들 중 세 번째이기도 하다.
![[서울=뉴시스] '제 71회 라이브 클럽 데이' 포스터. (사진 = 라이브클럽협동조합 제공) 2025.02.2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age.fnnews.com/resource/media/image/2025/02/28/202502281214122600_l.jpg)
"공연장마다 수용 인원 숫자를 보수적으로 잡아요. 예전엔 꽉 채우는 게 매진이었는데, 코로나 이후 안전을 비롯 여러가지를 고려해서 수용 인원의 80%만 티켓을 판매합니다. 그러니까 라이브 클럽데이는 기본적으로는 손해예요. 티켓 가격이 3만5000원인데 기본 클럽 한 곳 공연도 같은 가격이거든요. 참여해주시는 아티스트 분들도 말도 안 되는 개런티에 함께 해주시는 거고요. 지금까지 좋은 파트너 분들이 도움을 많이 주셨죠. 현재는 창작자들을 지원해주시는 카카오 창작재단에서 협찬을 해주시고요. 협업을 해주셔서 유지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돼 있습니다. 저희가 (음원 플랫폼) 멜론이랑 같이 해오는 것이 계속 쌓이다 보니까 카카오 창작재단에서도 관심이 생기셨던 것 같아요."
-10년을 유지해오신 비결이 있다면요? 코로나도 있었고 라이브 클럽들한테는 쉽지 않은 환경들이 많았잖아요.
"저희가 출발할 때는 먼슬리(monthly) 페스티벌이었어요. 어떻게든 매달 했었어요. 코로나를 비롯해 여러 가지 상황으로 매달 하지 못하는 순간이 왔고 횟수가 줄었지만 어쨌든 이 명분을 최대한 가져가려고 해요. 일단은 저희가 협동조합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각 공간들을 가지신 분들이 기획자시기도 하고요. 새로운 곳을 받기가 쉽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일단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데 '손해를 감수하고 들어오세요'라고 말씀드릴 수 없잖아요. 다만 '익스텐디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협동조합에 속한 공간이 아닌 클럽들도 모으는 이벤트도 엽니다."
-손해를 감수하시면서 클럽데이를 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신(scene)을 지키기 위한 의무감인가요, 신의 활성화를 위한 책임감인가요?
"의무감 반, 책임감 반이죠. 이 플랫폼이 유지가 돼야 여기서 라이브가 계속 일어날 것 같아요. 홍대 생태계를 위해서죠. 2010년대만 해도 라이브를 할 수 있는 뮤지션들이 처음으로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기회는 유튜브가 아닌 무대였어요. 지금은 꼭 그렇게 안 해도 되는 세상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꼭 라이브 클럽에서 해야 된다가 아니라 여기도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은 거예요. 어느 나라에도 이렇게 라이브클럽이 모여있는 곳이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누가 만들어준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생겨난 이걸 계속 지켜나가고 싶은 거죠."
-뮤지션으로 출발을 하셨는데 '행정의 달인'처럼 페이퍼 작업, 기획 일도 너무 잘하시잖아요.
"뮤지션으로 활동을 하면서 2001년도에 자연스럽게 조금씩 공연 기획 일을 같이 하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2013년 지산 월드 록 페스티벌 아티스트 디렉터 역할을 했었고요. 2016년 일본 밴드 토(TOE)로 단독 내한 공연 기획을 시작했고요. 그런 게 쌓여서 내한 공연과 라이브 클럽 데이, 조그만 페스티벌들을 하게 됐죠. 그러다가 현재는 여러 분들과 '아시안 팝 페스티벌'(아팝페)도 만들어서 진행하고 있고요."
![[서울=뉴시스] '라이브 클럽 데이' 현장. (사진 = 라이브클럽협동조합 제공) 2025.02.2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age.fnnews.com/resource/media/image/2025/02/28/202502281214132000_l.jpg)
"일단 음악이 너무 좋았어요. 그러다가 우연치 않게 기타를 연주하게 됐고, 기타를 연주하면서 음악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아주 어릴 때는 서양 팝들을 많이 들었고, 고등학교생이 되면서 헤비메탈을 듣기 시작했어요. 건즈 앤 로지스, 메탈리카, 딥퍼플, 블랙사바스 같은 팀들이요. 기타를 치기 위해서 기타가 좋은 음악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기타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으셨어요?
