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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한한령 해제와 위협균형..미묘한 시기 의미는? [fn기고]

이종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3.06 07:00

수정 2025.03.06 07:00

-반길주 국립외교원 교수  -사드배치 9년만 APEC 회의 계기로 中 한한령 해제되나  -트럼프 2기 팽창정책 추진 속 미묘한 시기 中 상쇄 전략  -국제정치 안정성·국익 둘러싼 '세력·위협·이익 균형' 게임  -막강한 힘에도 전후 국제질서 주도 공공재 역할하던 미국  -MAGA의 미국 상대로 ‘위협균형’ 기제 작동 조성 분위기  -中 한국과 외교적 관계 강화 기회로 판단한 결과로 관측  -유럽, 러와 美 대상 '위협균형' 움직임…러, 서방 분열 활용  -韓 ‘전략적 모호성’과 ‘전략적 명확성’ 사이 딜레마… 숙제 -韓 국익수호·안보 목표 불변, 수술대 오른 외교·안보 전략    -단단한 각오와 치밀한 시나리오로 대외정책 대수술 필요  -‘전략적 명확성’ 강점 살린 진화…‘전략적 주도성’ 재설계 나서야 
[파이낸셜뉴스]
반길주 국립외교원 교수
반길주 국립외교원 교수

중국이 한한령 해제에 나서는 모양새다. 올해 한국이 주최하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계기로 중국이 문화사절단을 파견하기로 하면서 이러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현실화된다면 2016년 7월 미군의 사드(THAAD) 배치로 시작된 한한령이 9년 차를 맞아서야 해제되는 셈이다. 그런데 한한령 해제를 추동한 것이 단지 APEC이라는 외교적 기회 때문일까?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전 세계적으로 대격변이 일어난 상황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한한령 해제는 시기적으로 미묘하다. 팽창주의적 정책을 추진하는 미국 위협의 부상에 외교관계 재조정을 통해 전략적 상쇄장치를 작동시키려는 기제라는 측면에서 적실성을 따져볼 수 있다.



국제정치학자는 국제적 안정성을 유지하고 국익을 담보하는 기제로 ‘균형(balance)’의 개념을 자주 사용한다. 먼저 ‘세력균형(balance of power)’은 어느 일방이 압도적 힘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나머지 국가가 힘을 결집하는 방식으로 힘의 균형을 이루어 국제적 안정성을 찾는다는 개념이다. ‘위협균형(balance of threat)’은 막대한 힘을 보유했다고 무조건 현상변경에 나서는 의도를 갖는 것은 아니므로 그 의도를 판단하여 위협으로 인식될 시 ‘힘’이 아닌 ‘위협’에 상쇄장치를 가동시켜 국제적 안정성을 모색한다는 개념이다. ‘이익균형(balance of interest)’은 국가는 힘도 위협도 아닌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한다는 개념이다.

전후 자유주의적 국제질서 구축을 주도한 미국은 국제적 공공재를 제공하는 호혜적 패권국으로서 인식되어왔다. 막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어도 그 힘을 악의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란 기대가 전 세계적으로 인식되었고 미국의 소프트파워 주목도 이러한 인식과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MAGA 목표 달성을 위해 팽창주의, 최대압박 등을 통해 위협을 투사하면서 미국을 상대로 한 ‘위협균형’ 기제 작동이 조성되는 분위기다. 중국의 한한령 해제는 이러한 위협균형 기제를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한국과 외교적 관계 강화에 나설 기회라고 판단한 결과로 보인다.

미국을 정점으로 한 위협균형 기제는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을 패싱하고 러시아와 종전담판에 나서자 유럽은 미국 위협을 상쇄하기 위해 단합하고 있다. 2025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3주년을 맞아 EU 집행위원회, 스페인, 스웨덴, 캐나다 등 12개국 정상이 키이우를 직접 찾아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 군사적 지원을 재확인하면서 결집을 과시했다. 이어서 3월 2일에는 런던에서 유럽 특별정상회의를 열어 “의지의 연합(Coaltion of the Willing)” 가동에 나섰다. 이러한 유럽의 행보는 대외정책의 공식을 바꾸고 있는 미국을 염두에 둔 위협균형 기제와 무관치 않다. 과거와 다른 점은 유럽의 행태는 러시아만을 상대로 한 위협균형이었지만, 미-러밀월로 위협균형 대상에 미국도 포함된 듯한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는 점이다. 반대로 러시아는 미국이 아닌 유럽에 위협균형 기제를 작동시키며 소위 서방(the West)을 분열시키는 전략적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위협균형 기제는 한국에도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전략적 모호성’으로는 국익달성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직시하여 혁신적으로 전환했던 ‘전략적 명확성’을 고수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부상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외교 딜레마도 부상하고 있다. 동맹을 지키자니 외교적 자율성이 약화되고 외교적 자율성을 지키자니 동맹약화가 우려되는 것이다.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3주년 계기에 추진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서 비상임이사국 한국의 외교적 입장은 이러한 딜레마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제질서가 달라지고 미국의 외교공식이 달라져도 국익수호와 안보유지라는 국가의 목표는 달라질 수 없다.
달라지는 것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이다. 그런데 그 방법이 단순 조정 정도만으로는 목표 달성이 어려울 정도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외정책이 대수술 수준이다.
따라서 한국도 외교전략, 안보전략 등 대외정책을 수술대에 올려놓고 재설계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단단한 각오와 치밀한 대응 시나리오 개발이 필요해 보인다. ‘전략적 명확성’의 강점을 살리고 진화시켜 ‘전략적 주도성’을 설계해야 해보면 어떨까?

정리=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