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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미중 패권다툼에 낀 한국 산업의 암담한 현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3.05 18:03

수정 2025.03.05 18:03

美, 관세 폭탄·반도체법 폐지 예고
中, 첨단기술 앞서나가며 저가 공세
미국 의회에서 연설하는 트럼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미국 의회에서 연설하는 트럼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패권 경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우리 발등에도 불이 떨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직접 언급하며 공격했고, 중국은 중국대로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강력한 정책으로 맞서고 있다. 그 사이에 낀 우리는 국정공백 속에 길을 잃고 방황하는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의회 연설에서 미국이 한국을 안보 등 여러 방면으로 도와주는데, 한국이 미국산 제품에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평균 관세는 미국보다 4배 높다고 했다.

앞으로 방위비분담금 인상뿐만 아니라 강한 관세 때리기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 시기에 제정된 반도체법 폐지 방침도 밝혔다. 관세장벽을 높이면 해외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할 텐데 보조금을 제공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를 개막한 중국은 경제성장률 목표를 5% 선으로 제시했다. 3년 연속 같은 수치로 미국과의 무역전쟁 속에서도 성장률을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출한 것이다. 올해 재정적자율을 국내총생산(GDP)의 4%로 확대, 내수부양에 적극 나서겠다는 뜻도 밝혔다. 연구개발 예산을 전년 대비 10% 늘려 잡은 것도 특징적이다. 미국과의 첨단기술 경쟁에서 결코 밀리지 않겠다는 의미다.

서로 지지 않으려는 양국의 경쟁은 철저한 자국 이기주의 아래 벌어지고 있다. 자동차와 같은 제조업 기반을 뺏기지 않고 자국 내에 두면서 첨단산업 주도권을 잃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엿보인다. 두 나라의 경쟁은 기술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는 곧 틈새에 낀 우리 산업의 상대적 열세와 피해를 부를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대통령 부재의 한국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산업정책은 미래를 내다본 완결판이라기보다는 임시방편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정부는 이날 50조원 규모의 첨단전략산업기금 신설 방안을 발표했다. 첨단산업기금 지원 대상은 반도체와 배터리(이차전지), 디스플레이, 바이오, 방산, 로봇, 백신, 수소, 미래차, 인공지능(AI) 등이다. 정부는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최대 규모의 지원책이라고 평가한다.

50조원이라고는 하지만, 미국과 중국에 비하면 큰 금액이 아니다. 그것도 직접 지원이 아니라 기금 형식이다. 문제는 장기적인 산업경쟁력 강화 청사진이 있느냐는 것이다. 기술발전을 위해서는 투자와 인재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 AI 정책이 그렇다. 중국의 딥시크를 보고서야 추경에 AI예산을 잡는 등 부산을 떨었다. 불난 데 바가지 물을 붓는 격이다.

해외 우수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이제야 톱티어 비자를 신설하겠다고 한다. 쓸 만한 인재들은 각국에서 이미 끌어갔다. 국내 인재도 중국 등지로 빠져나갔다. 늦어도 한참 늦었다. 이래서는 미국과 중국을 이기기 어렵다. 중국은 이미 첨단 메모리 반도체 양산 능력을 갖추어 우리 반도체를 수입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한다.

그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공격은 우리 산업을 궁지로 내몰고 있다.
잘나가던 자동차 산업의 피해도 불 보듯 뻔하다. 중국은 값싼 철강과 석유화학 제품으로 우리 공장의 문을 닫는 지경에 빠뜨렸다.
정치인들은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겉치레로 철강공장을 방문하느니, 재계 인사들을 만나느니 하면서 경제에 관심을 보이는 시늉만 내고 있다. 한국 산업의 앞날이 어찌 암담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