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fn광장

[fn광장] 수렁에 빠진 연금개혁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3.05 18:03

수정 2025.03.05 18:25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사회보험인 연금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청년과 중장년기를 거치면서 보험료를 납부하고 은퇴 이후 노년기의 생활안정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국가가 세금처럼 보험료를 강제징수하고 연금급여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나라들과 달리 직역연금으로 공무원연금과 사학연금, 그리고 군인연금제도를 분리해 운영하고 있고 나머지 국민을 대상으로 국민연금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교육, 노동, 의료와 함께 연금개혁을 4대 구조개혁 어젠다로 꼽아 추진해왔으나 적대적 여야 관계와 계엄 및 탄핵 정국으로 모두 갈 길을 잃고 말았다. 창의적인 미래인재를 키워내고, 안정적 노사관계 속에서 일과 가정의 균형을 누리고, 대한민국 국민이 어디에 살든 질 높은 의료 혜택을 받고, 노후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정부의 4대 개혁이라며 의료·연금·노동·교육 개혁에 역량을 집중한다고 했다. 사회 전반의 구조개혁 없이 민생도 없고 국가의 미래도 없다는 명제에 대다수 국민이 동의했기에 4대 개혁 핵심사업들이 성과가 나기를 소망했으나 수렁에 빠지고 만 것이다.

개혁은 피해집단의 저항이나 경제사회에 미치는 일시적 충격이 클 수 있으므로 선거를 의식하는 정치인들에게는 작지 않은 부담이 된다.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목표와 수단을 담은 청사진, 공론화를 통한 우호적인 여론 확보, 그리고 법안 통과를 위한 협치와 타협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나 모든 조건에서 진도를 거의 나가지 못했다.

연금개혁은 연금재정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함이다. 정부의 일반회계와 별도의 사회보험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에서 100원을 내고 200원을 받아 가는 체제는 계속 유지될 수가 없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군인연금과 공무원연금은 당해연도 수입으로 지출을 충당하지 못해 국민의 세금으로 보전해야 하는 금액이 이미 작년도에만 10조원에 달한다. 2024년 기준 공무원연금은 지출한 급여액(21조9458억원)보다 징수한 보험료 수입(14조5407억원)이 7조4051억원이나 적다. 군인연금은 2조158억원이 부족했다. 사학연금도 이미 2023년부터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연금수지 구조를 보이고 있지만 적립금을 운영해 벌어들인 수익으로 적자를 면했다. 하지만 조만간 적자영역으로 진입할 것이다. 이와 같은 직역연금을 그대로 놔두고 국민연금만 개혁하자고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당장은 국민연금 제도 개혁에 여론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모수개혁이냐 구조개혁을 포함하느냐는 논쟁과 모수개혁에 있어서도 보험료율 인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모아지고 있지만 소득대체율(급부수준)에 대해서는 좀처럼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우여곡절을 거쳐 정부안이 제출되었지만 자동안정장치(물가상승, 평균여명 증가 추세 반영)에 대해 이견이 분분하다.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신규 수급자의 급여액만 조정하는 소득대체율 조정보다 모든 수급자의 급여액을 조정하는 자동조정장치 도입이 바람직하다.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후발주자로 연금제도가 미성숙되어 이미 100년 이상 공적연금제도를 운영해 온 나라들과 단순 비교 평가하는 횡단면적 접근이 초래하는 착시현상에 주의해야 한다.
우리의 국민연금 평균 급여액수가 적은 가장 큰 이유는 가입기간이 짧기 때문이므로 이를 늘리는 방안에 역량을 경주해야 한다. 아울러 기초연금의 선택과 집중방식 개혁, 퇴직연금 확대 등을 함께 고려해야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소득대체율 논쟁은 바람직한 연금제도 개혁방향인 소득비례연금으로의 전환, 가입기간을 늘릴 수 있는 노동시장 개혁과 함께 고민하는 것이 타당하다. 구조개혁은 다음 단계로 미루고 우선 보험료율 인상을 추진하자.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