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노동복지

'반도체 특별근로' 계속되는 논란…근로시간 개편 논의 불붙나

뉴시스

입력 2025.03.16 09:02

수정 2025.03.16 09:02

반도체 R&D, 특별연장근로 6개월로…최대 주64시간 근무 건강검진 의무화하고 6개월 중 3개월은 주60시간으로 제한 노동계 중심 비판 이어져…"초장시간노동, 생명·건강 위협" 정권 초 '주69시간' 논란 재연…핵심은 주 단위 관리 경직성 노사는 평행선…노동계 "근로시간, 월 단위 변경도 동의 못해"
[서울=뉴시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11일 열린 '반도체 연구개발(R&D) 근로시간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5.03.11. (사진=고용노동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11일 열린 '반도체 연구개발(R&D) 근로시간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5.03.11. (사진=고용노동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고홍주 기자 =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에 대한 특별연장근로가 6개월까지 가능해졌다. 이번 조치로 반도체 R&D 직종은 특별한 사유가 발생하면 '주52시간제' 예외 적용을 받아 6개월 중 3개월에 대해 주당 최대 64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게 됐다.

재계에서는 환영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노동계에서는 근로자들을 '초장시간' 노동에 밀어넣는 처사라며 반대하는 등 근로시간을 둘러싼 논란이 재연되고 있는 모양새다.

◆'반도체특별법' 무산되자 지침 개정…주 최대 64시간까지 근로 가능

16일 고용노동부 등 정부에 따르면, 반도체 R&D 인력에 대한 특별연장근로 특례가 지난 14일부터 적용됐다.

근로기준법은 1주의 근로시간을 40시간으로 정하고 있다.

여기에 노사 합의가 있을 경우 최대 12시간까지 연장근로가 가능하다. 이렇게 총 주52시간을 초과해 일한 경우, 사업주는 형사처벌 대상이다.

다만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위해 근로자 동의와 고용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 3개월 간 근로를 주 최대 64시간까지 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연장근로제도'가 있다. 연장근로는 근로자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사유는 ▲재해·재난 ▲인명·안전 ▲돌발상황 ▲업무량폭증 ▲연구개발 등 모두 다섯 가지에 한정된다.

그동안 반도체업계에서는 3개월 인가기간이 너무 짧다며 R&D 인력에 대한 주52시간 상한제 특례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여당이 주52시간제 적용 예외를 담은 반도체특별법을 발의했으나 더불어민주당 반대로 법 제정이 사실상 무산되자 정부가 지침과 고시를 제·개정해 반도체 R&D에 특별연장근로를 확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반도체 R&D에 대해서는 한번 인가를 받으면 6개월까지 연장근로가 가능해진다.

단, 6개월 인가를 받게 되면 근로자 건강권 보호를 위해 6개월 중 첫 3개월에는 주당 64시간까지 가능하고 추가 3개월은 주당 최대 60시간만 가능하다.

◆정권 초 '주69시간' 논란 판박이…노동계, "'관리단위' 변경 절대 반대"

정부가 지침을 개정하면서 제도가 일단 시행됐지만, 시민사회는 일제히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주된 비판 이유는 '근로자 건강권' 침해 우려다. 정부가 건강권 보호를 위해 특별연장근로 인가기간 동안 건강검진을 의무화하고 개별 근로자 동의와 인가사유를 엄격하게 보겠다고 했지만, '몰아서' 일하는 것 자체가 건강에 좋을 리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지난 12일 "산재판정기준에서 '발병 전 12주간 1주 평균 업무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하는 경우' 업무시간이 길어질수록 질병 관련성이 높다고 평가하는 등 장시간 노동이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 확인됐다"며 "건강검진 의무 신설만으로 장시간 노동을 강요받는 노동자들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매우 근시안적인 접근이며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말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도 "이번 인가 확대로 인한 주64시간 이상 초장시간 압축노동은 반도체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할 것임이 분명하다"며 "향후 반도체 업종뿐 아니라 전 업종에 확대하게 될 것이고, 특별법 제정과 근로기준법 개정 등으로 노동시간 규율체계 자체를 무너뜨리려는 자본의 시도가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 전진환 기자 =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023년 3월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윤석열정부의 주 69시간 폐기 촉구, 실 노동시간 단축 정책추진 의지표명, 주69시간 NO , 주4.5일제 YES, 과로사회 OUT 전 국민 캠페인 제안'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03.21. amin2@newsis.com
[서울=뉴시스] 전진환 기자 =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023년 3월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윤석열정부의 주 69시간 폐기 촉구, 실 노동시간 단축 정책추진 의지표명, 주69시간 NO , 주4.5일제 YES, 과로사회 OUT 전 국민 캠페인 제안'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03.21. amin2@newsis.com


