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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 그러는 한국은 무슨 카드를 쥐고 있나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3.03 19:25

수정 2025.03.03 20:51

조은효 산업부 차장
조은효 산업부 차장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1기였던 2017년 6월 30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첫 한미 정상회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추가 배치를 안 한다고요? 그것도 미국 돈으로 배치해준다는데 왜 비협조적인 것이냐." 트럼프 대통령이 첫 비공개 대면부터 문재인 대통령을 '노려보며' 연신 몰아세웠다. 여염집의 상견례는 물론이고, 기업 간 비즈니스 미팅에서도 으레 지켜지는 '첫 상견례장의 예의' 따윈 없었다고 한다. '작은 나라'가 마주하는 현실은 냉혹하기 그지없다.

지난달 말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 7분간의 설전이 만천하에 공개됐다. "당신은 카드가 없다.

" 궁지에 몰린 젤렌스키를 향해 트럼프는 현실 자각을 요구했다. 요즘 유행어로 '자기 객관화' 요구다. 720조원 규모의 희토류 등 우크라이나 광물을 미국 측에 넘겨주기로 했음에도 말이다. '밥도 못 먹고 백악관에서 쫓겨났다'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처지와 우크라이나의 앞날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감정이입을 느끼는 듯하다. 우크라이나 다음은 대만, 대만 다음은 한국을 지목한다. 유사시, 미국이 지켜주지 않을 것이란 '공포의 고리'다.

카드가 없기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이끄는 대미 경제사절단이 관세, 보조금 등의 문제를 풀고자 미국 상무장관을 만났다가 10억달러 추가 투자를 요구받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국 측의 통상적인 투자 프로그램 설명이었다는 해명이 나오긴 했으나, 이들의 귀국길은 꽤나 무거웠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외교적 미숙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한계점을 드러낸 장면이기도 하다. 민간 사절단이 잘 못해서가 아니다. "누가 갔어도, 더 이상 미국에 내놓을 카드가 없다"는 것이다. 모두 전임 바이든 정권 때 다 퍼준 결과다. 더욱이 지금과 같은 정부 공백기에선 답이 없는 노릇이다.

경제는 이미 곪아터지고 있다. 미국 같은 대국도 2%대 성장을 하는 마당에 한국은 1%대 성장이다. 반도체 산업의 위기를 극복하자는 취지에서 발의된 반도체특별법은 여전히 답보 상태다. 반도체 생산라인 증설 허가는 2~3년이나 걸린다. '반도체 보국'으로 한반도 안보의 신(新)인계철선 노릇을 해야 할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이미 TSMC에 추월당했고, 이제는 온 국민이 엔비디아 납품을 염원하는 지경이다.


"이게 지금 우리 실력이다"라는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의 말이 떠오른다. 정치는 개탄스럽고, 정부 시스템도 사실상 마비다.
지금 우리가 쥔 패가 있나. 정부와 정치권에 묻고 싶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