"밴드의 색깔을 정하는 게 기타라고 생각했었어요. 원래 장르를 정하는 게 리듬이라고 하지만, 저는 기타의 패턴에 따라서 장르를 나누는 게 맞다고 생각한 시절이 있었거든요. 96년도에 군대를 가기 전에 몇 개의 밴드를 했고 98년도에 돌아와서 와이낫에 들어가게 된 거죠. 이후 여러 가지 밴드들을 같이 했었어요."
-그러면 음악에 대한 꿈을 품으신 뒤 음악 외에 다른 걸 해야겠다라고 생각을 하신 적은 없으셨던 거네요.
"음악을 하기 위해서 다른 일을 했던 거예요. 모든 시간이 밴드에 맞춰져 있는 거죠. 그 외 남는 시간에 돈을 벌거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다른 무언가를 해야 됐죠. 그래서 2006년 라이브 클럽 타를 시작했어요. 클럽 타에서 연주를 하고 기획을 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지금의 클럽은 기획 공연을 많이 하지 않지만 2000년대 중반 클럽들은 매주 공연을 만들어내야 했었어요."
-국장님이 생각하실 때 현재 라이브 클럽, 밴드의 위상은 어떻다고 보십니까?
"밴드가 다양해지진 않았다고 봐요. 왜냐하면, 지금 신 자체가 밴드 중심의 신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기타를 처음 잡은 네 명의 친구들이 모여서 합을 맞출 필요가 없는 음악들이 더 많은 거죠. 물론 그런 음악들이 라이브를 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에요. 그럼에도 어느 정도 라이브 음악에 좀 더 집중해 있는 친구들을 위한 플랫폼이 남아있는 게 홍대 앞이라고 생각해요."
![[서울=뉴시스] '라이브 클럽 데이' 현장. (사진 = 라이브클럽협동조합 제공) 2025.02.2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age.fnnews.com/resource/media/image/2025/02/28/202502281214140788_l.jpg)
"예전에 있었던 언더그라운드란 말이 없어지고 지금은 인디밴드로 통합된 거잖아요. 예전에는 언더그라운드에서도 인디가 있었단 말이죠. 언더그라운드는 장르를 말하는 느낌이었고 그 안에서 자기가 독립적으로 제작을 하는 걸 인디밴드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인디 30주년은 기획사나 제작자의 손을 거치지 않고 밴드들이 자기 음악을 직접 만들어서 낼 수 있는 상황이 된 게 30년이 됐다는 뜻이죠. 기획사가 만들어낸 음악이 아니라 밴드들이 커트 코베인처럼 코드 세 개만 알아도 노래를 만들어서 음반을 내기 시작한 거죠. 이전엔 실력이 엄청 좋아야만 음반을 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코드 세 개만 쳐도 노래를 만들고 희망을 불러줄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하면서,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기타를 들고 밴드를 만들게 된 때예요. 너바나가 등장하고 '슈레드 이즈 데드(Shred Is Dead)라는 칼럼이 나온 적이 있어요. '속주는 죽었다'는 건데, 그러니까 예전엔 음반을 내려면 정말 연주를 잘해야 돼요. 웬만큼 잘해서는 녹음실에 들어가지도 못했죠. 녹음실 이용이 비싸니 연주를 열심히 해야 했고 밴드로 음반을 만들어 낸다는 게 너무 엄청난 일이었죠. 1995년은 펑크를 비롯 다양한 장르에서 음악, 밴드에 접근하는 방법을 쉽게 만들어 준 것 같아요. 그냥 기타를 들고 뭐라도 해서 음악을 만들어내는 시기였죠."
-최근 '밴드 붐' 현상엔 동의하세요?
"'밴드 붐이 온다'라는 말이 나온 건 코로나 이후 활발한 페스티벌과 연관이 있지 않나 해요. 코로나 이후에 아웃도어 이벤트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페스티벌에 가보니까 정말 재미가 있는 거죠. 그 재미를 주는 즐거움은 무대 위에서 나오는 에너지인 거예요. 아무래도 밴드들이 페스티벌에 잘 어울리기도 하고, 이런 부분이 맞아 떨어진 게 아닌가 합니다."