이번 논란은 윤석열 정부 초기 불거졌던 '주69시간' 사태를 연상시킨다. 이는 2022년 정부가 근로시간 관리단위를 현행 주 단위에서 월·분기·반기·연 등 더 큰 단위로 변경할 방침을 밝히자 "현행 제도 하에서 관리단위를 변경하면 주 최대 69시간까지도 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불거졌다.

예컨대, 현재는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관리단위를 주에서 월·분기·반기·연으로 변경하면 특정 주에 최대 69시간까지도 일하게 될 수 있고, 결국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주52시간제의 경직성이다. 현행 근로기준법 상 주당 52시간이 넘어가면 무조건 사업주가 형사처벌된다. 이 때문에 주52시간 유연화는 재계의 숙원이다.

정부는 2023년 개편안 발표 당시 "수천명이 일하는 사업장에서 1명의 근로자가 하루 1시간만 넘겨 일해도 사업자는 범법자가 되고, 근로자는 꼼수 야근을 하는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한다"며 "주 평균 또는 총량 준수 방식으로 근로시간을 선택하도록 하면서 건강권을 보호하는 글로벌스탠다드와는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 선진국들은 근로시간을 주 단위로 관리하지 않는다. 독일은 1일 근로시간을 8시간으로 규제하면서도 6개월 혹은 24주 1일 평균 8시간이 초과하지 않으면 되고, 프랑스는 연장근로 한도를 노사 합의로 정하도록 하면서 1주 48시간, 연속 12주 평균 주44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다. 일본은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연간 720시간까지 연장근로를 할 수 있도록 한다.

당시 고용부는 노동계를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이어지자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사회적 대화로 논의를 이어가겠다고 한 수 접었지만, 올해 주요 업무계획에서 "현장 노사의견 수렴 등 근로시간 제도개편의 여건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불씨를 살렸다.

재계는 이번 반도체 지침 개정 과정에서 명시적으로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 개편을 요구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궁극적으로는 관리단위를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경사노위에서도 이 문제를 논의 중인 만큼 향후 관리단위 변경에 대한 논쟁은 필연적으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중소 제조업의 경우 절반 정도가 하도급이기 때문에 근로시간을 마음대로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는 것도 생각을 해야 한다"며 "과로사 우려가 있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일을 많이 시키는 회사는 시장에서 외면하는 경우도 많고, 요즘 청년들의 인식 변화를 고려했을 때 기우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노사 간 입장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노동계는 지난해 11월 열린 제10차 회의에서 "탄력근로·선택근로 등 유연근무제 등을 활용할 수 있는데도 연장근로 관리단위 변경을 주장하는 부분이 이해하기 어렵다"며 "월 단위의 연장근로 관리단위 변경도 동의할 수 없다"고 강경한 입장을 내비쳤다.

현재는 노동계 대표인 한국노총이 12·3 계엄을 이유로 사회적대화 참여를 잠정 중단하고 있어 향후 언제 논의가 재개될지는 불투명하다.


경사노위 관계자는 "한국노총이 오는 26일 열리는 각종 노동 이슈와 사회적 대화 토론회에 참가할 예정"이라며 "조속한 복귀를 전향적으로 검토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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