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시선] 예술과 행정의 줄다리기, 소통이 답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3.12 18:24

수정 2025.03.12 18:30

정명진 문화스포츠부장
정명진 문화스포츠부장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 상반기 내 5개 국립예술단체의 이사회 통합과 사무처 신설을 추진한다는 발표를 하면서 예술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5개 국립예술단은 국립오페라단, 국립합창단,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국립발레단, 국립현대무용단이다.

갈등의 핵심에는 행정 효율성과 예술의 자율성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는 '행정 효율성 제고'라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예술단체들은 '예술적 자율성 침해'를 우려하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소통 부재'의 문제다.

정부가 밝힌 통합 사무처 신설의 목적은 예산·회계·계약·홍보 등 행정업무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강화하는 데 있다. 각 단체는 기존 명칭과 정체성을 유지하고 단장과 예술감독들의 프로그램 선정과 연출 등에서 자율성을 보장받는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그러나 예술계는 '옥상옥 구조'로 인한 간섭과 독립성 저해, 장기적으로는 창작의 질 하락을 우려한다. 특히 국립현대무용단과 같이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을 받는 단체는 통합 후 예산이 축소되거나 사실상 폐지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표출하고 있다.

이번 통합 추진에서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충분한 공론화 과정 없이 정책이 결정되었다는 점이다. 문화예술 정책은 단순한 행정 논리로만 접근할 수 없는 고유한 특성을 지닌다. 그럼에도 관료 몇 명이 장관과 함께 책상 앞에 앉아 결정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소통의 부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정치적 동물'로 정의하며 언어를 통한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듯이 예술 역시 소통을 통해 발전한다. 예술단체와 정부 간의 소통이 단절되면 예술의 사회적 가치와 행정적 효율성 사이의 균형은 깨질 수밖에 없다.

특히 주목할 점은 지난 2011년 문체부 산하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진행한 연구에서도 국립예술단체 통합의 타당성이 낮다고 결론이 났다는 사실이다. 14년이 지난 후 이 결론을 뒤집는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투명한 근거 제시와 충분한 소통 과정이 필수다.

과거 로마제국의 몰락 원인 중 하나가 중앙정부와 지방 간 소통 단절이었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의 정책 결정자와 현장 간의 소통 의 단절이 정책의 실효성을 크게 약화시킨 것으로 분석했다.

또 공자가 말한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정신은 정부와 국립예술단체의 이번 갈등에도 적용될 수 있다. 화이부동은 군자는 조화를 추구하되 부화뇌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즉,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행정 효율성과 예술적 자율성은 반드시 상충되는 가치가 아니다. 소통을 통해 두 가치를 모두 존중하는 접점을 충분히 찾을 수 있다.

따라서 각 예술단체의 고유한 특성과 요구를 충분히 수렴하는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 아테네의 '아고라'처럼 모든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토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국립예술단체들이 요구하는 '현장 의견 수렴을 위한 공론장 개최'는 단순한 반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또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상향식 개선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현장에서 실제로 부딪히는 행정적 비효율과 예술적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급진적 통합보다는 단계적인 협력 모델을 구축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최근 유인촌 문체부 장관이 "해소할 수 있는 부분이 뭐가 있는지 정리해 나갈 생각"이라고 밝힌 만큼, 양측이 수용할 수 있는 지점부터 변화를 시작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소통은 단순한 정보 교환이 아니라 상호 이해와 존중의 과정이다.
정부와 예술계는 각자의 관점에서 주장을 펼치기보다 서로의 입장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pompom@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