-축제에 대한 얘기가 나온 김에 지난해 1회를 연 '아시안 팝 페스티벌'도 너무 좋은 축제였습니다. 다양성이 돋보인 축제였는데 가장 중점을 두고 기획하신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박정용 벨로주 대표님하고 저하고 일본 프로모터 분하고 셋이서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새로운 음악의 발견'이에요. '이 음악이 좋으니까 들어봐'라고는 못하겠고요. 자신이 좋아하는 팀을 보고 또 새로운 좋은 팀을 알아가면 좋지 않을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넬 공연을 보러 왔는데, 대만 밴드 '노 파티 포 차오동(No Party For Cao Dong)' 팬이 돼서 나오는 거죠. 그건 라이브 클럽데이도 마찬가지예요. 자기가 좋아하는 팀만 보고 가지 않잖아요. 알고리즘과는 다른 거예요. 취향을 찾아주는 게 아니라 몰랐던 취향을 깨닫게 해주는 거니까요. 벨로주, 무신사 개러지, 상상마당, 클럽 에반스 공간마다 성격이 다 다르거든요. 아시안 팝 페스티벌 무대들 역시 라이브 클럽 데이랑 비슷하게 저마다 색깔이 있죠. 그 공간에 가장 어울리는 뮤지션을 찾아내는 게 출발이죠. 그 공간에 너무 어울리게 공연하는 아티스트를 보면 관객들이 호감을 느낄 수 있죠. 뮤지션들이 관객들한테 가장 멋지게 보일 수 있는 걸 연출하는 게 저희 일이고, 그걸 통해서 관객들이 새로운 취향을 얻어 가시거나 발견해 가셨으면 해요. 클릭 한 번으로 음악을 발견하기 너무 쉬운 세상이 된 지 오래됐잖아요. 근데 다른 음악을 들을 수 있는데 안 들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20대 초반에 들은 음악을 평생 듣다 죽는다고 하는데 새로운 음악을 듣는 거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서울=뉴시스] '라이브 클럽 데이' 현장. (사진 = 라이브클럽협동조합 제공) 2025.02.2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age.fnnews.com/resource/media/image/2025/02/28/202502281214157609_l.jpg)
"뮤지션하고 음악을 많이 듣는 분들하고 다른 지점이 있어요. 음악 마니아 분들은 다양하게 듣잖아요. 뮤지션들은 같은 걸 1000번씩 들어요. 기타를 치면, 지미 헨드릭스를 얼마나 듣겠어요. 와이낫 할 때도 주구장창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스핀 닥터스만 들었어요. 다른 음악이 들어올 틈이 없어요.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이 밴드를 하기 위해서 듣는 음악들은 그렇게 넓지가 않아요. 외골수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학문을 파는 거하고 똑같은 거죠. 지금은 공연기획을 하니,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더 다양하게 들으려고 해요."
-현역 뮤지션으로 다시 나서실 생각은 없으세요?
"여전히 기타를 쳐요. 오늘도 기타를 치다가 나왔고요. '로다운 30' 최근 공연에 같이 하기도 하고요. 1년에 몇 번 세션으로 연주하기도 해요. 전자음악이나 신시사이저에도 관심이 많아서 즐겁게 즐기고 있습니다."
-'라이브 클럽 데이'는 10년을 너무 잘해 오셨는데, 앞으로 10년은 어떤 고민을 하고 계세요?
"저희는 협동조합이잖아요. 같이 계속 해나가야죠. '라이브 이즈 히어(LIVE IS HERE)라는 슬로건처럼 저희들한테는 생활인 거거든요. 뮤지션들하고 같이 만들어가는 공간과 뮤지션들이 같이 만들어가는 삶이 생활처럼 흘러왔기 때문에 '10년 뒤에 모습은 어떻다'는 미리 정할 수는 없어요. 다만 뭔가 만들어낼 때마다 항상 밸런스를 생각해요. 라클데는 두 달에 한 번씩 하는 형상이 돼 버렸지만 클럽들은 매일 공연하고 있잖아요. 저희는 환기 같은 거라고 할까요? 이 신에 '이게 있다'라는 걸 보여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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