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 넘어 제7공화국으로
비상계엄이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흔들었다면
탄핵정국과 수사과정은 법치주의 환상을 깨뜨려
많은 전문가들 헌재 탄핵심판 절차적 문제 지적해와
절차적 흠결 외면한 결론 안돼… ‘각하’ 해법 될수도
20년새 대통령 3명이 탄핵, 現 제도 문제 있다는 것
1987년 헌법 기반한 6공화국이 수명 다했다는 진단
뜨겁게 분출되는 ‘개헌’ 아젠다, 탄핵정국 넘는 방법
비상계엄이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흔들었다면
탄핵정국과 수사과정은 법치주의 환상을 깨뜨려
많은 전문가들 헌재 탄핵심판 절차적 문제 지적해와
절차적 흠결 외면한 결론 안돼… ‘각하’ 해법 될수도
20년새 대통령 3명이 탄핵, 現 제도 문제 있다는 것
1987년 헌법 기반한 6공화국이 수명 다했다는 진단
뜨겁게 분출되는 ‘개헌’ 아젠다, 탄핵정국 넘는 방법
![[노동일의 세상읽기] 국민 뜻을 개헌으로 승화… 제7공화국 열어갈 준비해야](https://image.fnnews.com/resource/media/image/2025/03/09/202503091918190733_l.jpg)

#내란죄 수사와 적법절차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오후 석방되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지귀연)의 구속취소 결정에 따른 것이다. 법원은 윤 대통령이 구속기한을 넘겨 9시간45분간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기소됐다고 판단했다. 구속기간을 '날(日)'로 계산할지 시간으로 계산할지 검찰과 해석을 달리한 것이다. "날이 아닌 실제 시간으로 계산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그간 많은 사람들이 이른바 내란죄 수사과정의 절차적 위법성을 지적해 왔다. '적법절차의 원칙(due process of law)'은 마그나 카르타 이래 인류가 공들여 확립해 온 대원칙이다. 이를 무시하고 폭주하는 헌재 탄핵심판과 수사기관의 내란죄 수사에 무력함과 우울함을 느껴야 했다. 비상계엄이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흔들었다면 이후 탄핵정국과 수사과정은 법치주의에 대한 환상을 깨뜨렸다. 재판부의 결정은 너무 당연한 문제를 지적한 것으로 작지만 큰 외침이다. "법령에 명확한 규정이 없고, 대법원의 해석이나 판단도 없는 상태"에서 "이런 논란을 그대로 두고 형사재판 절차를 진행하는 경우 상급심에서의 파기 사유는 물론,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도 재심 사유가 될 수 있다."
물론 석방되었다 해도 윤 대통령 재판은 진행된다. 하지만 재판부의 지적대로 법률에 명확한 규정이 없는 공수처의 수사는 불법이다. 그 결과 역시 불법으로 공수처의 수사기록은 재판에서 사용할 수 없다. 따라서 재판에서의 공소유지를 담당하는 검찰은 공소취소 후 내란죄 수사권이 명백한 경찰이 수사를 다시 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법원은 공소기각 판결을 해야 한다. 이후 윤 대통령의 직권남용죄 성립 여부를 따지는 건 별개의 사안이다. 공수처의 배후에 어떤 세력이 있어서 처음부터 터무니없는 무리수를 강행한 건 아닌지 수사할 사안이 될 수도 있다.
#헌재 탄핵심판과 적법절차
적법절차의 중요성을 상기시킨 서울중앙지법 결정은 헌재의 탄핵심판 과정을 돌아보게 한다. 수사의 불법성 못지않게 헌재 심판은 불법과 불공정으로 점철되어 왔다. 많은 전문가들이 헌재 탄핵 심판의 절차적 문제를 지적해 왔다. 허영 교수는 답변서 제출 기일 미보장, 협의 없이 변론 기일 일방적 지정, 내란죄 수사 서류 송부 촉탁 수용, '내란죄' 철회로 탄핵소추 사유 변경 수용 등 10가지 사유를 들고 있다. 핵심은 '내란죄 철회' 부분이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 헌재는 탄핵소추사유를 다시 정리, 뇌물죄 등 형법상 탄핵사유를 소추사유에서 제외했다. 처음 소추사유를 5가지 유형으로 정리하고, 다시 '각종 형사법 위반 유형을 제외'한 4가지 유형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는 '양 당사자의 동의 아래' 이루어진 것임을 헌재 판례는 명백히 기술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탄핵심판에서 윤 대통령 측의 동의가 없다면 헌재는 국회 재의결을 요구했어야 한다. 재의결 절차 없이 내란죄 철회를 수용한 것은 중대한 흠결이다. 성낙인 교수 역시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탄핵소추 핵심 사유가 '내란'인데 국회 측이 '내란'을 빼버렸다. '내란죄' 때문에 일부 여당 의원들이 소추에 동의해줬는데, 내란죄를 삭제했으니 소추의결을 다시 하는 게 맞다"는 의견이다. 허영, 성낙인 교수가 대한민국 헌법학의 최고 권위자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헌재가 무시할 수 있어도 두 석학의 의견만은 외면할 수 없을 것이라 믿는다. 법원이 공수처 수사의 불법성을 지적한 것도 헌재 절차 문제를 다시 살펴야 하는 이유가 된다. 검찰 수사기록을 받아 본 자체도 문제지만 검찰 역시 내란죄 수사권이 없는 불법수사 기록이기 때문이다.
이르면 이번 주 헌재 결정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중대한 절차적 흠결을 외면하고 무리한 결론을 내린다면 심각한 후폭풍이 생길 것이다. 인용이든 기각이든 국민 사이의 충돌이 진짜 내란 혹은 내전 수준으로 치달을 수 있다. 해법은 탄핵 심판을 각하하는 것이다. 인용도 기각도 아닌 제3의 방안으로 도피하는 게 아니다. 법리에 가장 충실한 결론이 각하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비상계엄 선포의 위헌·위법성만을 탄핵사유로 삼았다면 문제가 없었다. 헌법상 국가원수의 권한인 비상계엄의 성격, 내용, 범위와 그 한계 등에 대한 토론을 통해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민주당이 무리하게 '계엄=내란'이란 프레임으로 몰아간 게 문제이다. 공수처의 무리수가 내란죄 공소기각의 단초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민주당의 과욕이 탄핵심판 각하의 원인이 되는 것이어서 중립적 결론이 될 수도 있다.
#개헌과 제7공화국
그동안 개헌 반대가 나의 입장이었다. 반대라기보다 개헌 무용론에 가깝다. 우리나라의 4류 정치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의 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공부 열심히 하지 않는 학생에게 명품 만년필을 사주면 갑자기 성적이 오르는가 말이다. 하지만 최근 생각이 바뀌었다. 아니 바꾸기로 했다. 20년 새 3명의 대통령이 탄핵 당하는 사태를 보면 현재의 제도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선거 때마다 물갈이를 해도 그 나물에 그 밥이라면 사람만 탓할 수도 없어 보인다. 새 제도로 나라가 새로워진다면 얼마나 좋은가.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면 어떤 시도라도 할 가치가 있다. 여론조사에서 보듯 많은 국민이 개헌을 원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헌정회를 비롯한 정치권에서 개헌론이 뜨겁게 분출하는 이유도 그럴 것이라 믿는다. 단순한 정략적 고려를 넘어 1987년 헌법을 바탕으로 한 6공화국이 수명을 다했다는 공통된 진단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
대통령 4년 중임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그동안 많은 개헌안이 나와 있다. 각각의 개헌안은 모두 장·단점이 있다. 중임제를 주장하는 의견이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 8년, 이재명 대통령 8년을 가정하면 그 반대에 선 사람들이 용인할 수 있을까? 의원내각제는 어떨까. 지금 상황을 예로 들면 절대권한을 가진 민주당이 정권을, 이 대표가 총리까지 맡는 내각제를 흔쾌하게 받아들일까? 이원집정부제는 낯설다. 또 예를 들자면 윤 대통령이 국가원수로 외치를 맡고, 이 대표가 총리로 내치를 맡는 상황에서 국정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을까?
개헌과 함께 필수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선거제 개편과 정당 개혁이다. 무엇보다 소선거구제 개편이 시급하다. 한두 번 지적된 얘기가 아니지만 실현되기 어려웠던 것은 국회의원들의 기득권을 깨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일정 지역을 독식하고 득표율과 의석수가 너무나 차이가 날 뿐 아니라 양당의 극한대결 구도를 고착화 시키는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비대한 중앙당을 슬림화 하고 원내정당화 해야 한다는 주장도 해묵은 것이다. 엄청난 액수의 국고보조금을 받으면서 상대 당에 대한 원색적 비난이 유일한 정치인 것처럼 보이는 정당도 과감하게 수술해야 한다. 당 대표의 제왕적 권한을 없애고 공직선거 후보자를 국민이 선택하는 오픈프라이머리 제도 채택도 필요하다. 모두가 치열한 토론과 대안제시가 필요한 문제이다. 개헌과 함께 현실화가 어렵다면 헌법에 근거라도 만드는 작업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다. 윤 대통령은 헌재 최후진술에서 대통령직 복귀를 전제로 임기단축과 개헌을 공언한 바 있다. 성 교수는 "대통령까지 나섰으니 올해 안에 개헌 결판을 내야 한다고 봅니다. 공고부터 국민투표·공포까지 두 달이면 돼요. 개헌안은 이미 수십 개 나와 있기에 여야가 머리만 맞댄다면 금방 합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헌안의 구체적 내용은 물론, 조기대선을 원하는 민주당 이 대표의 반대를 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 문제가 있으니 그런 거로 보이지만 다른 이들은 전부 개헌하자는 거니까 결국은 그쪽(개헌)으로 갈 수밖에 없을 거라 봐요." 성 교수의 낙관론이다. 개헌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지금이 개헌의 적기라고 본다. 올해 안에 개헌을 하고 내년 지방선거와 함께 대선을 치르는 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이다. 헌재가 탄핵심판을 각하하고 법원이 내란죄 기소를 공소기각 할 경우 현실화될 수 있다. 설사 탄핵이 인용된다 해도 방법은 있다. 조기대선을 치르기 전 개헌을 압박하는 여론이 끓어오르는 것이다. 개헌 후 대통령의 임기단축을 부칙에 규정하고 2028년 총선과 대선을 함께 치르도록 해야 한다. 현직 대통령은 탄핵심판과 내란죄 재판을 받고 있고, 유력한 다음 대선주자는 법원 재판 날짜에 전전긍긍하는 상황. 우리의 현실이지만 초현실적이다. 이대로라면 다음 대통령도 국민의 절반이 등을 돌리는 상황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인용이냐 기각이냐를 놓고 다시 갈라져 싸운다면 대한민국은 속절없이 후퇴를 거듭할 것이다. 엄중한 나라 밖 소식에도 한가한 싸움에 여념이 없는 정치권을 보며 국민은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다. 탄핵정국을 넘는 방법은 한 차원 높은 정치적 아젠다를 제시하는 것이다. 개헌이 그것이다. 윤석열도 이재명도 싫다는 국민의 뜻을 모아 개헌으로 제7공화국을 열 준비를 해야 한다. 어이없는 비상계엄이 뜻하지 않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재창조하는 '위장된 축복(blessing in disguise)'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dinoh7869@fnnews.com 노동일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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